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아이야. 너희들은 혁명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2015년 거침없이 악화하는 불평등을 보며, 그리고 여야 거대 정당이 오히려 이를 부추기는 걸 한탄하며 나는 한 칼럼에서 아이들을 선동했다. 2년 전, 한 청년 활동가가 찾아와서 “혁명을 어떻게 하면 되느냐”라고 진지하게 물었다. 그 글에서 소개한 “친구들과 연대해서 더 나은 공동체를 만들어야겠다”라는 이길보라 감독의 말밖에 더 할 얘기가 없었다.

아이들이 연대해야 할 친구를 드디어 찾았다. 한눈에도 당차게 보이는 툰베리는 혁명가였고, 그의 연설은 슬픔의 절규이자 질타였으며, 그리고 경고였다. 그의 연설에 박수를 치고 환호한 세계의 정상들은 정말로 이 “혁명 선언”을 알아들었을까?

연설은 “내 메시지는 우리가 당신들(정상들)을 지켜보겠다는 것이다”로 시작했고, “당신들이 감히 어떻게(how dare you)”라는 말을 몇 번이고 반복했다. “당신들은 공허한 말로 내 꿈과 유년 시절을 빼앗았으며… 돈과 영원한 경제성장이라는 동화밖에 얘기할 줄 모른다.” 그 누가 세계의 정상들에게 이리 말할 수 있을까?

ⓒAFP

툰베리는 세계 각국이 외면하고 있는 유엔의 목표도 비판했다. 10년 내에 온실가스 배출을 반으로 줄여서 50%의 확률로 기온 상승을 1.5℃ 내로 억제하자는 주장은 “당신들에게 받아들일 만할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그 결과와 더불어 살아야 한다.” 이제 그 확률을 67%로 높이려면 2018년 1월1일 기준으로 세계는 420기가톤의 이산화탄소를 남기고 있을 뿐이며 (1년8개월 남짓 지난) 오늘 350기가톤 미만으로 줄었다. 그런데 “당신들이 감히 어떻게 단지 ‘통상의 방식으로(business as usual)’, 그리고 몇몇 기술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척하는가?”

2018년 8월, 스웨덴 의회 앞에 앉아서 홀로 피켓 시위를 하던 툰베리의 외침은 “전 세계 청소년들이여 연대하라”로 번졌다. 뉴욕, 베를린, 캔버라, 그리고 서울에서 아이들이 “정부는 온실가스 배출 감소를 위한 모든 노력을 다하라”고 외치고 있다.

기후 위기는 지극히 정치적인 문제이다. 자본주의 300년이 화석연료 위에서 발전했기 때문에, 가장 전형적인 ‘시장 실패’이며 동시에 가장 규모가 큰 ‘공유지의 비극’이기 때문에 오직 시민들의 정치적 연대만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정작 처참한 결과를 떠안을 이해당사자인 미래 세대에게는 투표권이 없다. 생태 문제에는 민주주의가 작동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어른들은 쏟아지는 정보 중에서 자신에게 유리한 것을 택할 가능성이 높으며(확신 편향), 그런 정보를 제공할 화석연료 대기업은 얼마든지 있다.

아직 파리협정 이행계획도 못 낸 한국

툰베리와 아이들은 핵심을 꿰뚫었다. 곧 세계의 아이들은 정부에 대한 호소를 멈추고 ‘악’과의 싸움을 시작할 것이다. 툰베리가 연설한 날,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도 (일설에 따르면 주최 측의 거부에도 불구하고 겨우) 정상회의에서 연설을 했다. 한국은 계속 석탄 발전을 늘리는 나라, 1인당 이산화탄소 배출량 1, 2위를 다투는 나라이면서 아직 파리협정 이행계획도 내지 못했다. 겨우 내놓은 203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조차 3℃ 내 억제 수준에 머문다고 비판받고 있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파리협정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면서 “푸른 하늘의 날” 같은 공허한 말만 했다.

아이들에겐 투표권이 없다. 어른들의 선택권은 어떨까? 기후 위기 집회에 참석한 아이들을 처벌하라고 교육부 장관을 다그치는 당은 물론 선택의 대상이 아니다. 이들보다 조금 낫지만 불평등이건 기후 위기건 구체적인 노력조차 하지 않는 당 역시 툰베리에겐 그저 ‘악’일 뿐이다. 10년이나 남았으니 그때부터 해결책을 모색하면 되는 건 절대로 아니다. 지금 당장 시한을 정하고(예컨대 2030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 50% 이상 감축) 모든 조치를 취해야 10년 뒤, 아이들이 그래도 뭔가를 해볼 기회라도 남는다. 현실을 직시하고 어떤 당이 툰베리와 아이들의 외침에 반응을 보이는지 살펴야 한다. 99%의 부모에게 내 아이만 살 길은 없다(1%는 ‘토탈리콜’의 특수 돔 안에서 살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기자명 정태인 (독립연구자·경제학)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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