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P PHOTO10월28일 트럼프 대통령의 탄핵을 주장하는 시민들이 시카고에 있는 트럼프 인터내셔널 호텔 앞에서 시위를 하는 모습.

이른바 ‘우크라이나 스캔들’로 정치적 사면초가에 빠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미국 의회의 탄핵안 발의가 초읽기에 들어갔다. 연방 하원은 트럼프 대통령이 민주당의 유력 대선주자 조지프 바이든 전 부통령을 음해할 목적으로 우크라이나 정부에 외압을 행사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지난 9월24일부터 비공개로 탄핵 조사를 진행해왔다. 마침내 11월 중순에 공개 청문회를 추진할 예정이다. 청문회를 마치는 순간 하원 법사위원회는 트럼프 대통령의 직권남용을 근거로 탄핵안을 작성해 통과시킨 뒤 본회의에 부치려 할 것이다.

10월 들어 시행된 여론조사 결과, 미국 국민의 절반 이상이 탄핵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의 위기감이 한층 커졌다. 이런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은 10월27일 이슬람국가(IS)의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 제거 소식으로 여론의 반전을 시도했다.  

현재 민주당이 장악한 하원은 정보위원회 등 관련 상임위원회 3개가 탄핵 발의에 필요한 비공개 조사와 자료 확보, 국무부·국방부·백악관 관리들에 대한 소환 조사 등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외압 의혹을 상당 부분 확인한 상태다. 최근까지 의회가 발부한 소환장만 14개에 달한다. 그 대상에는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 믹 멀베이니 백악관 비서실장 대행, 로버트 줄리아니 대통령 개인 변호사 등이 있다.

이번 사건은 행정부 내부 폭로자의 증언에서 비롯됐다. 폭로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이 7월25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통화하는 가운데 바이든 전 부통령 및 그 아들의 비위 혐의를 조사해야 4억 달러 상당의 군사원조를 제공할 것처럼 말했다고 한다. 백악관 파견 중앙정보국 관리로 밝혀진 이 폭로자의 증언 직후 파문이 확산되자 백악관은 당시 통화 녹취록을 공개했으나 역효과만 일으켰다. 녹취록이 증언 내용과 부합했다.

하원은 우크라이나 스캔들과 관련된 고위 관리들을 상대로 최근 비공개 소환 증언을 거의 마쳤다. 그중에는 커트 볼커 전 우크라이나 특사, 고든 선들랜드 유럽연합 주재 미국 대사, 빌 테일러 우크라이나 주재 미국 대사 대행 등 외압 의혹을 자세히 알 만한 인사들이 포함돼 있다. 지금까지 나온 증거자료와 관리들의 증언에 비추어볼 때 ‘트럼프 대통령이 군사원조를 대가로 외압을 행사한 것이 사실’이라는 결론에 도달한 듯하다. 테일러 대사 대행은 ‘우크라이나 정부가 바이든 전 부통령의 아들이 이사로 근무한 에너지 회사 부리스마 홀딩스의 비위 사실을 조사해서 공개 발표하지 않으면’ 미국의 군사지원을 보류하라는 이야기를 선들랜드 대사로부터 들었다고 증언했다. 민주당은 테일러의 충격적 폭로가 트럼프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통화가 대가성이었음을 보여준 ‘스모킹 건’이라며 반겼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과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간의 통화 내용을 직접 들었다는 알렉산더 빈드먼 중령도 비공개 증언에서 테일러의 진술 내용을 확인했다. 그는 “당시 트럼프 대통령이 외국 정부에게 미국 시민을 조사하라고 요구한 것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했다”라면서 이 같은 우려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법률팀에 보고했다고 밝혔다.

