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도농 격차’가 뭔지 아세요?
  • 이준수 (삼척시 도계초등학교 교사)
  • 호수 635
  • 승인 2019.11.20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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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성 그림

강원도 벽지 초등학교로 전근 왔을 때 가장 놀란 건 아이들이 공부를 못해서가 아니라 제대로 놀 공간이 없다는 점이었다. 시골에도 학원은 있다. 학습지 선생님이 가정을 방문하고, 원한다면 그룹 과외도 받을 수 있다. 대신 문화시설이 귀했다. PC방도 있고 LTE 전파도 빵빵 잘 터져서 게임을 하는 데 무리가 없었지만, 수준 있는 공연이나 전시를 즐기기 어려웠다.

아이들은 어린이날, 생일 따위로 용돈 주머니가 차면 삼삼오오 짝을 지어 동해시로 놀러 나갔다. 도계읍이 소속된 삼척시의 시내도 아니고, 교통은 불편하지만 거리는 더 가까운 태백 시내도 아니었다. 초등학생이 시외버스를 타고 삼척 터미널에 가서, 동해행 버스로 갈아타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던 건 영화관 때문이었다. 동해·삼척·태백 지역에 하나뿐인 멀티플렉스에 가기 위해서.

아이들이 버스를 갈아타고 동해시까지 가는 이유

유튜브와 IPTV가 보편화된 세상에 영화관이 무슨 대수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에게 영화관 나들이는 문화생활이고, 영화를 예술의 한 양식으로 체험하는 생생한 방식이었다. 오케스트라와 발레, 오페라까지는 바라지도 않았다. 광고에 나오는 영화를 가벼운 마음으로 즐기는 일상. 소박한 바람이다.

흔히들 교육의 도농 격차를 이야기할 때 가구의 평균 소득이나 사교육비 지출 규모를 예로 든다. 그건 외부인의 관점에서 수치로 바라볼 때의 이야기이고, 교실에서 살을 맞대며 느끼는 도시와 시골 학생의 차이는 문화적 취향이나 삶의 태도 차이였다. 초등학생에게 학업성적은 오히려 부차적 문제였다. 시골 아이들이라고 해서 산을 벗 삼거나 개울에서 물고기를 잡지 않았다. 즐길 만한 문화 콘텐츠가 없는 곳에서 아이들은 쉽게 게임이나 도박 같은 말초적인 놀잇감에 빠져들었다.

같은 시골 안에서도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라 문화생활의 양식이 크게 달랐다. 주말을 맞아 서울에 가서 데이비드 호크니 전시회를 보고 오는 아이와 스마트폰 게임으로 하루를 다 보내는 아이가 한 반에 있다. 방학 때마다 광화문 대형서점을 방문해 부모와 함께 책을 고르는 아이와 유아 때 산 전집이 책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아이가 짝꿍으로 앉아 있다. 가정 여건에 따라 아이가 누리는 문화생활의 질은 천차만별이다.

문화생활의 차이는 단지 여가시간을 보내는 방식의 차이로 끝나지 않는다. 아이의 덕성과 삶의 태도에도 영향을 미친다. 문학 작품과 공연 예술을 즐기는 아이는 삶의 다양한 면모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능력을 기르는 데 유리하다. 뮤지컬 〈영웅〉을 보고 온 우리 반 아이는 자연인으로서의 안중근과 군인으로서의 안중근을 비교하여 설명할 줄 안다. 체육활동도 마찬가지다. 온 가족이 수영장 정기 이용권을 끊어 다니는 집 아이는 음식량을 조절하고, 더 먼 거리를 헤엄치기 위해 꾸준히 운동한다. 좋은 문화·체육 생활에는 절제, 신중함, 배려, 금융 지식 같은 교양과 생활 덕목이 따라붙었다. 돈이 돈을 부르는 복리 이자처럼.

경제적 불평등이 건강 불평등, 학력 불평등, 나아가 교양 불평등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날마다 목격하고 있다. 시골일수록, 가난한 동네일수록 구구절절한 사연이 넘치고 아이들은 나쁜 길로 쉽게 빠진다. 타고난 인성이 부족해서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균형 잡힌 삶의 태도와 문화적 소양을 습득할 기회와 경험이 부족했을 뿐이다. 아이는 부모를 선택할 수 없다. 헌신적인 부모 밑에서 양질의 교육과 여가를 누리는 행운을 어려운 가정의 아이에게도 나누어줄 수는 없을까. 사회가 가정의 구멍을 메워주면 안 될까.

반가운 소식이 있다면 여기 폐광촌에 상영관 2개 70석 규모로 영화관이 들어설 예정이다. 부모가 차로 태워주지 않아도 동네에서 영화를 볼 수 있는 삶. 교육 기회의 평등은 소소한 일상의 영역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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