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 Photo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 시장(사진)은 자신이 바이든의 대안이 될 것이라고 본다.

순자산 570억 달러, 미국의 억만장자 사업가, 정치인.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 시장이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 전격 뛰어든다. 민주당 경선 판도가 크게 흔들릴 조짐이다. 민주당은 현재 정치인 17명이 대선 후보로 경합 중이다. 전국적 지명도를 갖춘 블룸버그 전 시장이 경선에 합류한 것이다. 그는 11월12일 현재 출마를 공개적으로 선언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내년 3월 앨라배마주와 아칸소주 민주당 경선에 후보 등록을 마친 상태다. 대선 출마를 기정사실화한 것이다.

그는 정치 초년생이 아니다. 2002년부터 2008년까지 공화당 당적으로 뉴욕 시장을 연임했다. 2009년에는 무소속으로 3선에 성공했다. 지난해 민주당으로 당적을 바꿨다. 민주당의 하원 장악을 위해 무려 1억 달러 이상의 선거자금을 지원했다.

현재 민주당 경선 판도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시절 부통령을 지낸 바이든이 선두를 유지하는 가운데 샌더스와 워런 의원이 추격전을 벌이면서 3파전으로 굳어진 상태다. 블룸버그 전 시장의 지지율은 11월 중순 현재 4% 정도에 불과하지만, 트럼프 대통령과의 가상 대결에서는 유력 주자들보다 강세를 보인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37%)과 가상 대결에서 43%를 얻어 오차범위를 벗어나 승리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샌더스 의원이나 바이든 전 부통령도 트럼프 대통령과 가상 대결에서는 각각 승리한다. 블룸버그 전 시장이 트럼프 대통령과 가상 대결 시 격차가 가장 크다.

블룸버그 전 시장은 올해 초 불출마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힌 바 있다. 그가 갑자기 결정을 번복한 까닭은 무엇일까? 측근들에 따르면, 그는 ‘바이든 후보로 트럼프 대통령을 꺾을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라고 한다. 스스로 ‘바이든 대안’으로 나선 셈이다. 급진 좌파 후보로 꼽히는 샌더스나 워런 의원과 달리 바이든 전 부통령은 민주당 온건 성향 유권자들의 지지를 폭넓게 받아왔다. 최근 경선에서 바이든 전 부통령의 성적표는 신통치 않다. 지지율은 샌더스, 워런 의원보다 다소 앞서지만 선거운동의 ‘실탄’이라 할 선거자금 모금은 형편없다. 실제 3분기 모금 실적을 보면 바이든 전 부통령은 890만 달러에 그쳤다. 같은 기간에 3370만 달러를 모금한 샌더스 의원이나 2570만 달러를 모금한 워런 의원과 비교할 수준이 못 된다. 블룸버그 전 시장은 바이든 전 부통령이 주춤거리는 사이 워런 의원 지지율이 급등하자 출마 결심을 굳힌 것으로 알려졌다. 블룸버그 전 시장의 정치 참모를 지낸 윌리엄 커닝햄은 “바이든이 지지부진하면 블룸버그가 그 자리를 파고들 수 있다”라고 말했다.

출발이 늦은 블룸버그 전 시장은 파격적인 선거운동 전략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통상 미국에선 대통령 선거가 예정된 해 2월부터 공식 일정이 시작된다. 공화·민주 양당의 예비선거가 2월3일 아이오와를 시작으로 뉴햄프셔(2월11일), 네바다(2월22일), 사우스캐롤라이나(2월29일) 등 4개 주에서 치러진다. 여기서 승기를 잡느냐 못 잡느냐에 따라 캘리포니아, 텍사스 등 대형 주를 포함해 무려 14개 주에서 예비선거가 진행되는 3월3일 ‘슈퍼 화요일’ 판세가 가려진다.

블룸버그 전 시장은 2월의 4개 주를 모두 건너뛰어 곧바로 ‘슈퍼 화요일’에 총력을 집중할 계획이다. 그의 정치 고문인 하워드 월포슨은 〈뉴욕타임스〉에 “블룸버그는 슈퍼 화요일과 이후 치러지는 다른 주 예비경선에서도 승리할 자신이 있다. 향후 광범위한 전국적 단위의 선거운동을 계획 중이다”라고 밝혔다.

