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갑철의 사진집 〈타인의 땅〉에 수록된 작품. 이갑철은 1980년대를 모순과 갈등이 만연한 ‘타인의 땅’으로 규정했다.

올해 사진계에서 가장 왕성하게 활동한 이를 꼽으라면 60대의 구본창과 이갑철 사진가다. 구본창은 개인전만 국내외에서 네 차례나 열었고 기획전 참가는 셀 수 없이 많았다. 한미사진미술관의 〈인코그니토(incognito)〉와 스페이스22의 〈은염 너머〉는 구본창 사진의 특질을 잘 보여준다. 이갑철은 현재 한미사진미술관 삼청동별관 개관전으로 〈적막강산-도시징후〉전을 열고 있다. 그의 진가는 사진집에서 나타나는데, 대표적인 사진집 〈충돌과 반동〉(포토넷, 2010)을 올해 이안출판사에서 다시 펴냈다. 그는 또 이탈리아의 예술전문 출판사 ‘다미아니 에디토레’에서 개인 사진집을 ‘파리 포토’ 기간에 출간해 세계시장 유통에 도전한다. 물론 두 사람은 한국의
대표적 사진가다. 올해 유난히 1980년대 한국 사회를 담은 사진이 눈에 띄는 이유는 뭘까?

프랑스어로 ‘벨 에포크’라는 말이 있다. 우리말로는 ‘좋았던 시절’로 풀이된다. 전쟁과 소요가 없던 1890년부터 1914년까지 프랑스가 문화 예술적으로 전성기를 누리던 시대를 뜻한다.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에도 이 말이 나온다. 영화는 소설가 길이 파리를 헤매다가 1920년대 작가들과 조우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길은 자신의 시대보다 1920년대가 황금기였다고 생각하지만 환상에서 만난 애드리아나는 진정한 황금기는 벨 에포크라고 말한다. 다들 지금보다는 과거가 좋았다는 것이다.

사실 사진계도 그렇다. 디지털이 사진의 형식을 장악한 요즘 묘하게 1980년대를 복기하는 흐름이 나타난다. 1970년대 사진이 아마추어리즘과 프로페셔널이 혼재되었다면 1980년대는 그야말로 전업 사진가들의 황금기였을지도 모른다. 이때 가장 많은 필름이 소비되고, 많은 작가가 등장했으며, 좋은 소재의 사진이 만들어졌다. 1980년대 말 잘나가는 잡지에서 사진을 담은 스토리 한 편 원고료가 200만원 정도였다. 당시 국립대학 한 학기 등록금보다 많았다.

요즘 사진에 관심 많은 청년들은 1980년대에 태어나지도 않았다. 이들은 갤러리와 책으로 당시 사진을 보고 소비한다. 이들에게 비친 1980년대는 어떨까? 사실 사진은, 30년 한 세대를 지나면 찍을 당시의 사회적인 모순과 갈등은 지워지고 형식의 미학만 남는다. 애초에 잡지나 책을 위한 기록으로 찍어도 지금은 미학이 우선한다. 전시장을 통한 사진예술의 탄생이다. 젊은 관객이나 독자들은 구본창과 이갑철 사진에서 1980년대 군사독재의 추억보다는 빈티지한 한국의 색다른 모습에 매료된다.

젊은 사진가에게는 헬 코리아?

사진을 즐기는 딜레탕트(예술 애호가)가 아닌 청년 사진가들의 처지는 어떠할까? 우선 분명히 짚어야 할 점이 있다. 현재 청년 사진가들은 1980년대 활동하던 이들에 비해 절대적으로 불리한 환경에서 작업한다. 이들의 작업에 도움이 될 원고료나 저작권료가 사실상 없다시피 하다. 틈틈이 아르바이트를 뛰어 작업을 완성해도 원고료를 지급해줄 종이 매체가 소멸되었다. 미술관은 청년 사진가에게 전시료를 주지 않는다. 그래서 청년 사진가들은 정부 지원금이라도 받기 위해 밤새워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한다. 원래 예술제도가 보수적이라 신진과 중견의 위계 차이가 크긴 하지만 이제 좀 줄여야 한다.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이들이 지금은 기득권이 되어버린 1980년대 사진가들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훗날 청년들은 오늘을 ‘벨 에포크’는커녕 ‘헬’이라고 말할 것이다.

기자명 이상엽 (사진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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