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티플랫폼 전략에 독자들이 ‘중독’되다
  • 에머리빌/글 김영화 기자·사진 신선영 기자
  • 호수 638
  • 승인 2019.12.10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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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보도센터(CIR)〉는 결과물을 웹사이트에만 올리지 않는다. 애니메이션·다큐멘터리로 만들고, 팟캐스트·연극·시 등으로 가공해 기사 도달률과 영향력을 극적으로 높인다.
ⓒ시사IN 신선영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비영리 탐사보도 매체 CIR의 사무실.

리빌(Reveal):탐사보도센터(CIR·Center for Investigative Reporting)
설립:1977년
규모:66명(편집국 55명)
출판 방식:팟캐스트, 웹사이트(revealnews.org), 다큐멘터리, 애니메이션 등
재정:후원금 운영. 2018년 총예산 1200만 달러(약 141억원)

통유리로 둘러싸여 밖에서 내부가, 안에서 바깥이 훤히 보였다. ‘에머리테크(Emery Tech)’라고 쓰인 붉은 담을 지나자 목조 바닥 위로 테라스가 펼쳐졌다. 1930년대 밸브 공장이던 곳을 2000년대 들어서 리모델링한 건물이었다. 3층으로 된 에머리테크의 높이는 28피트(약 8.5m), 총넓이는 약 2만㎡에 달했다. 흔한 언론사의 모습은 아니었다. 잘못 찾아온 게 아닌지 지도를 다시 확인했다. 비영리 언론 〈리빌(Reveal)〉을 운영하는 〈탐사보도센터(CIR·Center for Investigative Reporting)〉가 맞았다.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공간을 원했다. 우리가 하는 작업들은 창의적인 발상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CIR 대표이사 크리스타 스카펜버그 씨가 말했다. CIR의 탐사보도 결과물은 웹사이트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애니메이션이나 다큐멘터리, 팟캐스트로 만들어진다. 때로 인터랙티브 웹페이지는 물론이고 연극이나 시로 가공되기도 한다. 2011년 19개월에 걸쳐 캘리포니아주 공립 초등학교 지진 안전 문제를 취재한 이후에는 컬러링북을 만들었다. 총 6개 국어로 번역해 여러 나라 초등학교에 배포됐다. 웨스트버지니아의 약물중독 문제를 해결하는 세 여성을 다룬 다큐멘터리 〈헤로인vs.히로인〉은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다. 2018년 이 작품은 아카데미 최우수 다큐멘터리 단편 후보에 올랐다.

이른바 ‘하나의 스토리, 다수의 독자’라고 불리는 CIR의 멀티플랫폼 전략이다. 입구에 놓인 무수한 트로피와 벽을 빼곡히 채운 상패는 그 결과였다. 뉴스 및 다큐멘터리 에미상, 방송계의 퓰리처상이라 불리는 피버디상, 디지털 저널리즘 분야에서 권위 있는 상으로 알려진 듀퐁상 등 수상 범위가 넓었다.

그중에서도 라디오 쇼이자 팟캐스트인 〈리빌〉에 주어진 상패가 많았다. 라디오 뉴스나 대담 방식으로 진행되는 기존 언론사 팟캐스트와는 다르다. 〈리빌〉은 탐사보도에 스토리텔링을 결합해 기사를 일종의 극 형태로 만든다. 매주 에피소드 하나씩 미국 전역 500여 개 공영 라디오방송국에서 스트리밍되고 있다. 에피소드에 들어가는 음악도 〈리빌〉이 직접 만든다. 직원 중에는 음향과 작곡을 담당하는 사운드 디자이너가 두 명 있다. ‘On Air’라고 쓰인 녹음 스튜디오 맞은편에 편집실과 음향실이 연달아 붙어 있었다. 유리로 된 음향실 안으로 기타와 건반, 탬버린, 물소리를 내는 레인스틱이 보였다.

1977년에 설립된 CIR은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비영리 탐사보도 매체다. 이전에는 주로 PBS의 〈프런트라인〉, CBS의 〈60분〉 등 방송 프로그램과 협업을 많이 했다. 본격적으로 디지털 혁신을 시작한 건 2008년, 금융위기로 인해 회사 재정이 어려워지던 때였다. 당시 CIR 이사회는 뉴스룸의 위기를 타개하고 실험을 주도할 인물을 찾았다. 〈뉴욕 타임스〉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 등을 거친 로버트 로젠탈 기자가 적임자로 낙점됐다. “펀딩받기가 어려웠다. 1년 안에 문을 닫아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로버트 로젠탈 이사는 2008년부터 10년간 대표로 조직을 이끌었다. 그는 “기존 언론사의 실패를 반복하고 싶지 않다”라는 일념으로 멀티플랫폼 전략을 고안했다. 이후 10년, 회사가 급속도로 성장했다. 2008년 7명이 전부였던 인원은 현재 66명으로, 예산은 150만 달러에서 1200만 달러로 늘었다. 현재 미국 비영리 언론사 중 가장 큰 규모에 속한다.