블룸버그 전 시장의 참여로 지지층이 겹치는 바이든 전 부통령이 피해를 볼 수 있다. 온건 성향의 민주당 유권자들이 바이든 전 부통령으로는 트럼프 대통령을 이기기 힘들다고 판단하면 그에게로 돌아설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블룸버그 전 시장이 유력 후보들을 제치고 민주당 대선 후보로 지명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선거 전문가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아직까지 높지는 않다. 그의 출마 의사가 보도되자, 다른 후보들은 공격 모드로 돌아섰다. 워런 의원은 “거금으로 선거를 사겠다는 거냐”라며 그를 비판했다. 샌더스 의원도 “이번 대선을 통해 개탄스러운 소득과 부의 불평등을 끝내고자 한다. 블룸버그와 다른 억만장자들에게 경고한다. 미안하지만, 당신들이 돈으로 선거를 사기는 어려울 것이다”라고 말했다. 바이든 전 부통령은 블룸버그에 대한 직접적 공격은 삼간 채 “경선에서 블룸버그를 이길 수 있다. 아무 문제가 없다”라고 말했다.

주요 현안에 대한 블룸버그 전 시장의 정견이 민주당과 맞지 않는 것도 향후 지지율 확산의 한계로 꼽힌다. 그는 워런이나 샌더스 의원이 주창해온 부유세 신설을 사회주의적 발상이라며 반대한다. 그는 또한 고비용 구조의 민간 의료보험제도를 폐기하고 연방정부가 모든 국민의 의료보험을 보장하는 ‘모두를 위한 건강보험(Medicare for All)’ 방안도 비현실적이라며 회의적이다. 샌더스와 워런 의원이 제안한 ‘모두를 위한 건강보험’은 공화당 유권자들을 포함해, 전국적으로 70%의 압도적 지지를 받는 공약이다. 블룸버그 전 시장이 반대 의견을 고수한다면 민주당 핵심 지지자들의 이탈을 감수해야 한다.

ⓒAFP PHOTO지난 10월15일 미국 오하이오주 오터바인 대학에서 열린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4차 TV 토론회.

민주당원 ‘블룸버그 호감도’ 11%에 불과

가상 대결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을 따돌리며 경쟁력이 있지만 정작 블룸버그 전 시장은 민주당 지지자들한테 높은 지지를 받지 못한다. 한 여론조사 전문기관에 따르면 민주당원 62%가 그를 알지만 호감도는 11%에 불과했다. 블룸버그 전 시장이 노리는 바이든 전 부통령의 지지층 가운데 흑인과 백인 노동자들은 부유한 백인 억만장자에게 우호적이지 않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핵심 선거참모였던 데이비드 액설로드는 〈비즈니스 인사이더〉에 “블룸버그는 바이든처럼 흑인 유권자들 사이에 폭넓은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어서 전망은 어둡다”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블룸버그 전 시장이 천문학적 선거비용을 감당할 만한 재력을 가졌다는 점은 상당한 플러스 요인이다. 미국에서는 유능한 후보라도 선거자금이 모자라면 중도 탈락이 불가피하다. 값비싼 텔레비전이나 라디오 광고는 물론 후보의 유세 여행, 선거 참모들에 대한 경비, 유권자들에 대한 각종 우편물 발송, 유리한 여론 조성을 위한 정치 컨설팅 등에 선거자금이 많이 들어간다. 〈포브스〉에 따르면 내년 대선 정치광고 규모는 2016년보다 20억 달러 많은 60억 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블룸버그 전 시장은 과거 세 차례의 뉴욕 시장 선거에서 모두 2억6000만 달러를 개인 자금으로 충당했다. 이번에는 50개 주를 상대로 한 대선이라 벌써부터 그가 투입할 선거비용에 관심이 쏠린다. 블룸버그의 한 측근은 인터넷 유력 매체 〈악시오스〉에 “만일 민주당 후보로 지명되면 블룸버그는 트럼프를 떨어뜨리기 위해 얼마든지 돈을 쓸 것이다. 미국민은 지금까지의 대선 유세와는 전혀 다른 장면을 보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가뜩이나 ‘돈 잔치’라는 비판이 제기되는 미국 대선. 그의 참여는 ‘금권 정치’ 논란을 불러올 수도 있다.

기자명 워싱턴∙정재민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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