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던 때는 언제쯤이었을까? 20세기 초반 미국 뉴욕에서 활동한 루이스 하인이 그런 사람 중 한 명이다. 그는 카메라를 무기로 사회를 바꿀 수 있다고 믿었다. 아동노동 현장과 이민자들의 삶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는 아동노동을 고발한 사진을 공개하고, 노동운동가들과 아동노동 금지법 제정 운동을 벌였다.
이 같은 사진가의 헌신과 달리 대중 스스로 사진을 이용해 변화를 이끌어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카메라의 대중화는 물론이고 대중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사진 유통 플랫폼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드디어 21세기 들어 저렴한 디지털 카메라가 보급되고 휴대전화에 카메라 기능이 탑재되었다. 사진을 대중에게 전달할 SNS도 보편화됐다. 직업인으로서 사진가가 아닌 개인이 찍은 사진도 메시지를 전달했다. 어떤 경우는 캠페인 성격도 띠었다. 200년 사진사에서 가장 큰 변화의 물결이다.
2016년 최진리라는 20대 여성이 “내 몸, 내 옷차림의 결정권은 내게 있고 브래지어는 건강에도 안 좋고 액세서리일 뿐”이라며 노브래지어 셀카 사진을 자신의 SNS 계정에 올렸다. 이후 이를 하나의 운동으로 받아들이는 사회적 흐름이 등장했다. 최씨가 용기 내어 올린 수많은 셀카 사진과 결코 무관하지 않은 변화다. 여성주의 연구자인 권김현영은 이에 대해 “대중의 구미에 맞추는 대신 아무도 원치 않는 방식으로 자기 몸을 보여주면서, 노브라 운동을 해온 어떤 페미니스트보다 강렬한 메시지를 던지는 데 성공했다”라고 평한다.
사실 ‘노브라 운동’은 여성에게 강요된 관습과 도덕성 또는 예절을 깨고, 자유롭고 간소한 삶을 추구하는 1960년대 히피 운동과 함께 시작됐다. 이는 자연스러운 시대 흐름이었다. 하지만 1980년대 사회가 보수화되면서 이런 흐름이 시들해졌다. 최근에는 ‘프리 더 니플’이라는 운동으로 부활했다. 여성들의 상반신 노출은 미국에서도 불법이고 SNS상에서도 검열의 대상이다. 한국 역시 이런 행위가 공공장소에서 이뤄질 경우 경범죄로 처벌받는다.
브래지어 착용해본 적 없는 남성들의 공격
상체를 노출하지 않았지만 브래지어를 하지 않은 편한 차림으로 찍은 최진리의 셀카 사진은 메시지를 던지고 캠페인이 되었다. 그리고 매번 기사화되었다. 어떤 기사는 악의적이었다. ‘태어나 단 한 번도 브래지어를 착용해본 적이 없는 남성들’이 주로 악플을 달았다. 지난 1년간 기간을 설정해 네이버에서 검색해보니, 그에 대한 기사는 1만3396건이었고 이 가운데 1370건이 노브라 관련 기사였다. SNS상으로 노브라가 언급된 것이 몇 건인지는 파악할 수도 없다.
10월14일 최씨가 극단적 선택을 했다. 영국 〈가디언〉은 “보수적인 한국에서 상대적으로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인물이었다. 때때로 그는 브래지어를 입지 않았고 이는 대중의 비난과 옹호의 대상이 되었다. 그는 텔레비전 프로그램 〈악플의 밤〉에서 ‘브라를 하지 않는 것은 표현의 자유’라고 말하기도 했다”라고 보도했다.
자신을 피사체로 사진을 찍고 그 사진으로 세상과 싸웠던, ‘설리’라 불렸던 최진리씨의 명복을 빈다. 감히 그를 ‘용감한 사회운동가였다’고 칭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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