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명적인’ 콘셉트의 아이돌은 많다지만, 염세적인 아이돌도 있을까. 아이돌이라고 단정하기는 좀 뭐할지 모르나, 방용국이 있다. 조금 불길하게 들릴 정도로 낮게 울리는 저음의 랩을 하는 그는 가슴 철렁할 만큼 어두운 테마를 내리 털어낸다. 보이그룹 B.A.P의 멤버로 활동하다 지난해 탈퇴하고 올해부터는 솔로 아티스트로 지내고 있다. 아이돌이 되기 몇 년 전부터 언더그라운드 힙합 크루에서 활동했으니, 래퍼에서 아이돌 래퍼로, 다시 래퍼로 돌아온 셈이다.
올해 발매된 그의 셀프 타이틀 앨범은 이런 가사로 시작한다. “내가 하고 싶은 모든 것들을 다 토해낸다면 과연 내가 진짜 만족할까요?” B.A.P의 음악은 안 그래도 무거운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사회 비판’은 1990년대부터 아이돌 산업의 큰 화두 중 하나다. 피상적이라도 이를 하는 것이 더 훌륭한 음악으로 간주되기도 하고, 그 피상성이 애정 어린 웃음거리가 되기도 한다. 아주 구체적으로 칼날을 겨누는 것은 아이돌 산업이 받아들일 수 없을지 모르지만 B.A.P에서 그의 작곡과 랩은 최선을 다해 몸부림쳤다. 특히 ‘스카이다이브(Skydive)’ ‘웨이크 미 업(Wake Me Up)’ 같은 곡들은 불평등과 부조리로 얼룩진 세상에서 병들어가고 자기 파괴로 치닫는 인간을 시각적·음악적으로 치열하게 담아냈다.
다시 현재로 돌아오면 앞선 그의 질문은 담담히 자신을 벼리어온 화자의 다짐처럼 들리기도 한다. 속 시원히 말할 수 없는 것도 있고 말해봐야 달라지지도 않는 세계를 보며 허무를 느끼면서도, 자신의 이야기를 다만 진솔하게 이어가려는 사람의 말처럼.
여전히, 죽어가는 꽃이나 서리 낀 냉장고 등 그의 언어는 스산하다. 환멸을 토해내는 듯이 소리치기도 한다. ‘AM 4:44’는 연예인으로서의 삶의 고통과 허무를 첫 세 줄만으로 소름 끼치도록 적어낸다. 삶의 아름다운 순간을 말하는 ‘오렌지 드라이브(Orange Drive)’ 같은 곡도 재즈 힙합 사운드 속에 페이소스가 가득하고 그의 목소리는 무겁다. 삭막한 세계와 답 없는 우울 속에서 그저 홀로 노래한다는 ‘여행’에 이르면, 기묘한 감동을 느끼게 된다. 고독하게 방황해본 이들을 위한 송가 같은 ‘커밍 홈(Coming Home)’처럼 그의 노래가 이따금 한껏 따스하고 뭉클한 이유를 알 것 같아서다. 그가 세계와 삶의 어둠을 진심으로 대면하는 방법 또는 과정이 곧 음악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가 자신을 이야기할 수 있고, 또한 실낱같은 공감을 더듬어가는 것 또한 음악이 있어서일 것만 같다.
비관과 고통 가운데서도 지독하게 진실한
그런 방용국은 어쩌면 여럿 중 하나일 수 있다. 래퍼에서 아이돌이 된 수많은 이들, 아이돌 이후 자신만의 커리어를 밟는 또 많은 이들, 연예인의 미덕처럼 마냥 즐거움을 전하고자 감정을 바치기만 하기에는 침잠하는 자아를 가진 몇몇 이들. 그리고 이를 진지하게 세상에 꺼내놓는 무척 드문 몇 사람.
그저 예쁜 것만 보여주고 나머지는 덮으려 하거나, 무례와 위악을 당연시하거나, 양극화된 세상이다. 비관과 고통을 이야기하면서 지독하게 진실하고자 하는 방용국의 특별한 존재와 그 멋진 여정을 꼭 모두와 함께 지켜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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