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병원 엑스레이실에서 남몰래 사랑을 나누는 커플이 있었다. 찰칵, 누군가 촬영 버튼을 눌렀고 엑스레이 한 장이 출력되었다. 빳빳하게 고개를 든 남성의 성기가 선명하게 찍혔다. 병원 앞마당 성모 마리아 조각상에 누군가 그 사진을 걸어두었고, 모든 환자와 직원이 달려와 일단 한번 크게 웃고는 삼삼오오 모여 쑥덕거렸다. ‘누가 찍었는지’ 궁금해하는 사람은 없었다. ‘누가 찍힌 건지’ 알고 싶은 사람만 넘쳐날 뿐.

아무래도 자기들이 찍힌 것 같다고, 간호사 윤영(이주영)과 남자친구 성원(구교환)은 머리를 감싸 쥐었다. 고심 끝에 사직서를 품고 출근하던 날, 다른 직원은 모두 ‘병가’를 냈다. 병원 부원장 경진(문소리)은 문제의 엑스레이에 제 발 저린 직원들이 아픈 척하는 거라고 ‘의심’한다. 섣불리 의심하지 말자는 윤영. 한 명이라도 정말 아픈 거라면 나머지 직원까지 다 믿어주기로 약속하는 경진. 직접 찾아가 팩트체크를 해보기로 한다. 두 사람의 때아닌 가정방문 투어가 시작된다.

믿음은 어떻게 쌓이고, 깨지고, 조합되는가

여기까지가 〈메기〉의 도입부다. 지금까지도 충분히 엉뚱한데 그 뒤로는 한층 더 엉뚱한 이야기를 준비해 두었다. 등장인물들이 저마다 서로 다른 사건으로 서로 다른 의심에 빠져 서로 다른 선택의 순간을 맞는 영화. 감독은 “어떻게 믿음이 쌓이고 깨지는지, 또 어떻게 다시 조합되는지 그 과정을 보여주고 싶었다”라고 밝혔다.

“마음속에 이미지가 하나 있었다. 어둠이 내려앉은 고요한 병원에서 어항 속 물고기를 하염없이 바라보는 여자 간호사 모습. 그런데 어항 속 물고기가 어항과는 어울리지 않는 물고기였다. 무엇이 어울리고 무엇이 어울리지 않는 것인가. 메기가 있어야 할 곳이 어항이 아닌 것처럼 세상 어떤 물고기도 어항이 어울리지 않을 것이다. 금붕어는 그냥 익숙해졌을 뿐이다(〈메기〉 보도자료 중 ‘감독 인터뷰’ 인용).”

그리하여 제목은 ‘메기’가 되었고, 배우 천우희가 메기 목소리를 연기하며 (그렇다. 이 영화의 메기는 말도 한다), 영문 제목은 ‘catfish’ 대신 ‘maggie’로 지었다. 관객들이 메기를 “생선 그 이상의 존재”로 생각해주길 바랐고, “무딘 듯 보이지만 (지진을 미리 감지할 정도로) 엄청나게 예민한 메기가 어쩌면 이 지구를 구할 수 있을지도 몰라” 하는 마음으로 영화를 만들었다고 했다. 이 감독, 역시 예사로운 분이 아닌 것이다.

〈벌새〉가 날아오른 자리에 〈메기〉가 헤엄쳐 들어왔다. 연기, 연출, 촬영, 미술, 편집과 음악, 뭐 하나 내 취향이 아닌 게 없어서 마냥 좋은 영화들. 완전히 다른 스타일의 영화로 동시에 내 마음을 가져가버린 두 편. 내게 올가을 가장 아름다운 풍경은, 극장에 〈벌새〉와 〈메기〉가 나란히 걸려 있는 정경이다.

기자명 김세윤 (영화 칼럼니스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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