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은정 검사가 싸우는 이유
  • 장일호 기자
  • 호수 631
  • 승인 2019.10.22 11:3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임은정 검사는 잠자고 있던 검찰 내 ‘이의제기권’을 깨운 인물이다. 검사도 처벌받는다는 선례를 만들기 위해 제 식구 감싸기 사건을 공론화했다. 검찰개혁 국면에서 그의 행보가 주목된다.
ⓒ연합뉴스임은정 울산지검 부장검사가 10월4일 국회 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 출석해 질의에 답하고 있다.

법정 내 공판검사 출입문을 잠갔다. 문 밖에는 쪽지 한 장을 붙였다. ‘징계 청원 글 게시판에 올려두었다. 나는 무죄 구형할 것이다.’ 2012년 12월이었다. 북한에 동조한 혐의로 1961년 15년형을 선고받은 윤길중 전 진보당 간사 재심 사건을 두고 위에서는 백지 구형을 명령했다. 검사에게 의견을 진술하지 말라는 의미였다. 그에 앞선 3개월 전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감옥에 갇혔던 박형규 목사 과거사 재심 사건 당시에는 무죄 구형 결재를 내주었던 터였다. 바뀐 건 정권뿐이었다. 그해 겨울, 박근혜 정부가 들어섰다.

당시 서울중앙지검에 근무하며 두 사건을 담당했던 임은정 검사(현 울산지검 부장검사)는 잠자고 있던 검찰청법 제7조 2항 이의제기권을 깨웠다. 이의제기권은 상급자의 부당한 지시로부터 검사의 소신을 지켜주기 위해 2004년 1월 참여정부가 검찰개혁 일환으로 도입했다. 법무부 검찰국과 대검이 절차 규정을 만들지 않는 식으로 사문화시킨 탓에 있으나 마나 한 법이었다(절차 규정은 2017년 12월에 만들어졌다).

자연스럽게 임 검사의 이의제기권은 묵살됐고 윤길중 전 간사 재심 사건은 검사 교체 순서를 밟는 듯했다. 임 검사가 법정 내 문을 걸어 잠그기 전까지는 그랬다. 검찰은 명령불복종 등을 이유로 임 검사에게 정직 4개월의 중징계를 내렸다.

2001년 임관 이후 인천·대구·부산·광주 지검에 이어 서울중앙지검과 법무부 파견 등을 거친 임 검사의 커리어가 꼬이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다. 2013년 5월 시작한 징계처분 취소 소송이 대법원까지 거치며 5년 넘도록 지난하게 이어지는 와중에 2015년 검사 적격심사 기간이 돌아왔다. 검사 적격심사는 2004년 도입되었고 검사들은 임명 뒤 7년마다 이 심사를 받는다(2018년부터 검사 적격심사 주기가 5년으로 바뀌었다). 그중 심층적격심사 대상으로 분류되면 특정사무감사를 받게 된다. 임 검사는 대상자 6명 중에 포함됐다. ‘직무수행 능력’ 이외 요소가 작용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사실상 나가라는 압박이었다. 그뿐 아니었다. 보복 배당과 승진 누락, 근속기간 원칙을 무시한 발령이 이어졌다. 버텼다. 2017년 10월 징계취소 판결이 확정됐다.

그에게도 눈을 감고 입을 닫았던 시절이 있었다. 검사를 오래 하고 싶었고, 그러려면 조직 논리에 따를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바람 부는 대로 흔들리는 ‘바람개비’라고 스스로를 자조했다. 부끄러움을 이불 대신 덮고 자는 날이 늘었다. 검사를 오래 하기 위한 다른 방법이 있지 않을까 뒤척였다.

임 검사는 2012년 재심 사건과 그에 따른 징계무효 소송을 통과하며 그 길을 만났다. “항명 파동을 일으키고 징계를 받아 곳곳을 전전하며 검찰의 가장 초라한 현실을 눈으로 보고 느낀 생존자”(10월5일 행정안전위원회 경찰청 국정감사)로서 발언하기 시작했다. 일기장의 다짐을 잊지 않으려니 온통 울퉁불퉁 거친 곳만 골라 딛고 서야 했다. “그물에 걸리면 생채기가 생긴다. 이렇게 부딪쳐가다 보면 결국 그물이 찢길 터. 그리 믿고 씩씩하게 걷자. 그리고… 내 뒷사람들이 아프지 않게 이 그물을 찢어버리고 말 테다(2012년 9월 일기, 〈경향신문〉 6월9일 칼럼 인용).”

