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PI 홈페이지 갈무리CPI 기자들과 위키피디아 편집자들이 미국정보 공개법에 대한 문서를 검토하고 있다.

③ 탐사보도는 비영리 저널리즘에서 나온다:CPI(Center for Public Integrity)· IRW(Investigative Reporting Workshop)

공공청렴센터(CPI·Center for Public Integrity)
설립:1989년
규모:약 40명(편집국 30명)
출판 방식:웹사이트(publicintegrity.org), 단행본
재정:후원금 운영. 2019년 총예산 600만 달러

1927년 바(Barr) 빌딩이 완공될 당시 건물에는 워싱턴 시내에서 가장 빠른 엘리베이터가 있었다. 강철과 유리로 도배된 두 신축 건물 사이 눈에 띄는 고딕 양식을 유지하고 있는 이 빌딩은 2013년 국가 지정 유적지로 등록됐다. 2012년 〈공공청렴센터(CPI· Center for Public Integrity)〉는 이곳으로 사무실을 옮겼다. 1989년 창립한 CPI는 세 든 건물처럼 오래된 비영리 저널리즘 1세대 언론사다. 현재 미국에서 운영되고 있는 비영리 언론사 중 1977년 문을 연 〈CIR(Reveal:Center for Investigative Reporting)〉 다음으로 역사가 길다.

바 빌딩은 사실 CPI가 두 번째로 이사한 공간이다. 센터가 처음 문을 연 곳은 CBS 뉴스의 간판 프로그램 〈60분〉 PD였던 찰스 루이스(52~55쪽 기사 참조)의 집이었다. CPI를 창립한 찰스 루이스는 1997년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 International Consortium of Investigative Journalists)를 만들었다. ICIJ는 2016년 전 세계 46개국 기자 약 90명이 참여해 조세회피처에 대해 파헤친 ‘파나마 페이퍼’를 터뜨린 곳이다. 현재 90개국, 100개 언론사, 249명 이상 기자들이 이슈에 따라 뭉쳐 협업하고 있다. 2016년 ICIJ는 CPI로부터 독립해서 나왔지만 여전히 함께 탐사보도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바 빌딩이 있는 노스웨스트 17번가에서 백악관까지는 2블록, 도보로 5분 거리다. 데이비드 레빈탈 선임기자는 “우리는 실제 물리적으로도 거대한 권력과 매우 가까이 있다. 권력을 지켜보는 건 우리의 사명이다”라고 말했다. CPI가 관심 있게 들여다보는 주제는 ‘공권력의 배신’이다. 정치인들이 자신을 믿고 지지해준 시민들의 신뢰를 저버리는 지점, 즉 권력과 자본을 쥔 자들이 가난한 사람들의 권리를 해치면서까지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 하는 잘못된 행동을 파고든다. 센터 이름이 ‘공공청렴(Public Integrity)’인 까닭이다. 워싱턴에서 일어나는 일을 주로 다루지만, 이곳이 미국의 수도인 만큼 워싱턴에서 일어나는 일은 워싱턴만의 일이 아니라는 관점에서 접근한다.

취재진이 방문한 10월25일 아침 미국 국무부가 CPI에 약 7000달러(약 816만원)를 지급하기로 합의했다는 뉴스가 떴다. 2011년 중순 CPI는 당시 제재 대상인 러시아 은행이 국무부 고위 관계자에게 로비했다는 사실을 폭로하는 기사를 쓰기 위해 국무부에 여러 차례 관련 자료를 요청했지만 번번이 묵살당했다. CPI는 국무부를 고소했고, 결국 7년 뒤인 2018년 받아낸 자료를 바탕으로 기사를 내보냈다. 국무부는 10월25일 CPI가 그동안 지불한 행정비용 7000달러를 배상하기로 합의했다.

ⓒ시사IN 신선영CPI는 퓰리처상 등 250여 개 상을 받았다.

