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A지난 11월7일 프랑스 정부는 600여 명의 파리 경찰을 동원해 불법 이민자들이 설치한 텐트를 철거했다.

프랑스 사회에서 이민은 오랜 화두다. 보도 전문 채널 〈프랑스앵포〉는 이민자들의 소득과 소비, 사회보장세로 매해 40억 유로(약 5조2000억원)가 창출된다고 분석했다. 프랑스 정부는 국내총생산의 약 0.5%를 이민정책 집행에 쓴다. 일반적인 인식과 달리, 최근 프랑스는 이민자에게 그리 관대한 나라가 아니다. 유럽연합 통계기구인 유로스탯에 따르면 지난해 독일의 이민 수용률은 42%, 이탈리아는 32%인 반면 프랑스는 28%이다. 프랑스 정부는 문을 더 걸어 잠그겠다는 방침이다. 강경하고 구체적인 이민정책을 발표했다.

마크롱 정부의 숙원사업인 이민정책 개편은 여러 차례 반발을 불러왔다. 지난해 8월 프랑스 내무부는 경제이민 거부 대상자의 이의 제기 기간을 30일에서 15일로 줄이고, 이민 신청자 최대 구금 기간을 45일에서 90일로 늘리는 법안을 발의했다. 이 법안은 각계 반발에 부딪혀 최대 구금 기간만 늘리고 이의 제기 기간 30일은 현상 유지하는 수정안이 가결됐다. 정부로서는 ‘절반의 성공’이었다.

지난 9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의원들과 회동하면서 한 연설도 갈등을 불렀다. 마크롱 대통령은 이날 “이민 문제를 직시해야 한다. 휴머니스트를 자처하는 이들의 태도는 때로 지나치게 방임적일 수 있다”라고 말했다. 아울러 경제이민에 초점을 맞춘 이민정책의 얼개를 발표했다. 여당 일각에서도 반발이 나왔다. 대통령이 연설한 다음 날 여당인 ‘전진하는 공화국(LREM)’ 의원 15명은 “(마크롱 대통령은) 국외와 이슬람에 반감을 가진 사람들이 자주 써먹는 경제이민자에 대한 논의에 쉽게 속지 말라”고 공식 성명을 냈다.

마크롱 대통령은 9월24일 라디오 ‘유럽 1’과의 인터뷰에서 두 차례 하원·상원 토론을 통해 다룰 구체적인 이민정책을 언급했다. 그는 “모두를 잘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지나치게 매혹적인 나라가 되어서는 안 된다”라고 말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또한 인권, 민주주의와 자유가 보장된 ‘안전한 나라’에서 온 이민 신청자에 대한 ‘난민 신청자 보조금(ADA)’ 지급을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불법 이민자 추방과 귀국 지원을 늘리고, 가족 이민 조건을 강화하며 불법으로 받아가는 사회보조금이 있는지 확인하기로 했다. 난민에게 무료로 제공했던 국가의료지원(AME)에 대해서는 남용이 없는지 확인하고 3개월 이상의 ‘불안정한 상황’을 증명해야 지원받을 수 있도록 하며, 귀화 언어 수준은 ‘중급(B1)’으로 상향된다. 난민정책에 대한 구체적 논의는 10월7일, 10월9일 하원과 상원에서 이어졌고 11월6일 에두아르 필리프 총리는 20개의 구체화된 이민정책안을 발표했다.

최근 발표한 이민정책의 핵심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쿼터제’다. 직종에 따라 인력이 필요한 곳에 일정 수의 이주자를 채용하는 것이다. 정부가 매해 국회와 논의 후 고용 목표치를 정하고, 출신국에 관계없이 계약된 기간의 체류증을 발급한다. 전체 체류증 발급 26만 건 중 3만3000건에 불과했던 ‘노동 체류증’ 발급을 늘리겠다는 것이다. 발급 기준은 7가지에서 3가지로 간소화된다. 프랑스 고용청은 자동차 제조사, 건설공사 노동자 등 일자리 24만 개가 인력난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내년 여름까지 일자리가 부족한 직군 리스트를 작성할 예정이다.

