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11월29일 이해찬 대표 등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199개 안건 전체에 필리버스터를 신청한 자유한국당을 규탄하고 있다.

“아이들 제대로 키우자고 국민이 지지하는 법, 국민이 통과 좀 시켜달라고 요청하는 법을 왜 이렇게 발목 잡나? 한유총(한국유치원총연합회) 눈치 보는 것 아닌가?” 11월29일 ‘민생파괴 국회파괴 자유한국당 규탄대회’에서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이 말했다. 이날 자유한국당은 본회의에 상정된 199개 안건 전체에 필리버스터를 신청했다. ‘유치원 3법(사립학교법 개정안·유아교육법 개정안·학교급식법 개정안)’도 이 가운데 있었다. 박 의원은 지난해 10월 유치원 3법을 발의했는데, 그해 12월 패스트트랙(신속처리 안건) 과정에서 바른미래당 임재훈 의원이 낸 수정안이 올라가 본회의에 부의됐다.

유치원 3법은 여론 지지가 높은 법안이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의 12월2일 발표에 따르면 응답자 69.2%가 유치원 3법의 정기국회 처리에 찬성한다고 답했다. 반대 의견은 17.8%였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선거법에 대한 응답(찬성 48.1%, 반대 43.6%)에 비해 한쪽으로 쏠린다.

지난해 12월27일 패스트트랙에 오른 뒤 국회에서는 유치원 3법을 논의한 적이 없다. 이번에 본회의에 걸린 법안은 상태도 쟁점도 지난해 12월 상황 그대로다. 박용진 의원은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바뀌어서 법안이 표류했다고 본다. 박 의원은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법이 지난해랑 바뀐 게 없다. 김성태 원내대표 시절에는 상당히 입장이 좁혀졌는데 나경원 원내대표가 후임으로 오면서 논의가 아예 멈췄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김성태 당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교육 당국이 감사를 소홀히 했다”라며 사립유치원 국정조사를 요구하고, 정기국회 회기 내에 처리하기로 합의하는 등 적극적 제스처를 보였다. 후임자인 나경원 원내대표는 사립학교 경영자 집안 출신이다.

결국 쟁점을 확인하려면 지난해 교육문화체육위원회 법안심사소위로 되돌아가야 한다. 양당 위원들의 논의 자체는 오랜 시간 이뤄졌다. 다만 핵심 지점에서 평행선을 달렸다. 매 회의마다 “접점이 없다” “도저히 결론이 안 난다”는 평가가 위원들 사이에서 나왔다. 유치원 3법을 마지막으로 논의한 지난해 12월26일 법안심사소위에서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도저히 합의를 이루어낼 수 없기 때문에, 이것을 무조건 뒤로 미룰 수는 없고 패스트트랙을 통해서 300일을 확보”하자고 말했다. 즉, 양측이 절대 합의할 수 없는 핵심 지점이 드러났기에 지난해 12월27일 법안을 패스트트랙에 태웠던 셈이다.

‘아이들 교육 회계를 투명하게 하자’는 명분에 반대할 정치인은 없다. 이런 명분을 가진 유치원 3법은 뜻밖에 국회에서 ‘투명성이 무엇인지’에 대한 논쟁을 불렀다. 자유한국당 전희경 의원과 곽상도 의원이 이 논쟁을 촉발시켰다. 각각 우파 시민단체, 공안검사 출신인 이들은 국가가 처벌해서는 안 되는 유치원 회계가 있다고 주장했다. 국가가 판단할 수 있는 유치원 회계의 ‘불투명함’이란 국가 재정에서 나온 금원뿐, 학부모가 지불한 돈은 사정이 다르다는 것이다. 지난해 12월3일 곽상도 의원의 발언이 대표적이다. “일단은 학부모하고 유치원하고의 관계입니다. 개인 대 개인의 관계지요. (…) 이 돈까지도 무조건 정부가 준 보조금하고 같은 취급을 하자 이게 옳은지는 저는 의문입니다.”

ⓒ연합뉴스자유한국당 전희경 의원(왼쪽)과 곽상도 의원은 ‘유치원 3법’을 강력히 반대한다.