30년간 단행본 63권 펴내

CPI가 기사 하나를 쓰기 위해 7년을 기다릴 수 있었던 건 마감 압박에서 자유롭기 때문이다. 반드시 고정 지면을 채워야 하는 전통 매체와는 다른 점이다. 레빈탈 선임기자는 마감에 쫓기지 않으면서 하고 싶은 만큼 취재할 수 있는 CPI의 환경을 ‘작은 사치’라고 표현했다. 1~2주 만에 끝나는 취재도 있지만 6개월에서 1~2년까지 길어지는 프로젝트도 많다. “우리는 실패에 관대하다. 사실 ‘실패’가 적당한 단어는 아니다. 모든 건 ‘추적’이다. 추적을 하지 않으면 특종은 나오지 않는다. 15시간이 걸리기도 하고, 15개월이 걸리기도 한다. ‘탐사보도’가 꼭 시간이 오래 걸리는 취재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탐사보도의 본질은 권력의 부패를 드러내는 것이다.”

2~3개월 이상 소요되는 취재는 대개 다른 언론사와 협업으로 이뤄진다. 이 경우 기사 상단에 굵은 활자로 ‘이 기사는 ○○언론사와 공동으로 발행합니다’라는 문구가 들어간다. CPI는 현재 9개 언론사와 고정 파트너십을 맺고 있다. 선배 비영리 언론사 〈CIR〉이나, 실패한 사법제도를 고발하는 데 특화한 비영리 언론 〈마더 존스〉를 비롯해 〈AP〉 〈NPR〉 〈뉴욕 타임스〉 〈워싱턴 포스트〉 등 쟁쟁한 언론사들이다.

일시적 협업도 자주 이뤄진다. 지난 9월 CPI는 플로리다의 〈탬파베이 타임스〉와 협업해 불치병에 걸린 아이들을 후원해주는 단체가 실제로는 정치적 목적을 가진 단체에 자금을 대주고 있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탬파베이 타임스〉는 CPI에게는 없는 ‘지역 기반’과 ‘인쇄 매체’라는 요소를 갖춘 파트너였다.

2018년 10월 온라인에 공개한 기획 기사 ‘블로아웃(Blowout)’은 CPI를 포함해 〈텍사스 트리뷴〉 〈AP〉 〈뉴지(Newsy)〉까지 총 4개 언론사가 협업한 기획 프로젝트였다. 정부 정책이 어떻게 석유 채굴 사업을 부채질했는지, 그래서 환경오염이 얼마나 심각해졌는지를 취재하기 위해 기자 7명이 워싱턴·텍사스·뉴멕시코·오클라호마 등 미국 4개 주와 한국 거제도까지 국내외를 넘나들며 취재했다. 기사는 7부작으로 나뉘어 웹사이트에 실렸다. 기자들은 평균 1만5000자에 달하는 기사를 써내려갔다. 모든 기사에는 독자가 직접 축소 또는 확대하며 찾아볼 수 있는 지도에 위치가 표기된 인포그래픽, 다양한 사진 및 영상, 녹취 음성이 첨부됐다. 레빈탈 선임기자의 집무실 벽에는 포스터 크기로 출력된 ‘블로아웃’ 프로젝트 커버 사진이 걸려 있었다. 이 프로젝트는 2020년 책으로도 출판될 예정이다.

CPI 기사는 책으로도 낼 만큼 방대한 양의 데이터와 자료를 토대로 작성되는 것으로 유명하다. CPI에서 창립 25주년을 맞아 펴낸 2013년 연례 보고서에는 탐사보도 기사 한 편이 나오기까지 걸리는 취재 작업에 관련된 통계가 실려 있다. 탐사보도 기사 한 편이 나오기까지 기자는 평균 출장을 4회 가고, 인터뷰를 20회 한다. 그 과정에서 소요된 통화 시간은 98시간에 달한다. 기자는 평균 41시간 동안 정부 보고서와 같은 자료를 읽고 120시간에 걸쳐 관련 데이터를 분석한다. 그 뒤 83시간 동안 쓴 기사를 40시간 수정하며 21시간에 걸친 팩트체크 과정이 끝나면 6시간 동안 법률 조언을 받는다.

