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성희 제공〈일본회의의 정체〉 저자 아오키 오사무는 일본 내 역풍을 우려해서인지 한국 언론과 인터뷰를 삼가고 있다.

지난 7월 조국 법무부 장관이 민정수석 시절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 책 한 권을 들고 왔다. 아오키 오사무 전 교도통신 서울 특파원이 쓴 〈일본회의의 정체〉(율시리즈, 2017)였다. 아베 정권의 대(對)한국 수출규제와 맞물려 이 책은 한국에서 다시 주목을 받았다.

‘일본회의’는 1997년 우익 단체인 ‘일본을 지키는 모임’과 ‘일본을 지키는 국민회의’가 통합해 결성되었다. 아베 총리가 2014년 내각을 구성할 때 각료 19명 가운데 15명이 일본회의 소속이었다. 반골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일본회의 활동 목표가 국수적이며 역사수정주의적이라고 정의한다. 일본 내에서 역풍을 우려해서인지 그는 한국 언론과 인터뷰를 삼가고 있다. 〈시사IN〉과 기사 교류를 맺은 일본 독립언론 〈슈칸 긴요비(주간 금요일)〉가 그를 만났다. 〈슈칸 긴요비〉 제1248호에 실린 아오키 오사무의 인터뷰 기사를 전재한다.

 

한·일 관계 악화를 어떻게 분석하십니까?

어리석다고 생각합니다. 조금 냉정하게 보면 안보, 외교, 경제 등 어느 측면에서도 한·일 모두에 득이 되지 않아요. 패권주의적 경향이 강해지고 있는 중국에 어떻게 맞서겠는가, 북한 미사일과 핵 개발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등의 문제 외에 일본인 납치 문제와 관련해서도 북·일 간에 대화 채널이 없는 상황에서 북한과 협상을 하기 위해서도 한국과의 연계는 사활적으로 중요합니다.

일본이 반도체 재료의 한국 수출을 규제하고 화이트리스트 국가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등 한·일 대립이 경제 면까지 미치고 있는데?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때 유·무상으로 5억 달러의 경제협력자금이 한국에 들어갔습니다. 국교 정상화에 대한 평가와 별개로, 그것을 원천으로 박정희 정권은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경제성장을 이룩했죠. 더구나 경제협력자금은 일본의 끈이 붙어 있었기에 일본 기업에도 상당한 이익이 되었습니다. 한·일 간 무역이 1965년 이후 계속 한국의 적자로 이어져온 것은 하나의 증거라고 봅니다. 오해를 두려워하지 않고 말한다면 ‘65년 체제’는 양국 보수 정계와 재계에 ‘윈윈’을 가져왔습니다. 자유무역 체제의 수혜자인 일본이 수출규제로 간다면 일본 기업들에 아무런 이득도 되지 않습니다.

일본에 이점은 하나도 없다고 보시나요?

유일하게 ‘이점’이 있다면 느닷없이 이웃 나라를 당황하게 함으로써 기분이 후련해졌다는 카타르시스밖에는 없지요. 내실이 전혀 없는 우월감, 내셔널리즘(국수주의)인데 그걸 얻기 위해 일본이 한국과 대립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이런 사태에 이른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문재인 정부한테 문제가 있다 한들, 과거의 전쟁과 일본 식민지 지배를 어떻게 보는가 하는 관점에서, 역사수정주의 세력이 일본에서 정권을 잡은 것이 문제의 근본에 있다고 봐요. 애초에 1965년 국교 정상화가 냉전 체제에서 한·일 보수 정권의 ‘정치적 타협’이었기 때문에 식민지 지배가 합법이냐 위법이냐 하는 견해 차이는 덮고, 개인의 권리 등을 억지로 없애버렸습니다. 그런데 한국에서 민주화가 달성되며 그 모순이 지금 분출한 셈이지요. 또한 되돌아보면 2002년 9월 북·일 정상회담이 큰 분수령이었던 것 같아요.

무슨 뜻인가요?

