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약탈자본과 공범자들
홍성준 지음, 레인북 펴냄

“잔인한 약탈을 목적으로 하는 ‘그들’이 나타났다.”

‘투기자본’ ‘초국적 금융자본’ 등은 20세기 말 IMF 구제금융 사태로 한국이 본격적인 지구화 대열에 들어서면서 나타난 용어이다. 지금은 일상적 현상으로 굳어졌다. 이 책은 경제 부문 시민단체 ‘약탈경제반대행동’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저자가 지난 13년 동안 약탈 자본에 맞서 벌인 고독한 싸움의 산물이다. ‘약탈자’들이 주가조작, 유상감자, 증권 사기 발행, 해외 매각, 공공 인프라 털기 등의 수법으로 서민·노동자는 물론 기업·자본까지 어떻게 약탈했는지 구체적이고 쉽게 서술했다. 특히 ‘약탈의 과정’을 공식처럼 정리하고 그 대응책을 제시하는 부분은 현장에서 싸운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열정과 구체성으로 생생하다.

 

 

 

 

 

 

 

 

 

 

질문하는 영화들
라제기 지음, 북트리거 펴냄

“영화사나 감독이 의도했든 안 했든 영화는 정치적·사회적 맥락을 품고 있기 마련입니다.”

언론사에서 10년 넘게 영화를 담당한 영화 마니아 기자가 대중 영화 25편에 대한 후기를 남겼다. 역사적 배경부터 시작해 철학·경제학·사회학적 관점에서 영화를 뜯어본다. 이를테면 독일 나치와 전체주의의 등장은 영화 〈스타워즈〉 세계관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나? 사회복지 정책을 소재로 다룬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가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까지 수상하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영화 〈사도〉에서 영조에게 핏줄이란 어떤 의미였을까? 영화가 사회에 넌지시 던졌던 질문을 저자는 놓치지 않았다. 가장 좋은 건, 극장에서 나온 뒤에 할 이야기가 더 샘솟는 영화들이다. 책을 읽고 다시 한번 영화들을 찾아보고 싶어졌다.

 

 

 

 

 

 

 

 

 

 

우리는 서로를 구할 수 있을까
정지민 지음, 낮은산 펴냄

“평등을 지향하는 현대의 부부들에게는 정해진 역할이랄 게 없고 모든 것이 협상의 대상이다.”

결혼이 별건가. 인생의 ‘과정’ 중 하나로 여겼다. 쉽게 결정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대단한 의미를 부여하지도 않았다. 이 관계의 결말이 좋지 않다고 하더라도 그 실패가 내 인생을 흔들 수는 없을 테니까. 하여간 함께 산다는 일은 예상보다 흥미진진하고, 생각보다 당황스러운 일의 연속이다. 가정 안팎에서 페미니즘을 고민하고 ‘실천’하려는 시도는 저자의 말마따나 “아주 힘들어서 때때로 아주 보람 있는” 일이 된다. 한편에서는 결혼한 여성을 ‘가부장제 부역자’로 쉽게 요약하는 세상에서 결혼한 페미니스트인 저자가 자신의 삶과 고민을 오려 책으로 내놓았다. 새로운 부부 관계를 끊임없이 만들어내고 퍼져 나가게 하자고, 그렇게 결혼이라는 제도를 헝클어버리자고 제안한다.

 

 

 

 

 

 

 

 

 

 

 

 

 

작별일기
최현숙 지음, 후마니타스 펴냄

“죽음이 예약된 모두에게 가장 강력한 질문은 ‘어떻게 살 것인가’이다.”

2008년부터 9년간 요양보호사와 간병인, 독거노인생활관리사 등으로 일한 저자가 어머니의 마지막을 관찰과 기록의 방식으로 애도한다. 엄마가 입주한 실버타운의 부자 노인들을 볼 때마다 그간 보아온 쪽방촌 노인의 얼굴과 밥상이 떠올랐다. 두 세계 간의 메울 수 없는 간극 때문에 무기력에 빠지기도 했다.
원통한 죽음이 허다한 세상에서 천수를 누리다가 고급 실버타운에서 여생을 마친 엄마의 죽음은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을까. 고민을 거듭했지만 늙음과 죽음의 ‘가차 없음’이 그를 유혹했다. 한 노인의 죽음은 사적이면서도 정치적인 문제다. 계급과 젠더, 가족주의 등의 이데올로기가 뒤엉켜 있다. 늙음과 질병, 죽음이라는 생애 마지막 단계를 생생하게 드러낸다.

 

 

 

 

 

 

 

 

 

환상 너머의 통일
이대희·이재호 지음, 숨쉬는책공장 펴냄

“파도의 방향은 일방적이었다.”

2019년 11월9일은 베를린 장벽이 붕괴한 지 30년 되는 날이다. 서독 위주의 흡수통일은 구 동독인에게는 가혹했다. 신호등 체계부터 사고방식까지 모든 걸 바꿔야 했다. 사람들은 같은 말을 쓰는 사람들의 결합은 상대적으로 쉬울 거라고 생각하지만 이는 완전한 허구다. 지난해 취재차 독일을 방문한 저자들은 통일 독일의 현재를 확인했다. ‘이등 국민’으로 전락한 구 동독인의 상실감과 동서독인 간 사고방식 차이는 아주 천천히 메워지는 중이다. 독일 재통일이 여전히 진행 중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라이프치히, 예나, 베를린, 드레스덴 등 과거의 동독 지역을 다니며 사람들을 인터뷰했다. 세대별로 통일에 대한 기억은 달랐다. 동독이 과연 통일을 원했을까? 한국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그레타 툰베리의 금요일
그레타 툰베리·말레나 에른만 외 지음, 고영아 옮김, 책담 펴냄

“아마도 영영 완전히 회복될 수는 없겠지만 점점 좋아질 수는 있다.”

‘10대 환경운동가’ ‘2019년 노벨평화상 후보’ 등의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저자는 아스퍼거 장애를 앓고 있다. 그가 11살이 됐을 무렵 섭식 장애가 겹쳤고 아침식사로 바나나 3분의 1을 먹는 데 53분이나 걸렸다. 저자가 힘겨운 터널을 지나는 동안 묵묵히 그의 옆을 지킨 건 가족이었다. 특히 그의 어머니 말레나 에른만은 스웨덴 빅토리아 왕세녀의 결혼식에 축가를 불렀을 정도로 인기가 높은 ‘국민 오페라 가수’이기도 하지만 딸이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기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한 부모이기도 하다. 이 책은 그레타 툰베리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다 스포트라이트 뒤에서 그의 이야기, 다음 세대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어머니 말레나 에른만에 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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