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ven Global 트위터 갈무리 프로게이머 블리츠청(오른쪽)은 하스스톤 대회 인터뷰에서 홍콩 시위를 지지하는 구호를 외쳤다. 왼쪽 해설진은 블리츠청의 행동에 책상 밑으로 몸을 감췄다.

게임과 농구. 국제정치와는 접점이 거의 없어 보이는 두 분야에서 연이어 사건이 터졌다. 프로게이머와 NBA(미국 프로농구) 구단 단장이 홍콩 시위를 지지한다고 밝혀서다. 중국 정부가 강경하게 반발하자 게임사와 NBA는 사과문을 발표했다.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서는 ‘표현의 자유 대신 차이나머니를 택했다’고 비판이 나온다. 한 달 가까이 상황은 수습되지 않고 있다.

10월7일 블리자드(Blizzard)의 하스스톤 대회에서 사건이 벌어졌다. 경기 후 승자 인터뷰에서 홍콩 출신 프로게이머 블리츠청은 홍콩 시위 구호인 “광복홍콩 시대혁명”을 외쳤다. 충동적으로 나온 발언이 아니었다. 인터뷰 시작부터 블리츠청은 방독면을 쓴 상태로 등장했다. 중계진 두 사람은 “‘그 8글자’를 말하면서 인터뷰를 끝내자”라며 블리츠청이 구호를 외치도록 멍석을 깔았다.

블리자드는 이례적으로 중징계를 가했다. 블리츠청의 상금을 몰수하고, 1년간 대회에 출전하지 못하도록 결정했다. 중계진도 즉각 해고했다. 해당 인터뷰가 나온 경기뿐만 아니라, 이날 대회 영상 전체를 온라인에서 비공개 처리했다. 이 게임 대회 약관에는 정치적 발언을 금한다는 조항이 없다. 사건 다음 날 블리자드 중국 지사는 공식 웨이보 계정에 “지난 주말 벌어진 사건에 대해 강력히 분개하고 규탄한다. 어떤 대회에서든 개인 정치이념을 전파하는 것을 단호히 반대한다. (…) 우리나라의 존엄을 보호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징계 조치를 두고 역으로 반발이 터져 나왔다. 게임 이용자들은 웹페이지에 블리츠청을 옹호하는 글을 작성하고, 블리자드 계정을 집단적으로 탈퇴하는 등 항의했다. 블리자드는 10월12일 상금 몰수 처분을 취소하고 선수 자격정지 기간을 6개월로 줄였다.

같은 시기 NBA에서 일어난 일은 파장이 더 컸다. 대릴 모리 휴스턴 로케츠 단장의 트윗이 시작이었다. 그는 10월5일 자신의 트위터에 “자유를 위한 싸움, 홍콩 지지(Fight for freedom, stand with HongKong)”라는 캠페인 문구를 올렸다. 휴스턴 로케츠는 과거 중국 간판 농구선수 야오밍이 뛴 구단으로, 중국 내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NBA 팀이다.

중국의 대응은 즉각적이었고 가차 없었다. 국영 매체인 CCTV는 10월7일 논평에서 “모리 단장이 홍콩 극단주의 세력을 지지하는 메시지를 게재한 데 대해 중국은 집단적으로 반발했다. 그와 로케츠 구단은 중국 국민에게 진지하게 사과하고 잘못을 즉각 시정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온라인 스포츠 채널을 가진 텐센트와 CCTV 스포츠 채널, 로케츠의 중국 후원사인 상하이푸둥개발은행 등이 NBA와 제휴 관계를 끊었다. 중국에서 로케츠 경기는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으로 중계할 수 없게 되었다. CCTV는 10월23일 열린 NBA 개막전 역시 중계하지 않았다.

ⓒAP Photo대릴 모리 휴스턴 로케츠 단장.