제2차 세계대전 후 일본이 아주 드물게 독자적인 외교를 한 것이 2002년 북·일 정상회담이었다고 보는데, 그런 측면에서 나는 회담을 평가하고 있어요. 하지만 ‘(일본인 납북자) 5명 생존, 8명 사망’이라는 납치 문제의 충격이 너무 컸기 때문에 일본에서는 북한 공격이 심하게 일어났어요. 전후 일본은 한반도에 대해 가해자로서 반성과 사과를 계속 요구받았지만 납치 문제로 인해 처음으로 피해자가 되었다는 취지의 지적을 한 분이 있었는데 ‘과연 그렇다’고 생각해요. 전후 일본에서 쌓이던 내셔널리즘과 한반도에 대한 멸시 및 차별 감정이 그때 분출한 측면이 있었다고 봅니다. 그것을 선동한 이가 바로 아베 신조와 그를 열렬히 지지하는 층이었지요. 북·일 정상회담 때 관방부장관을 지낸 아베가 북한에 강경 자세를 계속 어필하며 주목받아서 자민당 간사장, 관방장관, 그리고 총리로 정계의 계단을 재빨리 올라간 것이지요. 제1차 아베 정권 기간은 짧았지만, 제2차 정권에서도 ‘북한 위협’을 일관되게 주장함으로써 정권 부양의 도구로 삼아왔던 것입니다.

ⓒAP Photo2002년 9월17일 방북한 고이즈미 일본 총리(오른쪽)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악수하고 있다.

‘북한=악’이라는 이미지가 급격히 확산됐지요.

물론 북한은 특이한 독재국가이지만 북·일 회담이 열리기 전까지는 언론도 정면으로 북한을 매도하거나 깔보지는 않았어요. 이게 급격히 무너지고 북한에 대한 공격이 당연한 것이 됐죠. 확인하지 못하는 애매한 정보나 억측으로 북한을 비판해도 상관없었어요. 한편 북한 입장을 객관적으로 소개한 것만으로도 공격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풍조의 계기가 된 것이 바로 북·일 정상회담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일본과 한반도를 둘러싼 역사 인식이 무너지고, 공격의 화살은 한국이나 재일 한국인에게도 향하게 됩니다. 2005년 7월에 〈만화 겐칸류(혐한류)〉가 출판되고, 2006년부터 2007년 사이에 재특회(재일 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 모임)와 같은 헤이트(혐오) 집단이 등장했어요. 이와 밀접하고 불가결한 관계가 있는데, 일본은 1990년 후반의 버블 붕괴 이후 경기침체가 계속되고 신자유주의 정책, 초고령화 사회가 촉진되고 빈부 격차가 확산되었지요. 거의 같은 시기에 전쟁을 겪은 세대들이 사회의 중심에서 사라지고, 2010년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이 일본의 GDP를 추월합니다. 이런 요소가 합쳐져서 일본 사회에서는 불안감과 초조감이 확산됐으며, 정치와 일부 언론이 배외주의(쇼비니즘)와 내셔널리즘을 부추겨 역사 인식을 둘러싼 반격, 역사수정주의가 만연한 것입니다.

즉, 북·일 정상회담을 큰 분수령으로 전후 일본의 여러 제방이 무너졌습니다. 그것을 계속 선동해온 것은 역시 아베로 대표되는 역사수정주의 정치 세력이었죠. 지금 서점에는 한국과 중국을 사실보다 나쁘게 말하는 ‘헤이트 책’과 ‘헤이트 잡지’가 많고, 텔레비전 등 언론도 그런 풍조에 전면적으로 따라가기 시작했어요. 그런 와중에 정부가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 같은 강경책을 취한 것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어리석은 조치인데, 언론 보도와 여론조사에서는 ‘타당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2002년 이후 정치인과 일부 역사수정주의자가 자꾸 선동해온 역사 인식의 반격, 역사수정주의의 파도가 이렇게까지 광범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는 의미에서 볼 때 상당히 심각한 상태라고 나는 보고 있어요.

뿌리가 깊네요?