ⓒ시사IN 신선영CIR은 뉴스 및 다큐멘터리 에미상, 방송계의 퓰리처상인 피버디상, 디지털 저널리즘 분야에서 권위 있는 듀퐁상 등을 받았다(위).

내용만큼이나 그릇이 중요하다는 생각은 절박함에서 나왔다. 좋은 보도를 해도 널리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로젠탈 이사는 2013년 ‘리빌’ 웹페이지를 따로 제작했다. 사람들에게 단번에 각인되는 이름이 필요했다. “어려운 탐사보도의 내용을 사람들이 어떻게 읽고, 보고, 듣게 할 것인가를 궁리한다. 최대한 많은 독자들에게 도달하기 위해서다.” 스토리텔링과 시각화를 위해 IT 전문 인력을 고용했다. 현재 전체 인원 66명 중 편집국(Editorial)에 속하는 직원은 55명이다. 데이터팀, 라디오팀, 비디오팀, 그리고 독자팀까지 포함했다. 크리스타 스카펜버그 대표는 “스토리를 생산하고 독자에게 전달하는 과정 자체 모두가 제작 영역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어떤 스토리텔링을 통해, 어떤 독자층에 도달했는지까지 검토하는 것 모두가 ‘보도(Reporting)’의 일부라고 보았다. 나머지 11명은 대표이사를 포함한 운영 인력, 펀드레이징(자금 모집) 담당 3명과 법무팀 인원이다.

11월7일 오전 때마침 회의가 있었다. 9시30분이 가까워오자 직원 열댓 명이 서둘러 회의실로 모였다. 차기 프로젝트에 관한 기획회의였다. 시애틀과 워싱턴 D.C.에 있는 라디오 에디터도 화상회의를 통해 참여했다. 로젠탈 이사는 “어느 누구도 프로젝트에 후발 주자로 참여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기자뿐 아니라 데이터 분석가, 그래픽 디자이너, 라디오 에디터, 웹 프로듀서, 비디오 디렉터까지 기사 하나당 평균 15명이 참여하는 팀이 기획 단계에서 꾸려진다. 그중 취재기자는 4~5명뿐이다. 취재기자의 스토리를 어떤 플랫폼에 담을지, 시각화와 연출은 어떻게 할지 논의가 이뤄진다. 취재원이 인터뷰를 꺼려하거나, 그를 보호해야 할 때 주로 쓰는 방법은 애니메이션이다. “이야기가 파워풀해서 글로 푸는 것 이상으로 큰 임팩트가 있었다.” 로젠탈 이사가 말했다.

15명이 18개월간 데이터 3100만 건 분석

2018년 2월 보도된 〈Kept Out(출입금지)〉은 퓰리처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전국 주택담보대출 기록을 분석한 결과 61개 대도시에서 백인에 비해 유색인종 주택 대출 거부율이 높은 현실을 고발했다. 시작은 애런 글랜츠 선임기자의 간단한 의문이었다. ‘인종차별이 만연했던 짐크로 시대보다 지금은 얼마나 달라졌나.’ 데이터 분석가, 라디오 에디터, 프로듀서 등 총 15명이 달라붙어 18개월간 데이터 3100만 건을 분석하고 대출 신청자를 인터뷰했다. 인터랙티브 웹페이지 외에도 10컷 만화, 다큐멘터리 두 편, 팟캐스트 세 편 등 총 18개 콘텐츠가 연이어 공개됐다. 여기서 끝난 게 아니었다. 이후 독자팀은 문자메시지 플랫폼을 열어 각 지역에서 비슷한 사례가 있는지 피드백을 받았다. 후기 2000건이 각지에서 왔다. 응답자 가운데 일부를 팟캐스트에 초대해 애런 글랜츠 기자가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올해 〈Kept Out〉은 총 8개 언론 및 프로그램상을 받았다.

처음 협업 모델을 도입했을 때 가장 크게 반발한 이들은 기자였다. 취재하고 글만 쓰는 일반적인 업무와 달랐기 때문이다. “탐사보도 기자들은 누구도 믿지 않는다. 그들은 취재 과정과 결과를 공유하길 꺼려했다.” 로젠탈 이사가 말했다. 실제로 2013년 라디오쇼 〈리빌〉을 시작했을 때, 신문사 출신의 경력이 쟁쟁했던 기자들이 떠났다. 원했던 방식이 아니라는 이유였다. “일부 기자들이 ‘나는 신문기자인데 왜 라디오를 해야 하는지’ ‘이런 일에 시간을 쓸 수 없다’고 화를 내기도 했다. 많은 반발이 있었다.”

로젠탈 이사도 신문사 기자로 일할 땐 단독보도와 특종에 목을 맸다. 하지만 결론은 명확했다. 배타성과 속보 경쟁을 포기하니 기사 도달률이 높아졌다. 애니메이션과 팟캐스트로 만들어진 탐사보도 스토리텔링이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자 분위기가 달라졌다. “우리 보도의 목표는 클릭 수와 페이지뷰 수가 아니다. 사회에 변화를 만드는 영향력이다. 법과 제도가 바뀌는 것이다.” 이 부분이 비영리 언론사로서 CIR이 기성 언론사와 차이를 만드는 중요한 부분이라고 로젠탈 이사는 설명했다.