전희경 의원은 더 격하게 반응했다.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를 헌법 가치로 하는 국가가 맞는지(지난해 12월3일)” “사립유치원뿐만 아니라 이 나라 어떤 국민이더라도 사적 자치와 개인 재산 이런 것들이 정부와 견해 차이를 보일 때 자유한국당은 그 편에 설 것(지난해 12월6일)” 등 발언을 매번 쏟아냈다. 지난해 12월26일 법안소위에서 전 위원은 이런 말도 했다. “우리도 편하게 국민 여론이 이렇고 분노한다, 명품백이다 이런 것에 ‘아, 예, 예’ 하고 가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양심상 못 그러는 거예요, 유치원 편을 들어서가 아니고.” 이 논리에 따르면 ‘교비회계 전부를 국가가 감독하자’는 입장이야말로 정치적 이익에 매몰된 주장이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조승래 소위원장은 “그러면 어느 한쪽은 양심이 없는 사람이 되어버립니다”라고 말했다.

“자유한국당은 한유총 이익 대변한다”

지난해부터 이번 필리버스터 신청에 이르기까지, 자유한국당은 ‘한유총의 이익을 대변한다’고 비판받았다. 그런 측면이 있다. 전희경·곽상도 의원의 ‘사유재산론’은 한유총이 전가의 보도처럼 내세워온 논리다. 자유한국당 소속 일부 정치인들은 한유총 집회에서 연설을 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황교안 대표가 2013년 한유총 고문변호사로 활동했다는 KBS 보도가 나왔다. 이런 정황만으로는 ‘자유한국당이 유치원 조직이 주는 표와 후원금 때문에 필리버스터까지 이르렀다’고 보기 어렵다.

자유한국당이 내놓은 유치원 3법 개정안에는 한유총이 극렬히 반대했던 사안도 있다. 자유한국당 유치원 3법에 들어간 에듀파인 도입은 일선 유치원들이 가장 반대하던 것이었다. 에듀파인 도입이란 회계처리를 손으로 하지 말고 정부가 여는 전자회계 프로그램에서 하라는 취지다. 이러면 회계 투명성이 올라간다. 누리과정 지원금도 부정하게 쓰일 때에는 처벌할 수 있게 했다. 반면 유치원에서 요구하던 정부의 ‘시설사용료 지급’ 조항은 포함하지 않았다. 올해 11월29일 자유한국당이 낸 수정안도 마찬가지였다. 법안을 대표 발의한 김한표 의원은 12월3일 원내대책회의에서 “그런데도 자유한국당이 사립유치원 배불려주기를 하려고 시설사용료를 받게끔 한다고 (언론이) 거짓말을 한다”라고 비판했다.

그러면 자유한국당은 뭘 지키겠다는 것일까. 법안소위에서 나오는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발언에는 핵심 기준이 있다. ‘국가 재정은 국가 감독하에, 사적 거래는 개인 자율로’라는 논리가 일관되게 전제되어 있다. 특히 전희경 의원은 정치적 불이익을 감수하더라도 자신의 주장을 밀고 나가겠다는 신념을 드러낸다. 한유총 회장이 기소되고 조직이 인가 취소되는 데다가 일반 여론은 한유총에 적대적이어서 사립유치원 조직 편을 들어서 생기는 정치적 이득은 어느 정도 후퇴했다. 그래도 자유한국당 내 ‘이념파’들은 견해를 바꾸지 않았다.

민주당은 여러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20대 국회 마지막 정기국회 회기는 12월10일 종료되는데, 12월9일 본회의를 열어 패스트트랙 법안들을 상정한 뒤 12월11일부터 임시회를 여는 것도 한 방안이다. 이렇게 될 경우 유치원 3법 말고도 선거법과 공수처법 등 다른 패스트트랙 법안들도 임시회를 노려야 한다. 순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박용진 의원은 12월3일 한 라디오 방송에서 “유치원 3법을 먼저 통과시켜서 국민적 박수를 받고 우리의 진정성을 보이는 바른 태도의 정치가 필요하다고 본다. (…) ‘박용진 참 이기적이다’라는 얘기를 비판이든 격려든 들어가면서도 통과 꼭 시키겠다”라고 말했다. 이인영 원내대표 등 민주당 원내 지도부는 법안 처리 순서에 대해서는 복안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기자명 이상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prode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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