ⓒEPA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좌파로부터 ‘극우 포퓰리즘 정책을 차용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마크롱 ‘우향우’에 이민 신청자들 ‘울상’

쿼터제 적용에 대한 반응은 비교적 긍정적이다. 전진하는 공화국의 오로르 베르제 대변인은 10월7일 〈프랑스앵포〉와의 인터뷰에서 쿼터제 시행에 대해 “좋은 아이디어이며 현실적이다”라고 말했다. 마크롱 대통령과 회동한 이후 이민정책 개선에 적극 반대하며 공식 성명을 냈던 소니아 크리미 전진하는 공화국 의원 역시 11월7일 쿼터제 적용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둘째, 국가의료지원(AME) 관리 정책이다. 이 정책은 더 논쟁적이다. 2000년에 창안한 국가의료지원은 난민이 이민 신청을 하자마자 병원과 약국에서 무료로 의료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8년 12월31일까지 총 31만8106명이 연간 총 9억3500만 유로(약 1조2000억원)의 수혜를 받고 있다. 새 정책에 따르면, 정부는 위급하지 않은 의료 서비스는 제공하지 않는다. 지난 10월7일 〈르몽드〉 분석에 따르면 B형 간염이나 암과 같은 만성질환도 대상에서 제외된다. 필리프 총리가 발표한 구체안에 따르면 ‘응급치료’가 아닌 대퇴부나 무릎 의족, 백내장 수술 같은 치료를 받으려면 9개월까지 기다릴 수도 있다. 또한 국가의료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3개월간 프랑스에 불법체류 중이라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3개월 유효기간의 관광비자로 ‘의료 관광’을 하는 남용을 막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알바니아, 조지아 같은 ‘안전한 나라’에서 의료 혜택을 받기 위해 이민 신청을 하는 경우를 예방하고자 3개월이 넘는 체류를 조건으로 내걸었다.

이 정책은 즉각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사회당(PS)의 올리비에 포르 대표는 지난 9월26일 프랑스 2채널과 인터뷰할 때 “국가의료지원은 공공보건의 영역이다. 난민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거리에 있는 사람들을 돌보지 않아서 여러분의 아이가 결핵에 전염되길 원하는가?”라고 말했다. 난민지원단체 유토피아56의 대표 빅토르 갈루는 11월6일 〈프랑스앵포〉와의 인터뷰에서 “3개월의 대기 기간이 이주자의 건강을 더 악화시킬 수 있다”라고 답했다.

현지에서는 이민정책에 주력하는 마크롱 정부의 기조가 일종의 정치 전략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우파가 기대어온 반(反)이민 정서에 호응해서 표를 끌어오려 한다는 것이다. 지난 9월 다수당 앞에서 처음으로 이민정책에 대한 논의를 제안했을 때, 마크롱 대통령은 노골적으로 2020년 지방선거와 2022년 대통령 선거를 언급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이날 “좌파가 몇십 년간 이 문제를 대면하지 않아 서민층이 우파로 이주하게 됐다”라고 말했다.

2007년 공화당(LR)의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 때 이미 제안했으나 실패했던 쿼터제를 다시 정책으로 꺼내든 것도 현 정부의 ‘우향우’를 보여주는 사례다. 실제로 사르코지 전 대통령의 소속 정당이었던 공화당은 마크롱표 쿼터제에 우호적이다. 반면 좌파는 마크롱 대통령이 인기가 떨어질 때마다 극우 포퓰리즘의 정책을 가져다 쓴다며 비판한다. 프랑스공산당(PCF)의 세바스티앵 쥐멜 의원은 “마크롱 대통령이 마린 르펜 국민전선 대표(로 대표되는 극우정책)라는 자신의 ‘생명보험’을 택한 것이다”라고 평했다.

기자명 파리∙이유경 통신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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