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영

에밀 졸라의 연작소설집 〈결혼, 죽음〉(정은문고, 2019)은 제목 그대로 결혼과 죽음이 소재이고 주제다. 인간이라면 한 번쯤 가부를 고민하기 마련인 결혼과 반드시 겪지 않으면 안 될 죽음은 어느 한 작가의 펜촉 아래 녹아나기에는 워낙 커다랗고 만만치 않은 주제다. 그렇기 때문에 소설이 발명된 이래로 많은 작가들이 되풀이해 썼던 이야기도 결혼(혹은 사랑)과 죽음에 관한 것이 모두였다고 과장 없이 말할 수 있다. 이 두 주제에 겨우 맞설 만한 비중을 가진 주제로 우리는 권력을 떠올릴 수 있을 따름이다.

이 연작소설집의 1장에는 결혼에 관한 단편 네 편이, 2장에는 죽음에 대한 단편 다섯 편이 실려 있다. 특이한 것은 결혼과 죽음이 똑같이 ‘귀족’ ‘부르주아’ ‘상인’ ‘서민’이라는 제목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다(2장에만 ‘농부’ 편이 있다). 이런 구성은 사랑과 죽음을 파악하는 졸라의 방법이 철저히 경제사회적일 것이라는 암시를 해주는데, 자연주의 문학의 효시였던 그가 완성했던 총 20권짜리 〈루공-마카르 가의 사람들〉의 부제도 다름 아닌 ‘제2제정하의 한 가족의 자연적·사회적 역사’였다. 이 총서는 국내에 완역된 적이 없지만, 우리가 낱권으로 접했던 〈목로주점〉 〈나나〉 〈제르미날〉이 바로 이 총서의 일부다.

사랑과 죽음은 인간이면 누구나 겪는 보편 경험인 것 같지만, 세부는 결코 그렇지 않다. 실제로 개개의 인간이 치러내야 하는 생로병사나 생애주기는 개별적이기보다, 그가 귀속된 계급의 아비투스(habitus· 습관)를 충실히 재현한다. 피에르 부르디외가 정립했던 이 용어에 따르면 사랑과 죽음에 미리 정해진 본질이란 없다. 오히려 본질을 만들어내는 것은 각자가 보유한 경제자본(재산), 사회자본(학위나 자격증), 문화자본(학연·지연·혈연과 같은 인적 연결망), 상징자본(명예·신용·평판)의 양과 질이다. 다시 말해 부유층이 습관을 통해 체득한 삶의 본질과 서민이 습관을 통해 체득한 삶의 본질은 다르다. 졸라는 부르디외보다 훨씬 앞서 아비투스가 품고 있는 사회적 사실을 간파했다. 그는 결혼이나 죽음을 인간 누구에게나 평등한 보편 경험이 아닌, 신분이나 경제 능력에 따라 달리 경험되는 개별적인 것이라고 생각했다.

졸라는 귀족과 부르주아(상류층)의 결혼을 묘사한 두 편의 소설에서 이들의 결혼에선 애정이 필수조건이 되지 않는다고 보았다. 귀족들이 결혼을 하는 이유는 “결혼이야말로 한자리 해먹으려면 꼭 필요한 토대”이기 때문이며, 부르주아들은 재산을 늘리는 확실한 “비즈니스”로 결혼을 이용한다. 귀족과 부르주아는 혼사를 통해 경제자본과 문화자본을 늘린다. 그렇다면 부부의 애정은 어떻게 처리할까? ‘귀족’ 부부는 정확하게 “열네 달 후”부터 각방을 사용하면서 따로 애인을 만들었고, ‘부르주아’ 부부 역시 그와 같았다. “그리고 2년 후. 둘은 헤어지지는 않았지만 벌써 여섯 달째 서로를 잊은 채 생활하고 있다.” 귀족 부부가 그랬듯이 부르주아 또한 외간 여자와 남자에게서 애정을 구한다. 귀족과 부르주아 계급의 결혼은 지위와 지위, 재산과 재산이 어떤 상승작용을 낼지가 관건이다.

