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지난해 3월 〈IOC 성평등 리포트〉라는 흥미로운 보고서를 내놓았다. “올림픽 참가 선수의 남녀 비율을 동일하게 한다.” “경기 시간 라운드 횟수, 장비 등에 차별은 없는지 조사하여 최대한 성평등하게 운영한다.” “코치는 성별 균형을 대표해 선발하며 IOC 집행위원 등은 기존 30%를 넘어 남녀 동일 비율이 되도록 한다.” 보고서는 스포츠 경기, 미디어, 예산 등 5개 분야에서 성평등을 실현하기 위한 25개 권고안을 담고 있다.

한마디로 파격적이다. 그렇다고 선언적 차원에만 그치지도 않는다. 미디어가 성차별적이지 않고 공정하며 균형 있는 경기 보도를 하도록 구체적으로 권고하는가 하면, 성평등 예산을 할당하게끔 못 박음으로써 실행력을 담보하고 있다.

1995년 베이징 세계여성대회 이후 스포츠 분야의 성차별 해소와 여성들의 스포츠 참여 확대 및 리더십 향상은 성평등 실현을 위한 핵심적 의제의 하나로 자리 잡아왔다. 유엔을 비롯한 IOC와 여러 국제기구, 서구 각국 등의 지속적인 관심과 노력은 최근 들어 가속도를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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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여성 참정권 운동의 기수였던 수전 앤서니는 이미 120여 년 전, “자전거 타기가 다른 어떤 일보다 여성 해방에 크게 기여했다”라고 설파한 바 있다. 유엔과 IOC 등은 “스포츠가 성평등을 증진시키고 성인 여성과 소녀들의 역량을 강화하는 가장 강력한 플랫폼 중의 하나다”라고 단언한다. 2000년 이후 발간된, 스포츠와 성평등에 관한 각종 국제 문건은 성평등 구현에 기여하는 스포츠의 강력한 힘을 강조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하지만 이는 역설적으로 스포츠 분야가 여전히 성차별적이며 여성 참여가 저조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여성이 올림픽 대회에 처음으로 출전한 것은 1900년 파리 올림픽부터다. 참가 여성 선수는 22명. 전체 선수 997명 중 2.2%에 불과했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여성 선수 참가 비율이 45%에 도달했지만 여성 코치의 수는 9~11%로 극히 낮았다. 이처럼 저조한 여성 참가 비율이 비단 올림픽 대회에 국한될 리가 없음은 불 보듯 뻔하다.

한국 상황은 더 좋지 않다. 대한체육회에 등록한 여성 선수는 전체의 22%, 여성 지도자는 고작 18%다. 단체의 임직원 현황도 마찬가지다. 대한체육회 상근 직원 중 여성이 3분의 1 정도 되는데, 이 중 고위직은 단 한 명도 없다. 67개 회원종목단체 중 대한민국댄스스포츠연맹 등 5곳은 여성 임원이 한 명도 없다. 전체 평균을 내도 여성 임원의 수는 14%에 미치지 못한다.

한국에서 스포츠와 성평등 영역은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성가족부가 5년마다 수립해 이행하는 양성평등 정책 기본계획에는 스포츠 관련 정책 과제가 아예 없다.

스포츠 단체의 성평등 평가하고 재정 지원하는 영국·핀란드

영국 스포츠협회는 2004년부터 스포츠 분야의 평등 증진 정책을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수립해 이행하고 있다. 또한 영국 여성스포츠회는 280개 학교에서 5만여 명에 이르는 여학생을 대상으로 스포츠 참여를 확대하는 프로그램을 대대적으로 실행하고 있다. 영국과 핀란드 정부는 스포츠 단체들을 대상으로 성평등 및 차별금지를 평가하고 그 결과와 연계해 공적 재정을 지원하는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핀란드는 정부의 성평등 행동계획에 스포츠 관련 프로젝트를 다수 포함시키고 정례적으로 정부 보고서를 발간해 실태 검토 및 개선 방안을 적극 제시하고 있다.

한국 정부도 스포츠 영역에서 발생하는 성차별을 줄이고 성인지적 관점에서 스포츠 정책을 구현하기 위한 기본계획 및 행동계획 수립에 착수해야 한다. 스포츠 분야의 정례적인 성평등 실태 파악과 성평등 교육 확대 또한 필수다. 이 같은 국가의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노력 없이 체육계가 오래전부터 표방해온 ‘스포츠 강국에서 스포츠 선진국으로’ 나아가기는 어렵다. 사회 전반적으로 성평등이란 물결은 이미 급류를 타기 시작했다. 스포츠 영역 또한 예외일 수 없다.

기자명 문경란 (스포츠혁신위원회 위원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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