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개선되었다고 하나 한때 경찰 수배 전단에 ‘노동자풍’이라는 표현이 널리 쓰인 적이 있었다. 양복 차림의 깔끔한 인상은 ‘회사원·사업가풍’이며, 뭔가 깔끔하지 않으면 ‘노동자풍’이라는 설명과 함께. 회사원은 노동자가 아니고 노동자는 왠지 모르게 남루한, 40~50대 남성일 거라는 관념.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신이 속해 있지 않은 집단의 구성원들이 서로 동질적이라고 생각한다. 외집단 동질성 편향이라나. 대부분 노동자가 되지만, 정작 스스로가 노동자에 속한다고 인식하기 어려운 대한민국에서, 노동자라고 하면 빨간 띠를 두른 장년의 남성이 먼저 떠오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양극화가 심화된 2010년대에는 ‘정규직’이 추가되었다. 민주노총은 40대·정규직·남성 중심의 조직이라는 관념. 많은 사람들은 노동조합이 일반 노동자들(특히 비정규직)의 이익을 대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실제는 어떨까. 올해 4월 기준 집계를 보면, 민주노총 전체 조합원 101만명 중 비정규직은 33%이고, 여성은 29%이다. 3명 중 1명이 비정규직, 여성인 셈이다. 최근 3년간 만들어진 노조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반반이었고, 비정규직·청년·여성 비중은 계속 느는 추세다. ‘비정규직 없는 민주노총’이란 ‘노동자 아닌 회사원’처럼 우리 머릿속 어딘가에만 있는 존재는 아닐까.
대한민국 노조 조직률 겨우 10%
물론 조합원으로 있는 것과 그들을 잘 대변하는 것은 다르다. 그렇지만 양극화 해소라는 사회적 염원이 ‘강성 노조’ ‘귀족 노조’ 때려잡기로 이루어질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힘이 세서 문제라는 우리나라의 노조 조직률은 10%에 불과하다. 우리가 선망해 마지않는 북유럽 사회복지국가는 모두 강성 노조의 힘으로 만들 수 있었다는 지적처럼, 우리나라는 ‘강한’ 노조가 모자라서 문제지, 많아서 문제가 아니다.
‘귀족 노조’는 어떨까. 노조에 왜 너희가 제대로 하지 못했느냐고 책임을 묻는 지적은 할 수 있다. 그런데 양극화의 주원인이 마치 노조인 양 말하는 것은 동의하기 어렵다. 노조는 그 부분을 해결하기 위해 미흡하나마 노력을 기울여왔다. 비정규직을 조직하고, 차별 개선을 위해 싸웠다. 기업별 교섭 구조에서는 개별 단위 기업의 임금 극대화 전략을 넘기 어려우니 산별교섭을 법제화하자고 해왔다. 기업별 교섭이면 기업 내 조합원의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주로 활동하게 되지만, 고용 형태와 관계없이 동종 산업 내 전체 노동조건을 논의하는 산별교섭 틀 안에서는 다를 수 있다. 예를 들어 주로 대기업인 원청도 사회적 책임을 함께 지고, 정규직의 양보가 기업의 배만 불리는 게 아니라 비정규직에게 순환되는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
노조는 또한 단체협약 적용률,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을 적극 확대하자고 제안해왔다. 단체협약 적용률이 높을수록 임금 불평등이 낮아진다. 유럽 상당수 국가들이 단체협약 효력 확장 제도를 두고 있는데, 한 예로 프랑스의 경우 노동조합 조직률이 9%에 불과하지만 산별교섭 결정을 적용받는 노동자는 98%에 달한다. 한국은 단체협약 효력 확장 제도가 사업장 내지 지역 단위에 국한되어 있고 조건도 까다롭다. 사용자 단체도 잘 조직되어 있지 않다.
많은 학자들은, 서로 다른 집단들이 ‘편견’을 뛰어넘기 위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접촉’이지만 단순 접촉만으로 편견이 감소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상호의존성, 공동의 목표, 동등한 지위, 평등규범 등 조건이 갖추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조합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우리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지점은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공동의 목표’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를 같이 이야기하는 것에서 출발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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