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엣
매기 넬슨 지음, 김선형 옮김, 사이행성 펴냄

“이건 깊디깊은 블루가 하는 말이에요. 항상, 날이면 날마다, 당신에게 말을 걸고 있어요.”

세상에는 같은 초록이 하나도 없는데 내 크레파스가 할 수 있는 표현은 한 가지뿐이었다. 10색 크레파스를 쓰다가 36색을 선물받은 어느 날 감격해서 울었다. 내가 표현할 수 있는 세상이 꼭 그만큼 넓어졌다고 생각했다. 물론 자라는 동안 재능을 보이지 못한 그림보다는 글이 더 다양한 여럿을 말할 수 있는 도구라는 걸 깨달았다.
목차에 따로 제목이 없이 1부터 240까지 매겨진 번호가 전부다. 책을 열면 파란색과 얽히고 겹친 240가지 이야기가 담겨 있다. 시일까, 에세이일까, 어쩌면 짧은 소설일까. 장르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야기 속에서 자연스럽게 ‘내 삶의 블루’는 무엇이었는지 질문해보게 된다.

 

 

 

 

 

 

 

검은 얼굴의 여우
미쓰다 신조 지음, 현정수 옮김, 비채 펴냄

“하얀 두 눈의 응시를 받자 등줄기에 오한이 퍼져나갔다.”

귀신이나 마물이 저질렀다고 볼 수밖에 없는 으스스한 사건을 합리적으로 파헤쳐 명쾌하게 설명한다. 이런 장르인 이른바 ‘호러 미스터리’ 작가로 서구에서는 존 딕슨 카가 유명하지만 일본에서는 단연 미쓰다 신조다. 한국에서도 ‘도조 겐야’ 시리즈로 유명한 그가 ‘모토로이 하야타’라는 새로운 탐정으로 돌아왔다. 기본 줄거리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 패전국 일본의 탄광에서 벌어지는 연쇄 살인사건으로, 여우 귀신이란 마물의 설정이나 ‘불가능 범죄’의 논리적 해결 같은 요소는 전작들과 비슷하다. 그러나 일제의 국가범죄인 ‘조선인 강제징용’이라는 묵직한 배경을 깔고 있다는 점에서 작가의 다른 소설들과 꽤 다른 색채를 띤다.

 

 

 

 

 

 

낯선 이웃
이재호 지음, 이데아 펴냄

“그렇게 라마단이 끝났고, 예멘 난민 취재가 시작되었다.”

‘예멘 난민 1년 보고서’를 취재하면서 만났던 한 예멘인은 “난민으로 와 있다고 하면 사람들 눈빛이 달라진다”라고 말했다. 어쩌면 난민이라는 선입견이 그가 보통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다는 걸 보지 못하게 하는 게 아닐까. 혐오가 이주민을 향하는 시대, 난민에 대해 우리는 과연 얼마나 알고 있을까? 〈한겨레21〉 기자인 저자가 2년 동안 만난 난민 이야기를 담았다. 시리아, 중국, 미얀마, 예멘 등에서 온 난민들을 인터뷰했다. 난민이 된 데에는 갖가지 사유가 있다. 공통점은 한국행을 예기치 못했다는 것이다. 세금 낭비, 범죄율 증가, 빼앗기는 일자리 등 언제부턴가 난민에게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낙인. 이 책은 난민 개개인이 가진 역사를 통해 그것이 과연 온당한지 되묻는다.

 

 

 

 

 

 

1389번 귀 인식표를 단 암소
캐스린 길레스피 지음, 윤승희 옮김, 생각의길 펴냄

“동물을 상품으로 변형시키는 과정에는 동물의 개성을 알 수 있는 여지가 거의 없다.”

마트에서 우유 한 팩을 집어들 때 진열대 옆에 소 한 마리가 서 있다면 어떨까? 유축기를 단 소가 쳐다보는데 우유팩을 들고 계산대까지 걸어갈 수 있을까? 비판적 동물연구학자인 저자는 소가 만들어내는 수많은 산물 중 특히 유제품에 주목한다. 사람들이 동물의 사체와 직접 맞닥뜨릴 필요가 없는 유제품을 살 때에는 그것을 생산하는 동물의 존재를 완전히 잊어버리기 훨씬 쉽기 때문이다. 저자는 우유 한 잔이 나오기까지 이름 없이 번호로 불리는 수많은 소들이 시달리는 학대를 연구자의 시각에서 담담히 서술한다. 책 제목이기도 한 ‘1389번 귀 인식표를 단 암소’는 컬(도태된 약한 동물) 경매장에서 쓰러져 끌려 나갔다. 너무나 지치고 소진된 바람에 도축이라는 최후의 착취까지 견디지 못한 것이다.


 

 

 

 

 

우리는 코다입니다
이길보라·이현화·황지성 지음, 교양인 펴냄

“다양성은 코다가 지닌 가장 아름다운 유산이다.”

이길보라 감독이 만든 〈반짝이는 박수 소리〉는 농인(청각장애인) 부모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다. ‘결여의 의미가 담긴 장애가 아니라 또 다른 언어로 소통하는’ 부모의 세계를 자연스럽게 담아 호평을 받았다. 코다는 농인(聾人) 부모 아래 태어난 청인(聽人) 자녀를 일컫는 말이지만 그것만으로 정의 내리기 어렵다. 부모에게 수어를 배운 코다, 수어를 사용하지 않는 부모 아래서 나고 자란 코다 등 농문화와 청문화 사이에 서 있는 존재들을 포함한다. 2014년 코다의 모임인 ‘코다 코리아’가 만들어졌다. 강의 요청이 쇄도했지만 묻어둔 기억을 꺼내 반복해 이야기하다 보니 괴로워졌다. 그래서 책을 쓰게 됐다. 정상성에 대해 질문하게 만드는 책이다.

 

 

 

 

 

 

 

아무튼, 떡볶이
요조 지음, 위고 펴냄

“떡볶이 가게 생겼네.”

떡볶이에 대한 책을 쓰고 있다고 자랑했더니 사람들이 늘 떡볶이 집으로 저자를 안내했다. ‘떡볶이 맛집 인간 지도’가 되어가던 어느 날, 떡볶이에 대한 책을 쓸 자격이 있는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뭔가를 진정으로 좋아한다는 것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으로까지 이어졌다. ‘아무튼 시리즈’의 필자로 제안을 받고 생각 중일 때 팟캐스트를 함께 진행하고 있는 장강명 작가의 제안으로 떡볶이에 대해 쓰게 되었다. 그리하여 홍대 앞, 부암동 육교, 부산 깡통시장, 도봉동의 북서울중학교 인근 떡볶이 가게와 그곳에서의 기억을 글로 풀었다. 서문만 읽으려고 했는데 어느새 책의 중반. 최고의 리뷰는 이 책을 읽은 독자의 다음 끼니가 떡볶이가 되는 거라고 했다.

기자명 시사IN 편집국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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