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머리에는 늘 질문이 쏟아졌다. ‘너 레즈비언이야?’ ‘혹시 탈코(탈코르셋) 해?’ 무례한 호기심에 허휘수씨(26·왼쪽)는 익숙했다. “사회가 바라는 여성성을 가지고 있지 않아서 문제가 되는 듯했어요. 어쩔 땐 그냥 남자라고 해버려요.” 비슷한 경험이 많았다. 머리가 짧은 여성들의 인터뷰를 담아 2018년 9월 동영상을 유튜브에 올렸다. 조회 수는 20만 회, 댓글 수천 개가 달렸다. 공감하는 댓글 사이에 ‘불만이 많다’ ‘피해의식이다’라는 비방 댓글도 있었다.
동영상 기획자는 김은하씨(26·오른쪽)다. 2017년 11월 허휘수씨와 함께 유튜브 채널 ‘소그노(sogno)’를 만들었다. 그해 언론사 공채 시즌이 끝날 즈음이었다. “들어가서 만드는 게 힘들면 직접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예능 PD를 준비하던 그는 유튜브 채널 이름을 이탈리아어로 꿈을 뜻하는 ‘sogno’로 지었다. 친구와 후배까지 여성 7명을 모아놓고 보니 모두 페미니스트였다. “노선이 다 달라요. 그래서 저희는 만장일치가 없어요.” 휘수씨가 말했다. ‘소그노’를 페미니즘 채널이라고 할 수 있는지 오랫동안 논쟁했다. 합의된 건 하나였다. 불편하지 않은 콘텐츠를 만들자.
산부인과를 가기 어려운 이유, 예쁘다는 말이 칭찬이 될 수 없는 이유 등을 인터뷰로 풀어낸 ‘다큐모멘터리’부터,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구성한 고전소설 콘셉트의 웹드라마 ‘허휘슬전’이 대표적인 콘텐츠다. 휘수씨가 진행한 ‘숏컷 특강’ 편이 인기가 좋았다. “탈코한 뒤에 뭘 입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여성성을 벗어도 여러 스타일을 시도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사실 본업은 따로 있다. 휘수씨는 대학원생, 은하씨는 방송국 촬영팀에서 일한다. 은하씨는 “방송사 자막 편집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가편집본을 볼 때마다 답답했어요. 모든 출연진이 남성인 데다 여성이 나오면 쉽게 대상화되더라고요”라고 말했다. 직접 콘텐츠를 만들기로 작정한 계기다. 그가 말하고 싶은 주제를 방송국에서 다루려면 몇십 년이 걸릴 것 같았다. “나중엔 너무 늦어요. 지금 필요한 이야기거든요.”
현재 구독자는 1만명이다. 올해 초 ‘소그노’는 사회적 기업가 육성 사업에 선정돼 법인을 설립했다. 이제 ‘여성 미디어 그룹’이라는 공식 명칭도 달았다. 허휘수씨가 대표다. “이렇게 된 이상 애매하게 하지 말고 영향력을 가지자고 얘기했어요.” 은하씨가 말했다. 다음 시즌부터 성향을 과감히 드러내기로 했다. ‘4비(비혼·비연애·비섹스·비출산)’를 주제로 다룰 예정이다.
-
연쇄살인이 아니다 ‘페미사이드’다
연쇄살인이 아니다 ‘페미사이드’다
김명희 (시민건강연구소 상임연구원)
“유엔에 있는 누군가가, 아마도 당신은 믿기 어렵겠지만, ‘페미사이드(femicide)’에 관한 협약을 제안했어. 마치 탈취제 스프레이 이름처럼 들리지?” 미국 작가 앨리스 셀던(...
-
남성 특권 체크리스트 [편집국장의 편지]
남성 특권 체크리스트 [편집국장의 편지]
고제규 편집국장
울 이유가 없다고 장담했다. 마감 날마다 성을 내서 감정도 메말랐다. 삭막한 40대 남자가 영화 보며 울겠느냐고, 그럴 턱이 없다고 후배에게 큰소리쳤다. 후배는 자신했다. “엄마가...
-
‘잔인한 놀이’를 방관하지 말자
‘잔인한 놀이’를 방관하지 말자
하미나 (작가)
일요일마다 글방을 연다. 글방에는 몇 가지 규칙이 있는데 그중 하나는 사람이 아니라 글을 평가하는 것이다. 글쓴이에 대해 함부로 추측하거나 판단하지 않아야 한다. 그럼에도 글쓴이와...
-
‘82년생 김지영’ 프랑스 번역자의 바람
‘82년생 김지영’ 프랑스 번역자의 바람
파리·피에르 비슈 (출판사 마탱캄(Matin Calme) 대표)
〈82년생 김지영〉은 현재까지 미국·영국·프랑스·독일·중국·타이 등 17개국 수출을 확정지었다. 한국에서는 책이든, 영화든 마치 ‘젠더 갈등’의 대명사처럼 논의되고 있지만 〈시사I...
-
김지영, 보통의 서사가 왜 논쟁이 될까 [취재 뒷담화]
김지영, 보통의 서사가 왜 논쟁이 될까 [취재 뒷담화]
고제규 편집국장
같은 이름. 나이도 엇비슷. 82년생 김지영. 소설을 읽고 영화도 관람. 공감. 그리고 의문. 세계의 김지영들은 왜 공감할까? 제637호 커버스토리를 쓴 ‘84년생 임지영’ 기자입...
-
여성에게 드릴은 ‘손에 잡히는 자신감’
여성에게 드릴은 ‘손에 잡히는 자신감’
나경희 기자
외부 강연을 끝내고 휴대전화를 확인한 여기공협동조합 이현숙 이사장(26)은 깜짝 놀랐다. ‘집 고치는 여성들:주택수리과정 입문반’ 수강 신청이 폭주하고 있었다. 16명을 모집한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