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현지

따끔했다. 기분 나쁜 느낌이 뒷목까지 타고 올라왔다. 손가락엔 선만 보일 뿐 아직 피는 보이지 않았다. 중요한 건 어느 정도로 베였는지 규모의 문제다. 붉은 피가 선을 따라 점점 넓어진다. 마침내 한두 방울 바닥에 떨어지는 피를 보고서야 자리에서 일어나 지혈한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다. 욕실 배수구에 몰려든 머리카락 뭉치를 치우려고 철망을 뜯어내려다가 이 사달이 났다.

예전에도 손가락을 베인 적이 있었다는 것을 두 번째 베이고 나서 깨달았다. 그만큼 무심하게도 먼 기억이다. 그때도 이런 생각을 한 것 같다. ‘왜 욕실 배수구 철망은 이렇게 날카로울까. 사람 손이 닿는 부분인데 부드럽게 연마를 하면 안 되나’ 하고. 사각형의 배수구 철망이 날카로워야 할 이유는 없다. 공임비가 더 든다거나 기술적인 문제도 아니다. 사람 손이 자주 닿지 않는 곳이라 그냥 대충 넘겼을까.

가로·세로로 찢긴 구성원들

복직한 지 4년째. 회사가 다시 어렵다고 한다. 월 매출액이 줄었고 누적 적자는 쌓인다. 노동조합은 자구안이란 이름으로 선제적으로 복지를 중단하고 각종 노사 합의 사항을 뒤집었다. 회사 또한 11월25일자로 사무직 순환휴직을 단행했다. 그 규모가 70명 가까이 된다. 회사든 노동조합이든 2009년 쌍용차 대량해고 사태를 들먹이며 경각심에 불을 붙인다. 자동차 산업 전반의 문제와 전기차 생산 차질 그리고 경영 문제가 혼재되어 쌍용차가 다시 어려움 앞에 놓였다. 우리는 이 어려움을 잘 벗어날 수 있을까. 극복해야 할 이유는 너무나 분명한데, 그 과정이나 응어리진 마음들이 그리 쉽지 않다.

쌍용차 정리해고 사태는 구성원들 사이에 속마음을 감추게 하는 구실을 한다. 적당히 유지되는 거리와 적당한 인사치레가 일상이 되어버렸다. 말 한마디에 가시가 돋아 있거나 은근한 멸시와 침묵이 깔려 있다. 뭐라 딱 꼬집어 말할 순 없지만 데면데면한 경우가 태반이다. 자주 웃고 농담도 하지만 그 속에 얼음이 박혀 있다. 누구 하나 이렇게 교육하지 않았지만 정리해고 쓰나미에서 살아남은 이들의 생존 방식이 삶의 생태계를 바꿔놓았다. 오뉴월에 등골에서 서늘함을 느끼거나 한겨울에 뜨거움이 목에서 올라오는 경우가 잦아졌다.

지난 10년을 돌아보는 쌍용차 투쟁 백서를 만들고 있다. 내년 5월을 발간 목표로 삼고 있는데 가능할지는 모르겠다. 분량도 분량이지만 시기별로 다양한 의견이 반영되어야 하는데 그 작업이 원활하지 않다. 무엇을 기록할 것인지도 중요하지만 누구의 입장이 어떻게 반영되는가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소외되고 멀어져간 사람들, 지금까지도 서로 척지고 인사도 하지 않는 이들이 너무 많다. 그 숫자에 압도당하고 가끔 가위에 눌린다. 공장 안에서 함께 일하고 있지만 그 경험은 각자 실로 다양하다. 해고 경험이 없는 사람과 무급휴직을 당해봤던 사람. 해고 경험이 있거나 희망퇴직을 했던 이들.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이 된 사람과 아직도 비정규직으로 있는 이들. 희망퇴직을 했다가 공장 안 업체에 들어와 일하는 이들과 업체 하나 받아 사장으로 일하는 전직 노동조합 위원장도 있다. 가로로 찢기고 세로로 갈라진 채 있다. 이 모든 것을 기록하고 싶지만 그것은 희망 사항일 뿐이다. 더욱이 그 모든 걸 기록하는 것이 누구에게 어떤 도움이 될까 싶다. 그것조차 마음에 오래 품고 있다가 먼 훗날 말하고 싶은 것은 어쩌면 아무짝에도 쓸데없을지 모를 나의 알량한 선량함일까.

사람 좋은 웃음보다 진심을 전하는 쓴소리가 낫다. 관심은 그런 거니까. 욕실 배수구 철망에 손 베인 사람은 운 없어 당한 것이 아니다. 주의가 부족해서도 아니다. 날카로운 철망이 문제의 원인이다. 굳이 날카로울 필요 없는 욕실 배수구 철망이라면 부드러운 마무리가 필요하지 않을까.

기자명 이창근(쌍용자동차 노동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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