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 너무 보고 싶다. 엄마가. 파주 병원에서.” 집 나간 지 17년 만에 보내온 엄마의 글치고는 너무 짧았다. 엽서를 손에 쥔 둘째 경환(태인호)이 망설이는 사이 앞장서는 건 큰딸 미정(장혜진)이다. 미정의 딸 규림(김진영)까지 태우고 막내 재윤(이가섭)이 사는 부산에 들른다. 미정은 생글생글 웃는다. 가족여행이라도 가는 것 같아서 기분이 마냥 좋았기 때문이다.

“우리 재윤이까지 다 같이 어디 가는 거 처음이지?” 휴게소에서 미정이 물었다. “재윤이 부대 면회 갔을 때 빼고는 처음일걸?” 경환이 대답했다. “아, 맞다, 맞다. 규림이도 데리고 갔었잖아.” 하하하. 호호호. 웃고 떠드는 사람들 머리 위로 재윤이의 한마디가 먹구름처럼 몰려온다. “스키장.” 번쩍, 번개처럼 내리꽂힌 그다음 이야기. “스키장 갔었잖아…. 수완이….”

‘엄마를 찾아 나선 세 남매의 코믹 로드무비’로 출발한 영화는, 막내가 입 밖에 낸 그 이름 앞에 잠시 멈춰 선다. 이 가족의 어떤 비밀 하나를 툭, 꺼내놓는다. 〈미스 리틀 선샤인〉(2006)의 속도로 달려가던 영화가 조심스럽게 〈걸어도 걸어도〉(2008)의 방향으로 핸들을 꺾는 순간이다. 몇 해 전 겨울, 스키장에선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엄마는 왜, 손바닥만 한 엽서로 소식을 전하는 처지가 되었을까? 무엇이 가족을 갈라놓고, 또 무엇이 다시 모이게 만든 걸까?

출발지는 같지만 목적지는 다른 가족

지난해, 데뷔작 〈환절기〉와 두 번째 영화 〈당신의 부탁〉을 연이어 선보인 이동은 감독은 세 번째 작품 〈니나 내나〉에서도 앞선 두 영화처럼 가족 이야기를 한다. 그에게 가족이란 “같은 출발지를 삼는 관계지만 동시에 각자 다른 목적지를 향하는 구성원들”이며 “닮은 걸음걸이를 지녔을지라도 가야 할 길은 다른” 사람들이다(〈니나 내나〉 보도자료 중).

“니는 와 맨날 니 생각만 하는데?” 타박하는 누나에게 이렇게 대꾸하는 동생. “내가 내 생각 해야지, 누가 내 생각 해주는데? 당연한 거 아이가?” 그리고 또 이렇게 내보이는 속마음. “누난 가족밖에 없다 했제? 난 가족만 없으면 좋겠다 싶더라.” 말은 뾰족하고 마음은 움푹 파인 사람들. 가까워질수록 멀어지는 목적지와 멀어질수록 더 가까워지는 지난날의 상처들. 그런데 이상하다. 무거울 것만 같던 영화에 뜻밖에도 경쾌한 웃음이 넘친다. 따뜻한 감동이 있고 은근한 위로도 있다. 처음엔 내 생각만 하던 인물들이 처음으로 남 생각을 하게 되는 이야기의 힘이다. 내 생각만 하며 살던 관객도 잠시나마 남 생각을 하게 만드는 이 영화의 마력이다.

“암튼 간에 사는 기 다른 것 같아 보이도, 그래 다 비슷비슷하다고, 니나 내나.” 영화 속 대사를 나는 이렇게 바꾸어 중얼대고 있다. “다른 것 같아 보여도, 그래 다 비슷비슷하다고, 영화 속 그들이나 영화 밖 우리들이나.” 

기자명 김세윤 (영화 칼럼니스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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