이 과정을 거친 기사 중에서도 특히 뛰어난 기사는 책으로 출판된다. CPI에서 30년간 펴낸 책은 63권에 달한다. 해마다 2권씩 꾸준히 내는 셈이다. 돈이 없는 가난한 사람도 자유롭게 정보를 얻을 수 있어야 한다는 비영리 언론의 취지에 맞게 단행본 역시 홈페이지에 파일로 올라와 있다. 누구든지 무료로 내려받아 읽어볼 수 있다. 다만 요즘에는 출판이 중요한 지분을 차지하지는 않는다. 종이에 인쇄된 책보다 온라인 공간이 데이터나 인포그래픽 같은 요소를 살리기 쉽기 때문이다.

ⓒ시사IN 신선영CPI는 1~2년짜리 취재 프로젝트도 많이 가동한다. 위는 CPI 사무실 풍경.

국가의 제도를 바꾼 104쪽짜리 기사

수백 쪽에 달하는 책 한 권 분량의 기사는 해마다 수많은 상을 휩쓴다. CPI 편집국 한쪽 끝 회의실 벽면은 상장과 상패로 장식돼 있었다. 미처 벽면에 걸리지 못한 수상 내역은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받은 상만 250여 개에 달한다. CPI는 미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퓰리처상을 두 번이나 받았다.

지금은 〈뉴욕 타임스〉에서 활동 중인 크리스 햄비 기자는 2014년 CPI에서 석탄 기업이 광부들의 폐질환을 조직적으로 은폐해온 사실을 보도했다. 그는 ‘숨 막힌 사람들, 묻힌 사람들(Breathless & Burden-ed)’로 퓰리처상 탐사보도 부문을 수상했다. 햄비 기자는 로펌 변호사들과 대학병원 의사들이 석탄 기업과 결탁해 광부들이 탄광에서 일하다 걸린 폐질환을 부정하는 바람에 그들이 마땅히 받아야 했던 법적·의학적 조치를 받지 못했다는 점을 밝혀냈다. 당시 CPI와 협업했던 ABC 뉴스가 기사 내용을 방영함으로써 파장은 더욱 커졌다. 이틀 뒤 존스홉킨스 병원은 석탄 기업에 의학적 조언을 하던 프로그램을 중지했다. 4개월 뒤 미국 노동부는 광부들에게 폐질환을 치료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었고, 6개월 뒤 미국 정부는 광부들을 보호하기 위해 제도를 개선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104쪽짜리 기사가 제도를 바꿨다.

크리스 햄비 기자가 2010년 CPI 인턴으로 활동할 당시 그의 나이는 스물넷이었다. 4년 뒤 CPI 기자로 퓰리처상을 받을 때는 스물여덟 살이었다. 레빈탈 선임기자는 “나이가 어린 인턴일지라도 그들은 이미 어떻게 좋은 기자가 되어야 할지 알고 있다. 우리는 매번 그들을 보면서 놀라고 또 영감을 받는다”라고 말했다. 비영리 언론사로서 CPI도 해마다 대학생을 대상으로 인턴십 제도를 운영한다. 인턴은 여름방학 석 달 동안 주 40시간을 일하며, 시간당 16달러를 받는다.

비영리 언론과 마찬가지로 CPI 역시 후원금에 의존한다. 물론 편집국과 경영실은 철저히 분리된다. 후원자가 후원금을 빌미로 편집권에 개입할 수 없다. 창립 30주년을 맞은 CPI는 현재 ‘30 for 30’ 캠페인을 통해 센터가 30년 동안 이어온 탐사보도를 앞으로 30년 후에도 이어갈 수 있도록 독자 후원을 독려하고 있다.

CPI의 2019년 한 해 예산은 600만 달러(약 70억원)인데, 이 중 약 80%는 재단 후원자이고 4%가 개인 후원자다. 모든 후원자 이름은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다. 후원자 명단을 소개하기에 앞서 쓰여 있는 첫 문장은 이렇다. ‘상을 받을 만큼 우수한 탐사보도는 값어치를 매길 수 없지만(priceless) 공짜는 아닙니다(not free).’ 10월31일 핼러윈을 맞아 CPI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들어간 사진을 각종 SNS 계정에 올렸다. ‘때로 뉴스는 공포스럽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무서운 건, 아예 뉴스를 보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악몽이 일어나지 않도록 우리를 후원해주세요.’

