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쉬움이 크다. 기대를 모았던 10월5일 스톡홀름 북·미 실무접촉이 성과 없이 끝났다. 하지만 곱씹어볼 대목은 남아 있다.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스톡홀름 실무접촉에 대한 미국과 북한의 극명한 시각 차이다. 김명길 북한 측 대표는 자리가 파하자마자 미리 준비라도 한 듯 ‘미국이 새로운 계산법 없이 빈손으로 회의에 임했다’고 비난하며 ‘역겨운 대화’를 더 이상 진행할 용의가 없다고 못 박았다. 미국 국무부의 반응은 사뭇 달랐다. 실무접촉에서 나눈 대화가 건설적이었고 새롭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들도 제시되었다는 보도문을 내놓았다.

이 미묘한 시각 차이는 스톡홀름 판이 왜 깨졌는지 유추할 수 있는 몇 가지 실마리를 던진다. 첫째는 북측의 의전적 보복이다. 아마도 평양은 애초부터 이번 실무접촉을 깨기로 작정하고 나온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그간 외교 행태를 돌이켜보면, 지난 2월 하노이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당했던 ‘외교적 수모’를 되돌려준다는 동기가 강하게 작동했을 것이다.

둘째, 비핵화의 범주에 대한 견해차다. 10월14일자 일본 〈요미우리 신문〉에 따르면, 미국 측은 북측에 현재 보유 중인 모든 핵무기와 핵물질을 미국으로 인도하고, 핵시설과 생물·화학무기, 탄도미사일 등 관련 시설의 완전 해체를 약속해달라고 제안했다. 덧붙여 하노이에서 거론된 바 있는 영변 핵시설 완전 폐기에 더해, 기타 지역에 은닉된 모든 우라늄 농축 활동을 중단하는 이른바 ‘영변 플러스알파’의 이행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행동 대 행동’ 원칙에 따른 점진적 동시 교환을 강조하는 평양이 미국의 이런 제안을 수용할 리 만무해 보인다.

상응조치에서도 생각 차이가 있었던 듯하다. 〈요미우리 신문〉 보도에 따르면, 미국은 북한이 위 두 가지 조건을 충족할 경우 석탄·섬유 수출금지 유보 등 유엔 제재 일부를 완화할 수 있다고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더해 북한에 대한 인도적 경제지원을 인정하고, ‘체제 안전보장’의 일환으로 6·25전쟁 종전선언에도 응하겠다는 뜻을 밝혔다는 것이다. 이 역시 북한으로서는 ‘가격이 맞는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연합뉴스

실무접촉 결렬 이후 북한 외무성이 발표한 성명은, 먼저 핵실험과 대륙간 탄도미사일 발사 중지 등 자신들이 이미 취한 비핵화 조치에 대해 미국의 성의 있는 상응조치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는 “우리의 안전과 발전을 위협하는 모든 장애물이 깨끗이 제거될 때만 가능”하며, 나아가 “미국의 위협을 그대로 두고 우리가 먼저 핵 억제력을 포기해야 생존권과 발전권이 보장된다는 주장은 말 앞에 수레를 놓아야 한다는 소리와 마찬가지”라는 게 평양의 반박이다.

북한이 해야 할 일, 한국과 미국이 해야 할 일

모두가 염려하듯, 이런 식으로 교착이 이어질 경우 상황은 매우 어려워질 수 있다. 북측이 선을 넘을 경우 트럼프 대통령도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택할 공산이 있다. 2017년 ‘화염과 분노’의 재연만은 막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다면, 북·미 모두 계산법을 바꿔야 한다. 각자가 ‘적게 주고 많이 받겠다’는 셈법을 고집하면 출구가 없다. ‘선폐기-후보상’이나 ‘선보상-후폐기’나 모두 아전인수의 비현실적 대안일 뿐이다.

다시 절충이 중요한 것은 그 때문이다. 하노이 회담 직후 한국 정부가 제시했던 ‘포괄적 합의와 단계적 이행’을 돌이켜보자. 먼저, 미국이 원하는 ‘완전한 최종적 비핵화’와 북측이 원하는 ‘생존권과 발전 보장’에 대한 포괄적 합의가 필요하다. 다음으로, 이 목표를 향해 가는 명확한 로드맵과 시간표를 채택하고, 동시교환 원칙에 의거해 점진적으로 이행해나갈 필요가 있다. 북한은 모든 핵 활동과 미사일 실험의 지속적 유보, 풍계리 핵실험장에 국제조사단 초청, 그리고 최근 복원된 동창리 미사일 시설의 폐기 등을 선제적으로 진행해야 한다. 한국과 미국은 그에 상응해 연합훈련과 첨단무기 도입 중단을 확약하고, 인도적 지원 재개는 물론 남북 경협까지 대북제재의 예외로 인정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지금은 말의 잔치를 끝내고 실질적 행동을 모색할 시점이다.

기자명 문정인 (연세대 명예특임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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