〈결혼, 죽음〉에밀 졸라 지음이선주 옮김정은문고 펴냄

‘서민’ 계급에서만 드러난 애정과 애도  

중류층의 사례로 나오는 ‘상인’은 사정이 조금 다르다. 번듯한 지위도 재산도 없는 이들은 결혼을 일종의 동업으로 여긴다. 떨떠름하기 짝이 없는 마지막 문장을 보자. “가정이란 일종의 잘 맞추어진 시계 같아서 부부 역할을 제각기 잘하면 정상적으로 작동된다는 점을 잘 알았다. 이 부부가 서로 사랑한다고는 말할 수 없을지라도 분명한 점은 돈을 토대로 잘 짜인 솔직한 동업자라는 것이다. 둘은 늘 동침했다. 따로 자면 침대보가 이중으로 더럽혀져 세탁하는 데 돈이 더 드니까.”

세 계급이 보여준 결혼 생활에서는 어떤 애정도 관능도 찾을 수 없다. 졸라는 사회의 가장 아래 계층인 노동자를 내세운 ‘서민’에서야 겨우 그것을 보여준다. 파리 시내에서 작은 시계·보석점을 운영했던 ‘상인’ 부부는 장사에 방해된다며 아이를 원하지 않았지만, 직업이 목수인 발랑탕과 그의 아내 클레망스는 결혼한 지 5년 동안 세 아이를 낳았다. 졸라는 ‘서민’을 다음과 같이 끝맺었다.

“봉급날이면 목수는 술에 잔뜩 취했고 호주머니는 비었다. 그렇게 귀가하는 날엔 부부싸움이 일어났고 아이들은 울어댔다. 차츰차츰 아내는 남편을 찾으러 술집에 가는 횟수가 늘어났다. 그러다 자신도 담배 연기 자욱한 술집 탁자에 걸터앉아 술을 홀짝였다. 그 모습을 보고 남편은 아내의 뺨을 때렸고 아내는 잘못했다고 빌었다. 이 소란하고도 구차한 생활 속에서 어떨 땐 데울 불도 먹을 빵도 없지만, 낡고 뜯어진 커튼 아래 놓인 침대에서는 밤이면 사랑의 애무가 날갯짓이라도 하듯 파닥거렸다.” 이 마지막 장면은 착잡하다. 술주정뱅이 남편을 찾으러 술집을 기웃거리는 클레망스의 모습에서 〈목로주점〉이나 〈나나〉에 나오는 여주인공들의 불우한 미래가 예측되기 때문이다. 여주인공들이 공유하는 강한 유사성은 그 시대 여성들이 감내해야 했던 운명의 일부이면서, 〈결혼, 죽음〉을 루공-마카르 총서의 미니어처(축소 모형)로 읽게 해준다.

600만 년이나 된다는 인류 역사에서 졸라가 결혼제도의 기본으로 삼은 일부일처제가 유럽에 뿌리내린 것은 기독교가 시작한 서력기원 초부터다. 결혼제도와 이성애에 기반한 일부일처제는 매우 항구적인 것으로 믿어졌으나, 이 소설이 쓰인 프랑스에서는 1970년대부터 결혼율이 떨어지기 시작했으며, 1999년 팍스(PACS:시민연대협약) 제도가 도입됨으로써, 동성 커플과 이성애자들의 일시적 동거에도 결혼과 똑같은 법적 지위가 주어졌다. 이런 사례는 결혼제도가 시대적·사회적 구성물이라는 것을 새삼 가르쳐준다.

죽음은 인간의 생물학적 조건이기 때문에, 시대나 사회 환경에 따라 변경될 수 있는 가공의 제도가 아니다. 바뀌어온 것은 산 자들이 고인을 애도하는 방식이다. 졸라는 결혼이라는 주제를 다룰 때도 그랬지만, 이 주제를 대하면서도 매우 짓궂고 냉혹했다. 먼저 ‘귀족’에 나오는 과부는 남편의 장례가 끝나는 순간 “볼 위로 화색”이 돈다. 풍족한 유산을 물려받은 그녀에게 남편의 죽음은 새로운 삶이 열리는 계기다. 노동자 계급의 과부는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부르주아’에서는 어머니가 죽자 형제들이 유산 분배를 놓고 법원으로 달려가고, ‘상인’에서 남편은 장례식을 하느라 며칠 동안 가게 문을 닫은 것에 죄의식을 느낀다. 반면 ‘서민’에 나오는 노동계층에게 장례는 진탕 먹고 마실 수 있는 잔칫날로 묘사된다. 애도의 참모습은 ‘농부’에서나 볼 수 있다.

기자명 장정일 (소설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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