 

 

“우리 목적은 좋은 저널리즘”

ⓒ시사IN 신선영

 

데이비드 레빈탈 CPI 선임기자(사진)는 2000년 뉴햄프셔주 지역 일간지 〈이글 트리뷴〉에서 경력을 시작한 뒤 여러 언론사를 거쳐 정치 전문 일간지 〈폴리티코〉에서 일했다. 2013년 CPI에 합류한 이후로도 꾸준히 〈타임〉 〈애틀랜틱〉 등에 칼럼을 싣고 CNN, 폭스 뉴스, CBS 뉴스 등에 출연하고 있다.

왜 비영리 언론사를 선택했나?

이곳에 오기 전까지 일했던 영리 언론사들은 너무나 다른 환경이었다. 나는 매일 기사를 쓰고 방송에 나갔다. 물론 매 순간 아드레날린이 치솟는 재미있는 경험이었지만 1년은커녕 다음 달, 심지어 내일조차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러다 2012년 대선이 끝난 뒤 ‘이 생활을 지속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때마침 CPI에서 함께 일해보면 어떻겠느냐는 연락이 왔다.

지금은 어떤가?

더 이상 트럼프 대통령이 무슨 트윗을 날리는지 관심 없다(웃음). 우리는 정치판에서 어둡게 감춰진 부분에 조명을 비추려고 노력한다. 시민들에게 왜 정치가 그들을 위해 작동하지 않는지 설명하려고 한다. 저널리스트가 이 역할을 하지 않는다면 누가 하겠나. 이런 일을 하기에는 비영리 언론사가 더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다.

CPI가 마음껏 탐사보도를 할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인가?

사무실 문을 열고 전기세를 내려면 돈이 필요하지만, 그게 우리의 동기는 아니다. 재단과 독자들이 자발적으로 십시일반 내는 후원금이 모여서 기자 월급이 되고, 백악관에서 2블록 떨어진 곳에 위치한 사무실 임차료가 된다. 우리의 동기는 돈이 아니라 좋은 저널리즘(great journalism)이다. 좋은 저널리즘은 우리의 목적이기도 하다.

1989년 센터가 문을 열 당시 비영리 저널리즘은 낯선 개념이었다. 지금은 미국 전역에 비영리 언론사가 240여 곳에 달한다. 비영리 저널리즘이 성공한 이유는 뭘까?

스마트폰이다. 이제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정보가 무엇인지 알고 능동적으로 찾아간다. 기술의 발달이 광고시장 붕괴를 가져왔다. 예전에는 광고를 붙이기 위해서라도 신문을 찍어냈지만, 더 이상 그럴 수 없다. 내가 경력 초기에 일했던 텍사스주 지역 일간지 〈댈러스 모닝뉴스〉에는 기자만 650명이 있었다. 지금은 200명도 안 된다. 20년 만에 한 언론사에서만 400명이 넘는 기자가 해고됐다. 지금 이 순간에도 미국 전역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비영리 언론사는 광고에 의존하지 않는다. 비영리 언론사는 사라져가는 전통 매체의 빈자리를 메우고 있다.

생존 전략을 찾고 있는 기성 언론에게 비영리 저널리즘이 답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비영리 언론사 각각의 모델이 조금씩 다르지만, 독자들은 우리의 기사를 원하고 있고, 우리는 성장하고 있다. 그건 분명하다.

현재 CPI가 직면한 가장 큰 어려움은?

우리가 가진 자원에 비해 우리가 품은 야망이 크다(웃음). 기자 30명보다 40명이, 40명보다 50명이 있으면 좋겠다. 우리에게는 잠재력이 있다. 더 많은 기자를 고용할수록 더 많은, 더 좋은 저널리즘을 이야기할 수 있다.

 

 

기자명 워싱턴·나경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did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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