서울 아파트 ‘큰손’ 30대
  • 김동인 기자
  • 호수 639
  • 승인 2019.12.18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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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가 올해 서울 아파트 거래의 ‘큰손’으로 등장했다. 서울 집값이 연일 오르자 주변 자금을 총동원해 매수에 나선 것이다. 매일 시세 확인이 가능한 부동산 플랫폼의 발달도 한몫했다.
ⓒ시사IN 이명익서울 강남의 한 부동산 중개사무소 유리벽에 붙어 있는 아파트 가격표.

“이러다 영영 서울 밖으로 내쫓길지 몰라.” 지난 10월, 7년 차 직장인 김정배씨(가명·33)는 집 걱정을 끝내고 싶은 생각에 인근 부동산 중개업소를 찾았다. 인근 동네에서 눈여겨본 집은 지은 지 25년 지난 30평대 아파트였다. ‘강남 4구(강남·서초·송파·강동)’나 ‘마용성(마포·용산·성동)’이 아닌 서울시 끝자락 경계선 지역이지만 매매 가격은 7억원을 훌쩍 넘겼다.

집을 내놓은 50대 부부는 계약서를 쓰는 날까지 값을 올렸다. “집값이 심상치 않네요. 손해 보는 것 같아 안 되겠어요.” 김씨는 울며 겨자 먹기로 앉은자리에서 1000만원을 얹어주고 집을 계약했다.

처음부터 집을 살 생각은 아니었다. 20평대 아파트에서 전세로 살던 김씨 부부 사이에 지난해 아이가 태어나면서 조금 더 넓은 집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즈음 이번에 계약한 집이 눈에 들어왔다. 1년 전, 이 집의 호가는 6억원대 초반이었다.

1년 넘게 부동산 시세 애플리케이션을 확인하는 게 습관이 되었다. 집값은 치솟았다. 6억원 후반을 지나 7억원을 넘기자 아차 싶었다. 지금이라도 빚을 떠안고 사지 않으면 영영 서울 밖에서 살아야 할 것 같았다. 김씨는 지금도 부동산 앱을 켤 때마다 등골이 서늘해진다고 한다. 김씨가 계약한 지 두 달이 지난 현재, 집값은 7억원대 후반을 넘어서고 있다.

서울 아파트 가격이 연일 급등 중이다. 2017년 8·2 부동산 대책, 2018년 9·13 부동산 대책 등 각종 규제책으로 잠시 잔잔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지난 6월부터 서울 아파트 가격은 다시 오름세를 타고 있다. 이 같은 상승 국면의 독특한 양상들 중 하나는, 30대 매수자의 비율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아래 표는 2019년 1월부터 2019년 10월까지 매달 서울 아파트 매입 거래량을 세대별로 추산한 자료다. 30대가 올해 서울 아파트 거래의 ‘큰손’으로 등장했다는 것을 그래프 추이를 통해 알 수 있다.

2019년 1월 기준, 전체 거래량 1889건 가운데 30대의 매입 비율은 약 25%(479건)에 불과했다. 40대의 매입 비율은 28%, 50대는 22% 수준이었다. 서울 지역 아파트 전체 거래량은 하반기로 접어들면서 4배가량 늘어나는데, 가장 약진한 세대가 바로 30대였다. 지난 8월의 아파트 전체 거래 가운데 30대의 매입 비율이 올해 처음으로 30% 선을 돌파하더니 9월 32%(2273건), 10월 31%(2581건)였다. 전체 연령대 가운데 가장 높은 비율이다. 반면 같은 기간 40대 매입 비율은 모두 29%였다. 전체 매입 거래량은 40대도 늘었지만, 30대의 매입 증가세에는 미치지 못했다. 30대의 자산 규모가 40~50대보다 적은 편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리 자연스러운 현상은 아니다.

전체 가족이 가진 자원 ‘전략적으로 동원’

30대의 주택 매입이 이렇게 늘어난 배경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부동산 부문에서 정보 비대칭 문제가 해소되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부동산 정보를 파악하는 데 드는 시간과 노력이 종전에 비해 줄어들었다는 의미다. ‘호갱노노’ ‘네이버 부동산’ 등 각종 부동산 플랫폼에서 매일 시세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각종 카카오톡 채팅방, 인터넷 카페 등의 커뮤니티에서 실시간으로 지역 부동산 정보를 제공하기도 한다. 부동산 전문가들의 유튜브 채널도 관련 정보를 제공한다. 아파트 매물 정보가 균질화되면서 연식, 면적, 지역 등에 따라 값을 매기고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기 더욱 용이해진 점도 과거와 달라진 풍경이다.

부동산 플랫폼의 발달로 낯선 동네에 대한 정보까지 좀 더 빠르고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부동산 매매 정보가 대중화되면서, 다른 지역에 대한 투자를 활발히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지난해 광주 지역 아파트 가격 폭등, 올해 대전 아파트 급등 등의 주요 원인은 모두 ‘외지인 투자자’의 등장 때문이다.

정보 장벽에서 자유로워진 이들은 시장가격 흐름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무주택 실수요자 층도 마찬가지다. 눈앞에 보이는 수치가 계속 오르는데, 정부에서는 안정적이라는 해석을 내놓고 있기 때문에 불안과 불신이 가중된다.

11월29일 국토교통부는 “지난해 9·13 대책 이후 서울 아파트 가격은 2013년 이래 최장기간인 32주 연속 하락하며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 최근 풍부한 유동성하에서 가격 상승 움직임이 있지만 과거 과열기(9·13 대책 직전)의 상승폭에 비해 매우 낮은 수준”이라고 설명한다. 인터넷으로 부동산 정보를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서울 등 급등 지역의 무주택 실수요자들은 국토부의 설명에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다.

30대가 시장을 끌고 간다고 해서 모든 30대가 매수 추세에 편승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전체 집값도 오른 데다 투기과열지구에서는 LTV(주택담보대출 비율:주택의 담보가치에 따른 대출금의 비율)가 40%에 불과하다. 8억원짜리 집을 구입하는 경우, 최대 3억2000만원까지만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줄어든 담보대출의 몫을 노동소득만으로 대체할 수 없을 때, 흔히 동원되는 자원은 가족이다. 최근 30대 주택 매입 비율의 상승세 뒤에는 ‘전체 가족이 가진 자원의 전략적 동원’이 깔려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 결과, 자연스럽게 최근 주택 구매를 생각하는 30대 사이에서는 증여세 문제가 이슈로 떠올라 있다. 부모 세대로부터 지원받을 수 있는 경우, 그만큼 증여세를 내야 하는데 이를 피할 수 있는 다양한 절세 정보가 오간다. 가장 흔한 사례가 부모와 자녀 사이에서 차용증을 쓰는 방식이다. 부모가 자녀에게 아파트 구입비를 건네는데, 이를 법무사 사무실에서 사적 대출로 공증받는다. 자녀는 매달 부모에게 이자를 납입한다. 부모-자식 사이에서 대출이 이뤄질 수도 있지만, 대출이 이뤄진 것처럼 꾸미는 경우도 있다.

금수저가 아니더라도 얼마나 주변 자원을 동원할 수 있느냐에 따라 이후 인생 경로가 나뉜다. 대부분의 경우 아파트 자산 가격의 상승 속도가 임금이 오르는 속도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웃도는 상황에서 예전 같으면 ‘가정을 이루고 열심히 종잣돈을 모을’ 30대가 가장 큰 빚을 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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