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출판문화협회 제공김동식 평론가(왼쪽 첫 번째)와 김금희 작가(왼쪽 두 번째)가 참석한 ‘한국 문학의 페미니즘과 그 미래’ 세미나.

“한국은 이제 선진국인데도 왜 여전히 아이들을 해외로 입양 보내나요?” 파트릭 룬드베리가 던진 마지막 질문에 말문이 막혔다. 9월27일 스웨덴 예테보리 도서전. ‘한국 사회에서 인간의 조건’을 주제로 세미나가 열렸고, 기자는 이상헌 국제노동기구(ILO) 고용정책국장과 라스 바르고 전 주한 스웨덴 대사와 함께 연사로 섰다. 파트릭 씨는 이 세미나의 진행자였다.

파트릭 씨는 스웨덴의 기자이자 작가다. 1983년 부산에서 태어났고 생후 9개월 차에 스웨덴으로 입양됐다. 한국어는 거의 못한다. 중간이름으로 ‘종대’를 쓴다. 태어났을 때 한국어 이름이 김종대였다. 대학 시절 교환학생으로 한국에 왔고, 그때 원가족을 만났다. 감격적인 상봉이라기보다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듣고 낯선 음식과 술을 끝없이 권유받는, 마음 복잡한 경험이었다. 이중의 정체성을 갖고 살아온 이야기를 책으로 썼다. 〈겉은 노란〉이라는 제목으로 한국에 번역돼 있다.

9월26일부터 30일까지 스웨덴 예테보리에 있었다. 예테보리 도서전은 유럽에서 손꼽히는 책의 축제다. 올해는 한국이 주빈국이다. 한강, 김언수, 김금희, 현기영 등 한국을 대표하는 소설가들이 세미나와 북토크 연사로 나섰다. 비문학 부문에서는 이상헌 ILO 고용정책국장, 구갑우 북한대학원대학 교수, 김현경 인류학자 등이 참가했다. 기자는 비문학 저자 중 한 명으로 참가했다.

도서전 행사는 크게 세미나와 북토크로 나뉜다. 북토크는 1층 전시실에서 주로 진행한다. 편안하고 느슨한 분위기로, 도서전에 온 스웨덴 시민들이 오며 가며 듣는다. 예테보리 도서전의 정수는 2층의 여러 세미나실에서 쉴 새 없이 돌아가는 300여 개 세미나다. 세미나 하나만 골라 들으려 해도 7만원쯤 들고, 모든 세미나를 자유롭게 듣는 티켓은 50만원 가까이 내야 한다. 그래도 세미나실마다 긴 줄이 늘어서고 빈자리를 찾기 어렵다. 한강 작가는 스웨덴에서도 명성이 높아서 그의 세미나는 375석을 꽉 채웠고, 입장을 못하고 돌아가는 관객도 많았다.

입양은 한국을 보여주는 강렬한 키워드

이상헌 박사와 기자가 참가한 세미나는 100석쯤 되는 작은 방이었다. 시작하기 한참 전부터 줄을 서는 걸 보고 놀랐다. 누군지도 모를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겠다고 적잖은 돈을 내고 줄을 서서 자리를 채우는 도서전이라니, 이런 건 들어본 적도 없었다. 대한출판문화협회 주일우 상무이사는, 예테보리 도서전은 세계 출판계에서도 독특한 별종이라고 설명했다. “런던이나 프랑크푸르트 같은 유명한 도서전은 기본적으로 판권 거래 시장입니다. 그래서 출판인들끼리의 거래가 핵심입니다. 예테보리는 독특해요. 일반 독자가 중심이 되고, 그들이 적잖은 돈을 내고 옵니다. 런던이나 프랑크푸르트가 비투비(B2B, 기업 대 기업) 시장이라면, 예테보리는 비투씨(B2C, 기업 대 소비자) 시장입니다.”

ⓒ대한출판문화협회 제공한국·스웨덴 수교 60주년을 기념해 한국이 주빈국으로 참가한 ‘2019 스웨덴 예테보리 국제도서전’ 개막식 모습.

