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현지 그림

한국도로공사의 주된 수입원은 고속도로 톨게이트 요금이다. 한국도로공사의 업무는 유료도로의 공사와 관리다. 상시·지속 업무이기 때문에 요금수납원들은 원래 이 회사의 정규직이었다.

이들은 1998년 외환위기, 2009년 이명박 정부의 ‘공공기관 선진화 방안’에 따라 차례로 외주화되어 하청 직원으로 전락했고, 열악한 노동조건과 인권침해를 겪어야 했다. 지난 8월29일 대법원은 바로 그 외주화가 불법파견이라는 점을 확인하고, 한국도로공사가 요금수납원들을 원래의 자리로 직접 고용하라고 판결했다. 한국도로공사는 대법원 판결 원고들만 직접 고용하고, 1·2심에 계류 중인 노동자들에 대해서는 끝까지 소송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좋은 일자리’의 조건은 무엇인가

전국 톨게이트 영업소는 거미줄처럼 엮여 있고 통일적으로 운영된다. 근무관계가 다를 수 없다. 한국도로공사는 자회사가 설립되어 직접 고용할 수 없다고도 한다. 1·2심에서 불법파견이 확인되자 대법원 선고를 앞두고 권리포기 각서를 돌려 자회사를 설립한 주체는 다름 아닌 한국도로공사였다. 판결 회피용 꼼수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한국도로공사는 스마트톨링 자동화시스템 도입 때문에 직접 고용이 어렵다고도 한다. 그로 인해 업무가 얼마나 줄어들 것인지도 논쟁 중이지만, 그조차도 지금 당장이 아니라 2022년 이후에나 가시화될 예정이다. 그렇다면 직접 고용으로 법적 의무를 이행하고 구체적 내용이 확정되었을 때 한국도로공사가 직접 ‘사용자로서’ 사회적 해법을 찾는 것이 맞지 않을까. 오늘도 요금수납원들은 서울톨게이트와 본사 로비, 청와대 앞에서 대법원 판결 이행을 요구하며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은 ‘공기업 정규직을 시켜달라’고 억지 부린다는 비난을 받았다. 대법원 판결에 따르면 이들은 ‘이미 한국도로공사의 노동자’로 일해왔다. 자회사는 구조조정의 방편이 될 공산이 크다. 공공기관의 자회사는 다르다고? 고 김용균 노동자가 일한 용역업체는 애초 공공기관 자회사로 설립되었다가 사모펀드에 매각되었다. 무엇보다 대법원은 요금수납 업무가 누구의 ‘업’인가, 요금수납원들을 사용해 이익을 향유하는 주체는 누구인가에 대해 이미 답변했다. 요금수납 업무가 한국도로공사가 지휘·감독할 수밖에 없는, 한국도로공사와 분리할 수 없는 업무인 이상, 자회사는 또 다른 불법파견의 도돌이표가 될 수 있다.

의자의 개수가 고정되어 있다는 전제 아래 누가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온당한가로만 모든 논의가 수렴되고 있는 요즘, 우리 사회에서 ‘의자에 앉을 자격’에 대한 논의 속에 생략된 진짜 물음을 물어야 할 때가 아닐까. ‘좋은 일자리’의 조건은 무엇인가. 양극화가 심화된 우리 사회에서 어떻게 하면 좋은 일자리를 확대할 수 있는가. 마구잡이로 생겨나는 자회사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문제의 진정한 해법인가. 정부가 나중에 불법파견으로 판결받을 정도로 무리하게 진행한 외주화 정책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정부 정책과 예산, 정원 제도를 어떻게 바꿔야 하는가. 법은 불법파견 문제로부터 노동자들을 충분히 보호하고 있는가. 법원이 지금까지 11회나 불법파견이라고 판결했지만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현대기아차 사례나 오랜 소송 과정에서 판결 회피 꼼수로 또다시 외주화될 위기에 처한 한국도로공사 사례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불법파견을 근절하고 사용자 책임을 묻기 위해 좀 더 적절한 제도는 무엇인가. 고속도로 요금수납원들이 던지는 질문의 의미는 크고도 깊다. 우리 사회의 진짜 논의는 이제 시작이다.

기자명 우지연 (공공운수노조 법률원 변호사·민변 노동위원회)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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