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정치팀 첫 발령이 난 초짜 기자고, 출근 전에 단 한 권만 읽을 수 있다면, 이걸 보겠다. 결정의 엣센스. 첩보 스릴러처럼 읽히는 쿠바 핵 위기 막전막후. 라쇼몽이 떠오르는 삼중 구조. 감탄만 나오는 이론적 모델링. 권력의 작동원리를 보는 눈이 달라진다.” 2013년엔가, 〈결정의 엣센스〉를 읽고 얼떨떨한 충격이 가시지 않은 채, 트위터에다 이런 글을 끼적거린 적이 있다. 주위에다 틈나는 대로 추천도 했다. 그러다가 곧 절판이 됐고(안타깝게도 이런 중요한 책이 절판되는 일이 한국에서 드물지는 않다) 나도 한동안 잊고 살았다.
2018년 봄, 낯선 번호로 전화가 왔다. 어느 신생 출판사 대표였다. 〈결정의 엣센스〉 번역을 다듬고 제목도 바꿔 재출간하는데, 5년 전 내 트윗을 추천사로 쓰고 싶다고 했다. 별 생각 없이 승낙했고, 책은 〈결정의 본질〉로 제목이 바뀌어 나왔다. 실물을 보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도 모르게 “잘못했습니다” 소리가 튀어 나왔다. 아니 내가 뭐라고 이런 걸작을 두고 추천이네 어쩌네 건방진 소리를 했을까.
〈결정의 본질〉은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 미국 케네디 정부의 의사결정을 연구한 국제정치학의 고전이다. 읽고 나면 권력의 작동 원리를 보는 눈이 달라져 책을 보기 전의 관점으로 돌아가기가 불가능하다. 기자 생활 대부분을 ‘정치 관찰자’로 보냈다. 내 정치 관찰자 생활에 끼친 영향으로 치면 이 책은 반드시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간다.
무언가 놀라운 일이 벌어졌는가? 음모와 기획의 냄새가 나는가? 선거가 코앞이니까? 권력이란 원래 그런 거니까? 이 책을 읽으시라. 의외로, 권력은 그런 게 아니다. 정부, 정당, 회사, 가족까지, 사람들이 모이고 의사결정이 일어나는 곳에는 어디든 권력의 논리가 있다. 권력의 작동 원리를 이해한다는 것은 국회나 청와대를 이해한다는 것보다 훨씬 크고 넓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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