세미나에 들어가자, 파트릭 씨의 난감한 질문이 날아들었다. “한국의 특수한 정서라는 ‘한’이란 무엇인가요?” “한국의 경제개발은 ‘한강의 기적’이라 불립니다. 유교 문화는 한강의 기적을 만드는 동력이었나요?” “한류는 어떻게 글로벌 문화에서 독특한 위상을 갖게 되었나요?” 한국에 대해 우리가 궁금한 질문과, 지구 반대편 스웨덴이 궁금한 내용은 상당히 달랐다. 이들은 한국이 세계에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지 묻고 또 물었다. 한국의 특수성을 소개하는 이야기로는 만족하지 않았다. 그 특수성이, 글로벌 사회에 어떤 보편적 교훈이나 울림을 주느냐고 물었다.

그리고 물론, 입양 이야기. 기자는 이 질문을 상상도 하지 못했다. 얼기설기 아는 정보를 꿰어 맞춰 얼렁뚱땅 답을 하면서도, 머리를 한 대 맞은 느낌이 가시지 않았다. 세미나를 준비하며 ‘한국 사회에서 인간의 조건’이라는 주제로 입양을 떠올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국제사회의 눈으로 보면 입양은 한국을 보여주는 독특하고 강렬한 키워드였다. 입양 당사자에게는 말할 것도 없고. 라스 바르고 전 대사의 답변이 기자보다 훨씬 나았다. 그는 한국 대사 시절에도 입양 문제를 살펴보았다고 말했다.

파트릭 씨는 이 자리에 자신과 같은 입양인이 몇 명 더 있다고 소개했다. 동아시아인의 외양을 한 스웨덴 관중이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이 순간 이후로 머리를 떠나지 않는 질문이 있었다. 왜 나는 한국에 살면서 단 한 번도 이 질문을 떠올린 적이 없었을까. 한국에서 태어나 외국인으로 자란 입양인의 눈으로 한국을 바라보기. 타인의 관점으로 바꾸어 바라보기. 그것은 강렬하면서도 부끄러운 경험이었다.

세미나에 들어오기 전, 주빈국 조직위원회 자문위원인 김동식 문학평론가와 나눈 흥미로운 대화가 떠올랐다. “2005년에 한국이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주빈국이었습니다. 그때 들고 간 한국 문학들이 광주항쟁을 다룬 작품이 많았어요. 행사는 그럭저럭 잘 끝냈는데, 나중에 주최 측 인사들이 물어봅니다. 광주에서는 몇 명이 죽었냐고요. 그래서 확인된 사망자만 300명이 넘는다고 했더니, 그쪽에서 그러더라고요. ‘그 정도 사망자 없이 민주화를 이룬 나라가 있습니까?’”

김동식 평론가는 이 말에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아, 이게 바깥의 눈으로 보면 이렇게 보이는구나. 한국 문학이 우리 안의 특수성을 강조하는 데서 그치지 말고, 우리 이야기를 세계인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보편적인 언어로 하는 게 중요하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죠. 15년쯤 지나서 예테보리의 프로그램을 보면, 한국 작가들이 이제는 우리의 특수한 이야기를 세계인의 보편적 눈높이로 말하는 힘이 생겼다고 봐요. 예테보리 측이 한국에 섭외를 요청한 명단도 결국 세계의 독자들에게 말을 걸 줄 아는 작가들이었습니다.” 도서전 주최 측이 한국에 콕 찍어 요청한 작가는 한강과 김언수였다.

도서전은 말과 글을 매개로 타인과 연결되는 공간이다. 외국인 청중을 상대로 한국의 경제와 사회와 정치를 설명한다는 것은 그들의 관점을 상상하는 일이었다. 그것은 한국을 한발 떨어져서 보는 작업이자, 나와 우리를 상대화하는 작업이었다. 한국을 소개하러 간 예테보리에서, 세계의 눈으로 한국을 바라보는 경험을 얻어왔다.

기자명 천관율 기자 다른기사 보기 yu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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