뿌리가 깊은 것과 동시에 이 상황을 호전시킬 계기가 안 보입니다. 일본과 한국을 둘러싼 국제 정세를 보면 양국을 연결하는 힘이라고도 할 수 있었던 냉전 체제가 사라지고 중국의 거대화는 한·일 결속의 모티베이션(동기)을 저하시켰어요. 이제는 한·일 모두 최대 무역 대상이 중국입니다. 정치·경제 면에서도 한·일 간 ‘접착력’은 약화되고, 더군다나 미국의 트럼프 정권은 한·일 관계를 회복할 생각이 없다고 봐요.

‘접착력’이 약화됐다. 알기 쉬운 표현이네요.

또한 한·일 모두 정치인들이 세대교체로 많이 바뀌었습니다. 한국 측에서도 김대중 정부까지는 식민지 지배에 대한 분노와 한을 지녔지만 일본어를 할 줄 알고 일본 내정에 이해가 깊으며 일본 내 여야를 가리지 않고 대화 채널을 가진 보수·진보 인사들이 있었어요. 일본도 보수 정치인이지만 과거의 전쟁과 식민지 지배를 직접 알고 한반도에 준 아픔과 부조리에 대한 자기반성을 간직하고 있었죠. 지금은 한국과 대화 채널을 맺은 정치인들이 거의 사라졌습니다. 한국에서도 김대중 대통령 이후 후임 대통령들은 일본을 잘 모릅니다. 문재인 대통령도 마찬가지입니다. 즉, 원하든 원하지 않든 ‘접착력’이 있었던 냉전기의 한·일 관계를 향상시키지 못한 채 현재에 이르렀다는 측면이 있습니다.

언론도 문제가 많다고 봅니다. 예전에는 “어떻게 해서라도 개선해야 한다”라는 논조가 있었던데, 지금은 오히려 혐오를 선동하는 논조까지 보입니다.

네. 일본 언론도 정권에 끌려 오른쪽으로 이동하고 있어요. 한국 대법원의 징용공 판결과 관련된 사설을 봐도, 〈요미우리 신문〉이나 〈산케이 신문〉 등은 둘째치고, 〈아사히 신문〉이나 〈마이니치 신문〉조차 한국이 1965년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은 유감이라는 내용 일색이었죠. 1965년 한·일 협정에서 이미 해결됐다는 일본 정부의 주장은 일리가 있기는 해도 개인 청구권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일본이 과거 한반도에서 저지른 역사를 생각할 때 예전 같으면 “일본 정부도 과거를 훑어보고 진지하게 문제에 맞서야 한다” 정도의 논조가 표준형이었습니다. 언론 전반을 보면 오른쪽으로 이동하고 있는데, 특히 텔레비전 등 방송은 한국 비판 일색입니다.

ⓒ연합뉴스8월3일 주한 일본 대사관 앞에서 ‘아베 규탄 시민행동’ 주최로 열린 촛불문화제에 참가한 시민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한국은 그래도 냉정한 감이 듭니다.

문재인 대통령 지지층이라도 일본 전체를 비판하는 게 아니라 아베 정권에 문제가 있다고 보는 기색인 것 같아요. 〈반일 종족주의〉라는 책이나 내가 쓴 〈일본회의의 정체〉가 한국에서 많이 팔리고 있다고 들었어요. 한국에서 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아베 정권의 본질을 알고 싶은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셈이지요. ‘헤이트 잡지’나 ‘헤이트 책’이 많이 출판되고 베스트셀러가 되는 일본과 비교하면 분명히 흥미로운 현상이라고 봅니다. 옛날 같으면 한국 내에서 일본 비판은 보수도 진보도 거의 일색이었지만 요즘은 다양하게 나오는 것 같습니다. 반대로 일본에서는 나 같은 사람이 역사적인 관점에서 아베 정권의 태도를 문제시한 것만으로 악플이 쇄도하고 있지요. 언론의 폭이 급속히 좁아지고 있다고 느낍니다.

한국에서는 일본회의가 한·일 관계 악화를 배후에서 조종한다고 보는 시각도 있는데.