“검찰 사라져도 할 말 없을 것”

검찰 내부 게시판 ‘이프로스’에 끊임없이 검찰의 반성과 자성을 촉구하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개혁도 반성도 ‘셀프’로 하는 검찰 조직은 철옹성 같았다(18쪽 기사 참조). 임 검사는 글을 쓸 때마다 부장검사실로, 차장검사실로, 검사장실로 불려 다녔다. 그나마 그건 동료들의 ‘조롱성 댓글’보다 참을 만했다. 각종 헛소문이 장마철 폭우처럼 쏟아졌다. 정치에 뜻이 있어서 저런다는 꼬리표가 내내 따라다녔다. 실제 영입 제안을 받기도 했다. 그래도 검찰 내에서 버틴 보람이 없지는 않았다. 임 검사처럼 검찰 내부에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다른 목소리’가 힘을 내기 시작했다. 2018년 춘천지검에서 강원랜드 채용비리 사건을 수사한 안미현 검사(현 의정부지검)가 수사 외압 의혹을 폭로했다. 같은 해 1월 서지현 검사가 ‘미투’를 시작했을 때도 임 검사는 자신의 경험을 추가 폭로하며 ‘곁’이 되었다. 문제 앞에서 적당히 넘어가지 않는 다른 동료들이 생기면서 임 검사도 힘을 낼 수 있었다.

검사도 잘못하면 처벌받는다는 선례를 만들고 싶었다. 임 검사가 ‘글’에서 멈추지 않은 까닭이다. 읍참마속의 심정으로 동료들의 잘못을 조사해달라고 여기저기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노골적인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 사례를 찾아냈다. 대검 감찰 제보 시스템을 통해 감찰과 처벌을 요구했지만 묵살당했다. 서울중앙지검에 고발장을 내기도 했다. 하지만 기소독점권을 가진 검찰은 스스로에게 칼을 겨누지 않는다. 결국 어떤 사건은 경찰로 가져갈 수밖에 없었다. 지난 9월20일 고발인 조사차 서울 중랑구 서울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에 출석한 임 검사는 “내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경찰에 와야 하니 슬프다”라고 말했다.

임 검사가 공론화하고 있는 ‘제 식구 감싸기’ 사건은 크게 두 건이다. 검찰이 사표 수리로 덮으려 했던 사건 중 외부에 알려지며 뒤늦게 수사 중인 사건들이다. 먼저 2015년 후배 검사를 강제 추행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0개월을 선고받고 항소심을 진행 중인 진○○ 전 검사 사건이다. 임 검사에 따르면 진 전 검사는 아버지가 검사장을 역임한 ‘귀족 검사’였다. 임 검사는 진 전 검사 성추행 사건 당시 감찰에 문제가 있었다고 판단해, 김진태 전 검찰총장과 김수남 당시 대검 차장 등 검찰 간부들을 서울중앙지검에 직권남용과 직무유기 혐의로 고발했다.

경찰에 고발한 사건은 ‘부산지검 고소장 위조’ 사건이다. 2016년 부산지검 윤○○ 검사(현 변호사)는 민원인이 낸 고소장을 분실했다. 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윤 검사는 민원인이 냈던 다른 사건에 첨부된 고소장을 복사해 상급자 도장을 임의로 찍어 위조하는 방법으로 분실 여부를 숨겼다. 공문서 위조는 중대 범죄로 분류돼 벌금형이 없고 최하가 징역형임에도 윤 검사는 별다른 징계 없이 그해 6월 사표를 내는 것으로 무마됐다. 윤 전 검사 역시 아버지가 한 금융지주회사 대표였다. 임 검사는 이 사건 처리와 관련해 김수남 전 검찰총장, 김주현 전 대검차장 등을 직무유기로 경찰에 고발했다. 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은 검찰에 부산지검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했지만 9월9일 기각됐다.

임 검사는 10월4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경찰청 국정감사 참고인으로 출석했다. 지난해 9월 검사윤리강령이 개정되면서 소속 기관장 승인 없이 신고만으로도 외부 인터뷰와 국회 출석이 가능해졌기에 현직 검사로서는 처음으로 경찰청 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 나설 수 있었다.

이날 임 검사는 국정감사에서 15분여간 “검찰이 없어져도 할 말이 없을 만큼 난장판이다”라며 검찰개혁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작심한 듯 발언을 이어갔다. 10월8일에는 임 검사에 이어 서지현 검사가 고소한 사건에 대해 서초경찰서가 대검찰청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했지만 서울중앙지검이 기각한 사실이 알려졌다. 서 검사는 2010년 사건 당시 인사 책임자였던 권순정 당시 검찰과장(현 대검찰청 대변인)을 직무유기로, 문홍성 당시 법무부 대변인(현 대검 인권부장)과 정 아무개 당시 법무부 인권국장(현 서울중앙지검 부장검사)에 대해서는 이프로스 등에 2차 가해에 해당하는 허위 사실을 유포했다며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바 있다. 다음 날인 10월9일 임 검사는 관련 기사와 함께 페이스북에 긴 글을 올렸다. “역시나… 싶어 한숨을 쉽니다. 참 한결같네요. 저도 그 한결같음에 맞서 한결같이 버텨봐야겠지요. 그럴 각오입니다.” 

Magazine
최신호 보기 호수별 보기

탐사보도의
후원자가 되어주세요

시사IN 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