협업을 넘어 탐사보도의 결과물을 공유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대형 프로젝트가 끝날 때마다 취재 자료가 쌓여갔다. 짧게는 6개월, 길게는 2년이 걸리는 프로젝트였다. 노동 착취가 벌어지는 재활원이 어디에 있는지, 처벌받지 않는 강간 사건은 전국에 몇 건인지, 극단주의 커뮤니티에 가입한 경찰관은 전국적으로 몇 명이나 되는지에 관한 방대한 데이터였다. 많은 도시에서 문제가 있었지만, 보도에 싣는 내용은 일부에 불과했다.

ⓒ시사IN 신선영CIR의 디지털 혁신을 이끌고 있는 크리스타 스카펜버그 대표.

CIR은 2018년 8월 ‘지역 보도 네트워크(Local Reporting Network)’를 만들었다. 이 네트워크는 지역 언론사 기자들에게 CIR이 확보한 방대한 데이터를 무료로 개방한다. 그뿐 아니라 구체적인 취재 가이드라인을 함께 제공한다. 각 지역에서 데이터를 어떻게 이용해야 하는지, 취재 시 유의점은 무엇인지, 또 우리는 어떤 시행착오를 겪었는지 생생한 팁을 담은 ‘툴킷(tool kit)’을 마련했다. 〈시애틀 타임스〉 〈볼티모어 선〉 등 지역 일간지들이 적극 참여했다. 현재 이 네트워크에는 기자 840명이 가입했다. 지역 보도 네트워크는 전국 규모의 비영리 언론사가 지역 언론사와 공생하는 모델이 되었다. 스카펜버그 CIR 대표이사는 “상호 이익이 되는 대단한 모델”이라고 강조했다. “위기에 놓인 지역 언론사를 우리만의 방식으로 도울 수 있었고 CIR의 탐사보도가 각 지역의 버전으로 퍼져나가는 걸 볼 수 있었다.”

‘우리는 좀 더 독립적이고 심층적인 언론이 필요하다.’ ‘보도가 사회에 주는 임팩트를 믿는다.’ 개인 후원자들이 CIR에 후원하는 이유로 써낸 답변들이었다. 정치인들의 말만 옮기는 기성 언론에 대한 실망감이 커져가고 있었다. CIR 같은 독립적인 비영리 언론사는 그 빈곳을 채운다. 현재 CIR의 개인 후원자는 3000명 정도다. 개인 후원액은 2018년에 총 80만 달러(약 9억원), 2017년에는 270만 달러(약 32억원)를 기록했다. 로젠탈 이사는 CIR의 보도를 ‘잔물결 효과’에 빗대어 설명했다. “강물에다 돌을 던지면 파동이 가장자리까지 미친다. 언론사 하나를 후원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 전역의 커뮤니티까지 여파가 확장되는 것을 후원자들은 보게 된다.”

‘임팩트가 생길 때까지’ 계속 보도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주로 다루다 보니 CIR은 현재 여러 싸움을 진행 중이다. 극단주의 성향 사람들이 이민자 이슈를 다루는 CIR 기자에 대한 비방과 위협을 이어가고 있는 게 대표적이다. 해당 기자는 여성이고 이민자라 더욱 표적이 되었다. 스카펜버그 대표는 이를 저널리즘에 대한 공격이라고 단언한다. “미국의 정치적 공기가 점차 분열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보도 내용과 상관없이 기자의 정체성만으로 마녀사냥을 한다.”

여러 건의 소송도 진행하고 있다. ‘플래닛 에이드’라는 자선단체와는 3년째 기나긴 싸움을 벌이고 있다. CIR은 2017년 플래닛 에이드가 국가 지원금을 불법적으로 운영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후 여러 기관이 플래닛 에이드에 대한 자금 지원을 끊었다. 이들은 해당 보도를 허위라고 주장하며 CIR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지금까지 변호사 비용으로 지출된 금액만 700만 달러에 이른다. “이것은 언론자유에 관한 문제다. 우리에겐 팩트와 증거가 있다. 그들이 진실이 밝혀지는 것을 거부하고 있어 소송이 끝나지 않고 있다.”

CIR의 탐사보도는 ‘임팩트가 생길 때까지’ 이어진다. 11월23일 CIR의 로라 모렐 기자는 후원자와 독자들에게 뉴스레터를 발송했다. 이민자 비자 제도와 관련한 보도 이후 몇몇 민주당 의원들이 관심을 보였고, 곧 관련된 법안이 제출된다는 내용이었다. 스카펜버그 대표이사는 이렇게 말했다. “대부분의 탐사보도는 우울하고 슬프기 때문에 거기서 끝나선 안 된다. 문제가 해결되고 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계속 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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