경제적 의존 관계에도 양국 긴장 고조

모리 단장을 비판하는 목소리는 중국뿐만 아니라 NBA 내부에서도 나왔다. 로케츠의 스타 선수 제임스 하든과 러셀 웨스트브룩이 중국 팬들에게 사과했고, 구단주 틸먼 퍼티타는 모리 단장에게 트윗을 삭제하라고 요구했다. 리그 대표선수인 르브론 제임스의 인터뷰 발언이 공개되자 홍콩 시위대는 그의 유니폼을 불태웠다. “우리는 모두 표현의 자유가 있다. 그러나 때로는 타인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자신만 생각할 때에 부정적 파장이 있다. 대릴 모리는 그 상황에 대해 배우지 못한 채(wasn’t educated) 발언한 것 같다.” 사건 초기 NBA는 모리의 트윗에 대해 유감을 표명했으나, 미국 내 여론이 악화되자 애덤 실버 NBA 총재는 “개인이 정치적 견해를 밝힐 자유를 침해하지 않겠다”라고 말했다.

미국 정치권은 대체로 NBA와 블리자드에 비판적이다. 릭 스콧 상원의원(공화당)은 10월15일 자신의 트위터에 “르브론 제임스야말로 현 상황을 배우지 못한 사람이다. 홍콩 인권을 제치고 중국공산당에 굽실대는 코러스에 합류해 이윤을 얻는 그를 보게 되어 슬프다”라고 썼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홍콩 시위에 대한 질문에 코멘트를 거절하는 한 감독을 두고 “무서워서 대답을 못하는 게 마치 어린애 같았다. 그런 사람이 미국에 대해서는 매우 나쁘게 발언을 한다”라고 조롱했다. 론 와이든 상원의원(민주당)은 “블리자드는 중국공산당을 기쁘게 하기 위해 스스로 모욕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라고 말했다. 마르코 루비오 상원의원(공화당)은 “중국에 살지도 않는 사람조차 자기검열하지 않으면 징계받고 해고되는 일이 벌어진다”라고 말했다.

이 일은 기업과 정치권 간 설전을 넘어 미·중 양국의 갈등으로 번졌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10월21일 CNBC 인터뷰에서 “직원·고객이 기본적인 자유를 행사하는 미국 기업을 중국이 공격하는 것은 전적으로 부적절하다. 말이 안 된다”라고 말했다. 반면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10월8일 사설에서 모리 단장을 비롯한 서방의 홍콩 시위 지지 세력이 “입으로는 자유 민주를 외치지만 실상은 자본의 노예인 기회주의자”라고 비판했다. 10월21일 보도에는 격한 표현도 등장했다. “인권과 민주를 내세워 무자비하게 중국 내정을 간섭하는 미국 일부 정치인들은 (…) 검은손을 거두고 머리까지 깨져 피가 나는 상황까지 가지 않길 당부한다.”

오늘날 중국은 GDP의 절반 이상을 대외무역에서 얻는다. 대외무역 총량은 미국과 같은 수준이다. 중국은 전 세계에서 대외 직접투자를 가장 많이 받는 국가이자 미국 국채를 가장 많이 보유한 나라이다. 미국을 비록한 주요 자유민주주의 국가들과의 무역은 중국 무역에서 절반가량을 차지한다.

그런데 중국과 미국 경제의 ‘상호보완적 의존’ 관계에도 불구하고 양국 사이 긴장은 도리어 고조되고 있다. 이번 NBA나 블리자드 사태처럼 때로 무역 자체가 정치적 긴장을 유발하는 동기가 되기도 한다.

에리히 베데를 비롯한 일군의 학자들은 자유무역, 해외투자, 금융 개방 등 자본주의의 요소가 강화될수록 국가 간 평화가 공고해진다고 여겼다. 이마누엘 칸트의 〈영구평화론〉이 뿌리인 이른바 ‘자본주의 평화론’이다. 자본주의 평화론자들은 시장이 국가 간 갈등을 봉합한다고 본다. 자본주의 국가는 전쟁을 치르는 것보다 비용이 덜 드는 시장을 통한 거래를 선호하며, 시장은 각국이 평화를 택하도록 유인한다.

