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명윤 제공인도 시골 마을의 길가에서는 대마(위)를 쉽게 볼 수 있다.

술이란 기본적으로 잉여 농산물이 존재해야 만들 수 있다. 식량 사정이 열악하면 술은 발달할 수 없다. 인도는 덥고 가난한 데다, 오랜 기간 이슬람의 지배를 받은 탓에 술에 대한 금기가 강하다. 지금도 인도에서는 한국처럼 편의점에 들어가 술을 살 수 있는 형편이 아니다. 술은 ‘잉글리시 와인 숍’이라는 전문점에서 살 수 있는데, 주에 따라 다르지만 인구 몇천 명에 한 곳꼴로 허가가 난다.

심지어 마하트마 간디와 현 인도 총리 모디의 고향인 구자라트주는 음주 허가증을 얻어야 술을 마실 수 있다. 외국인은 여권을 들고 정부 여행안내소에 가면 임시 음주 허가증을 발급해준다. 음주 허가증은 한 달간 유효한데, 위스키 2병이나 와인 6병, 또는 알코올 도수 2° 이상의 맥주 18병을 사 마실 수 있다.

하루치 최저임금으로 맥주 3병도 못 사

술값도 비싸다. 인도 노동자의 경우 법으로 정해진 하루 최저임금이 350루피(약 5950원)인데 도시 노동자들이나 해당되지, 시골 농업 노동자들의 하루 임금을 조사해보면 200루피(약 3400원)도 허다하다. 맥주 값은 한 병에 125루피 정도이다. 술집에서 사 마시는 것도 아니고 그저 소매점에서 술을 사는데도 말이다. 인도에서 밀주를 먹고 눈이 멀거나 사망했다는 기사가 종종 등장하는 데는 바로 이런 배경이 있다.

밀주와 관련된 흥미로운 사실 하나가 더 있는데, 대마초에 강경한 입장을 보이는 지역일수록 밀주로 인한 사망자가 늘어난다는 점이다. 인도는 전통적으로 술보다는 대마와 아편이 흔한 나라다. 곡식이나 과일을 발효시켜 이를 다시 증류해야 하는 술에 비해 대마초는 길가 어디에나 있다. 돈이 안 든다. 인도에서도 대마초 흡연이 불법이긴 하지만 케랄라주처럼 법치가 강력한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단속은 선거철처럼 특별한 경우에만 행해진다.

어느 해인가 히마찰프라데시주를 오토바이로 여행한 적이 있다. 이 일대는 저지대 히말라야에 속하는 산골. 마을 간 거리가 멀고, 주유소 간격은 더 멀다. 주유소를 못 만나 간 떨어질 뻔한 경험을 많이 한 곳이다. 급하면 인근 군부대에서 웃돈을 주고 기름을 사거나, 마을에서 조금씩 사 모으기도 한다. 그날도 깜빡이는 주유 램프를 보며 조마조마하게 오토바이를 몰고 있었다. 가도 가도 끝없는 산길. 마을도 못 찾고, 기름도 떨어지면 산에 고립된다. 이 일대는 야생 곰이나 표범이 출몰하는 지역이다. 걱정이 하늘까지 닿을 무렵, 길가에 대마초 군락이 보이면 그제야 안도할 수 있다. 인도의 산골에서 대마초가 군락을 이뤘다는 것은 이 근처 어딘가 논이나 밭이 있다는 의미다. 논 밭 주위에는 마을이 있기 마련이다. 조금만 더 버티라고 오토바이에 주문을 걸 무렵 저 멀리 불빛이 보이고 작은 마을이 나타났다.

인도 농업은 지주들이 소작농을 거느리는 게 아니라, 임금을 주고 노동력을 고용한다. 노동강도가 세기 때문에 어떤 종류건 ‘피로회복제’가 필요하다. 밭이나 논 주변에 자라는 대마초는 말하자면 술의 대용품이다. 이 가난한 지역에서 술은 비싸기도 하거니와 아예 구할 수도 없다. 이런 지역까지 대마초에 준법의 칼을 들이밀면 돈 없는 농업 노동자들은 결국 스스로 술을 증류하거나 메탄올 따위로 만든 밀주를 마시다 큰 곤욕을 치르게 된다.

인도의 술과 대마초를 생각하면 한국이 떠오른다. 한국에서도 ‘의료용’ 대마초가 합법화의 길을 열었지만 아직 본격적인 대마초 합법화 논의로는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가 너무나 자유분방한 술 문화 때문은 아닐까.

기자명 환타 (여행작가·<환타지 없는 여행> 저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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