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쯤에 찍은 사진 한 장을 꺼내 본다. 촬영 날짜를 확인하니 2016년 11월19일. 촛불집회가 열렸던 서울 광화문 근처 아스팔트 바닥에 노랗게 물든 은행잎들이 흩어져 있고, ‘박근혜 퇴진’이라는 글귀가 찍힌 노란색 전단 한 장이 떨어져 있다. 낙엽 같다.
사진은 디지털카메라의 파노라마 모드로 찍었다. 초점을 맞춘 다음 셔터를 누르고 카메라를 회전시키면 자동으로 파노라마 사진이 만들어지는 기능이다. 완벽한 파노라마 사진을 만드는 데는 상당한 숙련이 필요하다.
파노라마라는 말은 요즘에는 대개 가로로 긴 사진이나 영상 비율, 또는 구경거리를 뜻한다. 원래는 영국의 화가였던 로버트 바커가 1787년에 발명해 특허를 받은 일종의 시각적 구경거리였다. 빚 때문에 감옥에 갇혀 있던 바커는 거기에서 원형으로 만든 실내에 정밀하게 그린 풍경화를 360° 화각으로 그려 붙여 중심이나 밖에서 구경하게 만든 장치를 구상했다. 로버트 바커는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풍경을 시작으로 유명한 장소들을 대상으로 삼았다. 당시로서는 일종의 벤처 산업인 셈인데 사업이 번성했다. 파노라마의 유행 이후 디오라마(축소 모형)와 사진의 발명으로 이어졌다. 물론 파노라마 자체가 사진과 직접 관련이 있다기보다 그런 사업이 잘될 만큼 시각적 구경거리에 대한 욕망이 커졌다는 의미다.
2016년 찍은 파노라마 사진을 보고 있으면 촛불집회가 떠오른다. 그때 촛불을 든 사람들은 무엇을 바랐을까?
그 가을에 사람들은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권력을 사유화한 대통령을 탄핵하면 다시 촛불을 들지 않아도 되리라고. 권력 사유화를 감시하고 비판하면 권력 투명성은 높아질 것이라고.
추운 겨울이 오기 전에 해야 할 일
불행히도 2019년 ‘조국 대란’으로 사람들은 다시 촛불을 들고 광장에 섰다. 조국 대란은 검찰개혁의 당위성을 드러냈다. 검찰은 법과 원칙에 따른 수사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검찰총장이 마음만 먹으면 검찰권을 사유화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그동안 검찰 수사를 두고 이렇게까지 정치적인 논쟁과 분란이 일어난 적이 없었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독점한 검찰이 그 권한을 남용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또한 검찰을 민주적으로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며 문재인 정부에 대한 질책도 나온다. 촛불이 가져다준 권력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거나, 사용하는 법을 모른다는 쓴소리다.
권력은 언제 어떤 바람에 휘날려 바닥에 떨어질지 모르는 낙엽과 같다. 아직 나무에 붙어 있을 때 뭔가 해내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추운 겨울이 오기 전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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