ⓒAP Photo10월15일 홍콩 시위대가 NBA 스타 르브론 제임스의 이름이 새겨진 운동복을 불태우고 있다.

민주주의 아니면서 잘살고 힘센 나라

최종건 연세대 교수(현 청와대 국가안보실 평화기획비서관)는 2015년 논문에 이렇게 썼다. “자본주의 평화는 결국 경제가 정치에 선행한다는 논리 구조를 가진다. 높은 수준의 경제적 자유를 향유하는 국가끼리는 서로 전쟁을 하지 않는다는 명제가 국제관계 이론 영역에 대두되고 있다(〈자유와 자본 그리고 평화 구축에 대한 이론적 검토〉 중).” 최 교수는 자본주의 평화론을 토대로 미·중 관계를 낙관했다. “민주화 없는 중국의 경제성장 그리고 중국과 미국의 관계는 위태로운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 미국과 중국의 자본주의가 유사해지고 상호보완적 의존도가 높아질수록 이 두 국가의 관계적 안정도는 높다고 할 수 있다.” 나아가 최 교수는 “북한 민주화보다 개방을 통한 자본주의 이식이 한반도 평화에 더 적절하다는 주장도 가능하다”라고 썼다.

그런데 ‘자본주의 국가’ 중국에서 왜 자본주의적 평화론이 작동하지 않을까? 아자 가트 텔아비브 대학 석좌교수는 책 〈전쟁과 평화〉(2019)에서 중국 문제를 분석했다. 이스라엘의 군사 전문가인 그는 우선 일반적으로 봐도 자유무역이 항상 평화를 보증하지는 않는다고 썼다. 시장 경쟁의 논리가 최선의 선택인지는 각국 행위자들이 판단하기 나름이다. “국가들이 언제나 국가 또는 정부의 다른 목표와 우선 사항보다 경제적 이익 계산을 선호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가트 교수는 경제 논리에 앞서는 ‘다른 목표’의 예시로 영토 보전을 들었다. 홍콩 시위에 대한 지지 선언은 이 부분을 자극한다. “(중국과 러시아) 양국에는 자유주의적 규범이 더 득세할 경우 민족자결 원칙에 따라 국토의 중요한 부분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강한 의구심이 존재한다. 이런 의구심은 (…) 티베트, 신장, 타이완에도 적용되고 어쩌면 중국 내 홍콩에까지 적용될 것이다.”

나아가 가트 교수는 중국이 기존 자유민주주의적 근대화 모델을 벗어나 ‘비민주주의적이되 선진 경제와 강력한 군사력을 갖춘 새로운 제2 세계’를 만들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그 원천은 여러 비서구 국가의 민족주의다. 가트 교수에 따르면, 비서구 사회에는 ‘서구로부터 훈계를 받는 데 대한 깊고도 넓은 반감’이 있다. 라틴아메리카, 중앙아시아, 아프리카 등 여러 나라에 투자·개발을 확대하면서, “중국은 조건을 붙이지도 않고, 국내 체제를 개혁하라고 요구하지도 않으며, 인도주의적 기준을 충족하라고 다그치지도 않는다. 내정 비간섭 정책에 더해 중국은 특수주의, 국제 무대의 이데올로기적 다원주의, 국가주권, 국가의 강한 개입, 토착 문화의 발전이라는 메시지를 제시한다.”

아자 가트 교수는 중국이 세계 체제에 통합될지, 세계 체제를 바꿀지는 확률 게임이라고 썼다. 그는 사라예보 사건을 언급하며, “상업 이익을 압도하는 민족주의적 격정”이 남중국해, 타이완, 또 다른 곳에서 시작되는 것도 가능한 일이라고 주장한다. 홍콩 시위 국면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 중국 정부와 미국 기업들의 역학관계는 낯선 미래를 상상하게 한다.

기자명 이상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prode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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