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 미친 화가가 있다. 30여 년 동안 전국 각지를 누비며 이 땅의 산수와 문화유산을 화폭에 담았다. 2008년부터는 서울을 떠나 지리산 천왕봉 아래 터를 잡고 산다. 사람들은 언젠가부터 이호신 화백(62)을 ‘지리산 화가’라고 부른다.
이번에는 서울의 진산 북한산과 도봉산이다. 이어진 듯 끊어지고, 끊어진 듯 이어진 두 산을 특유의 장쾌한 붓으로 그려냈다. 그에게 서울의 진산을 그림으로 담아보라 권한 건 수십 년 지기인 이종성 시인이었다. 2014년과 2015년 이종성 시인과 함께 한 달에 한 번씩 북한산과 도봉산을 찾았고, 올해도 부지런히 서울을 오갔다. 이렇게 그려낸 작품이 모두 150여 점. 이 가운데 40점을 추려 11월15일부터 〈북한산과 도봉을 듣다〉 개인 초대전을 열고 있다. 서울 혜화동 JCC아트센터에서 2020년 1월31일까지 연다.
우선 전시회 작품 규모에 압도된다. 작품 하나가 3m에 달하는 대작들이 수두룩하다. 지리산 실상사에 소장된 작품 ‘생명평화의 춤’이 가로 6.9m, 세로 1.8m임을 떠올리면 그다지 놀랄 일도 아니다.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JCC아트센터 건물 전관이 이런 작품들로 채워졌다. 1층부터 4층까지, 전시관 전체가 북한산이고 도봉산이다. 백운대, 칼바위, 숨은벽, 대동문, 오봉, 망월사 등 두 산을 즐겨 찾는 이들이 사랑하는 풍경이 한지에 펼쳐진다.
그는 여전히 화첩을 품고 산에 오르는 화가다. 사진 찍듯 그리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재해석한 풍경을 화첩에 먼저 스케치한다. 그러니까 화폭에 담긴 북한산과 도봉산은 오롯이 이호신 화백만의 시선과 상상으로 그려낸 화면이다. 그는 “드론으로 찍을 수 있는 풍경을 내가 그릴 필요는 없지 않느냐”라고 말한다.
작품에는 산아래 아파트며, 계곡에서 뛰노는 아이들, 대동문에서 도시락 까먹는 우리네 일상이 친근하게 담겼다. 말 그대로 ‘생활산수’다. 자세히 살펴보면 작품 곳곳에 그림 그리는 이호신 화백과 이종성 시인의 모습이 숨어 있다. 산과 나무, 산을 찾은 사람들, 그리고 그 모습을 그리는 화가가 한데 어우러져 있다. 그의 작품을 보노라면 우리네 산수가 어째서 한지에서 더욱 아름답게 빛을 발하는지 알 수 있다.
지난해 봄 이호신 화백은 지리산 둘레길 10주년을 맞아 사단법인 숲길 이상윤 상임이사와 함께 〈지리산 둘레길 그림편지〉를 펴냈다. 그때 경남 산청군 남사예담촌에 있는 그의 작업실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곳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방대한 그의 화첩이었다. 이 땅의 산과 강, 마을과 길이 그의 화첩에 시처럼 쓰여 있다. 그 화첩에 서울의 두 산도 우뚝 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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