〈일본회의의 정체〉에서도 썼지만 일본회의라는 조직 자체가 강력한 힘을 가진 것은 아닙니다. 일본회의가 아베 정권을 지배한다거나 아베 정권에 영향력을 행사해서 한·일 관계를 악화시키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일본회의에 참여하고 있는 패거리들을 ‘보수’라고 규정할지는 둘째로 치더라도, 과거 일본 같으면 극우에 속하는 특수한 사람들이고 주요 논단이나 정계 중심에서는 그다지 주목받지 못한 이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베 정권 탄생으로 한꺼번에 존재감을 과시하게 되었어요. 이게 정권의 파워라고 할 수 있지요. 예를 들어 정권이 강행하는 여러 정책과 관련해 신문과 텔레비전이 양쪽 의견을 들을 때, 한편의 생각을 대변하는 사람으로서 일본회의 계열 논객들이 많이 등장하게 됐어요. 정권이 오른쪽으로 이동하면서 언론과 사회도 오른쪽으로 이동한 셈이지요. 즉, 전전의 복고적인 주장을 계속해온 일본회의라는 특이한 정치집단이, 그들과 비슷하게 주장하는 아베 같은 전후 일본에서도 특이한 총리를 모셔, 전후 일본 사회의 공기를 바꾸는 데 성공한 것이라고 봅니다. 나는 매우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베 정권에게 지금의 이런 현상은 도움이 될까요?

단기적으로 보면 아베 정권에 플러스가 되겠죠. 일본 정부가 대한국 수출규제를 발표한 것이 지난 7월1일인데, 참의원 선거 공지 직전이었습니다. 이런 조치를 취하면 선거에 도움이 되고 정권 부양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한 것이죠.

ⓒAP Photo일본의 패전일인 8월15일 야스쿠니 신사에서 우익 세력들이 일장기와 욱일기를 들고 서 있다.

지지층이 늘어난다는 말씀이신가요?

네, 실제로 지지율은 높아지고 언론은 연금 문제나 참의원 선거 이슈보다 ‘한국 때리기’ 일색으로 물들었습니다. 그 결과 이번 조치가 타당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다수가 된 측면이 있습니다.

‘한·일 군사정보 보호협정’ (GSOMIA·지소미아) 종료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지소미아 자체의 옳고 그름을 떼어놓고 말한다면, 이는 문재인 대통령의 실책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한국에서는 자위대에 대한 경계심이 있고 일본과의 방위 협력에 반발이 심합니다. 이를 극복해서 지소미아를 겨우 체결한 배경에는 미국의 의향도 있었습니다. 박근혜 정권과의 ‘위안부’ 합의 배후에 당시 오바마 정권의 의향이 있었다는 말도 있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본다면 그렇게 고생해서 체결한 지소미아를 종료한 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판단과는 무관하게 어찌 됐든 미국 국방부나 국무부 등 관련 부서가 강한 불쾌감을 갖고 있다고 봅니다.

한·일 관계 경색 국면을 해결할 방도가 있습니까?

당분간은 어려울 것입니다. 북·미 관계가 움직이기 시작하고 그에 맞춰 남북 관계도 움직인다면 일본에서 ‘우리도 이대로 있으면 안 된다’는 분위기가 나올지 모릅니다. 하지만 ‘한국 군사정권과 함께 국교 정상화를 실현시킨 기시 노부스케의 손자’인 아베 총리와, ‘군사정권에 맞서 민주화를 위해 투쟁한 인권변호사’인 문재인 대통령은 ‘물과 기름’, 즉 아무런 접점도 없습니다.

결국 1965년 국교 정상화가 두 나라 정부의 ‘정치적 타협’이었고 그에 따르는 대립을 해결하자면 두 나라 정부가 정면에서 대화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일본의 젊은 층은 한국 대중문화를 무조건 좋아하고 한·일 사이 벽을 아주 당연하게 넘고 있습니다. 역사수정주의자들이나 네토우요(극우 성향의 일본 누리꾼)가 아무리 혐한을 선동해도 BTS나 트와이스 콘서트는 초만원이지 않습니까. 거기에 미약하지만 희망이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정치적 대립을 문화나 인적 교류와 연계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기자명 문성희 (<슈칸 긴요비> 기자) 다른기사 보기 munsonghui@kinyobi.co.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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