전·현직 측근의 증언 막아

이처럼 핵심 관리들의 불리한 증언이 계속되자 공화당과 백악관도 대응에 나섰다. 공화당 하원의원 20여 명은 10월23일 로라 쿠퍼 국방부 부차관보의 비공개 증언이 진행되던 하원 정보위원회 회의실에 난입했다. 이들은 증언을 몇 시간 동안 연기시켰다. 백악관은 전·현직 대통령 측근들의 증언을 막기 위해 진력하고 있다. 단적인 사례로, 당초 하원의 소환에 응했던 찰스 쿠퍼먼 전 국가안보회의 부보좌관은 증언을 거부했다. 〈뉴욕타임스〉는 “트럼프 대통령이 ‘대통령 측근은 증언을 완전히 면제받는다’는 황당한 논리를 적용해, 그의 증언 거부를 명령했다”라고 전했다. 쿠퍼먼은 올해 1월부터 9월까지 백악관 안보 부보좌관으로 재직하며 트럼프 대통령과 우크라이나 문제에 관해 조언해온 인물이다. 외압 내용을 소상히 파악하고 있으리라 보인다. 이런 쿠퍼먼이 증언을 거부했으니, 진실을 밝히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전망이다.

탄핵 정국이 두 달째 계속되면서 여론도 심상치 않다. 당초 민주당 소속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이 9월24일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조사를 선언했을 때만 해도 미국민 대다수는 조사는 찬성하면서도 탄핵 자체에는 부정적 태도를 보였다. 10월 들어 각종 여론조사 결과 전국적으로 탄핵 찬성률이 상승 추세다. CNN 방송이 10월22일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민의 50%가 트럼프 대통령 탄핵에 찬성했다. 여론조사기관 갤럽이 10월16일 발표한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52%가 트럼프 대통령을 탄핵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이 같은 결과는 트럼프 대통령이 가장 즐겨 본다는 보수 방송 〈폭스 뉴스〉의 여론조사에서도 확인됐다. 〈폭스 뉴스〉가 10월9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51%가 탄핵에 찬성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여론조사 결과를 콕 집어 “부정확하다”며 반발했지만, CNN과 갤럽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추세가 확인되는 셈이다.

이런 민심에도 불구하고 의회 차원의 탄핵은 쉽지 않다. 민주당이 장악한 하원이 탄핵안을 발의해도 지금처럼 상원을 공화당이 장악한 상황에선 탄핵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게 지배적 관측이다. 현재 상원은 공화당 53석, 민주당 47석으로 공화당 우세다. 실제 탄핵 가결에 필요한 67석을 확보하려면 민주당은 최소 20명 이상의 공화당 의원 지지가 필요하다. 하지만 탄핵을 공개적으로 찬성한 공화당 상원의원은 아직 단 한 명도 없다.

의회의 탄핵 칼날을 피하더라도 트럼프 대통령은 내년 11월 대선에서 유권자들의 심판을 받는다. 현재 절반을 넘어선 탄핵 여론이 그대로 대선 결과로 이어질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미국은 한국처럼 유권자들이 직접 대통령을 뽑는 게 아니라 주별 선거인단을 통해 선출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선거 전문가들은 미국 내 대표적인 경합 주인 펜실베이니아, 미시간, 플로리다, 노스캐롤라이나, 위스콘신, 애리조나 등 6개 주의 민심에 주목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고작 1% 차이로 신승한 플로리다의 경우 탄핵 반대가 48%로 나타나 찬성 46%보다 다소 높다. 민주당은 내년 대선 승리를 위해서도 29명의 선거인단이 걸린 플로리다 승리가 필수다. 플로리다를 포함한 이들 6개 주에 대한 CNN의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유권자들의 43%가 탄핵을 찬성한 반면, 반대는 53%로 월등히 높았다. 이들 6개 주의 민심이 탄핵 찬성으로 돌아서지 않는 한 다른 주들에서 탄핵 여론이 높아도 트럼프 대통령 재선 가능성은 여전히 크다. 2016년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이들 주에서 다수표를 획득하며 승리를 이끌었다. CNN은 “내년 대선 국면에서 볼 때 탄핵 민심이 이들 6개 경합 주에 어떤 식으로 나타날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라면서도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이들 지역에서 탄핵 찬성률이 아직은 높지 않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워싱턴∙정재민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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