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치다 다쓰루 씨는 아베 정권의 수출규제 이후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흥미로운 주장을 했다. 아베 총리의 갑작스러운 경제 공격 배경에 일본 우익이 공유하는 ‘파국 원망(破局 願望)’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파국 원망이란 뭔가 일이 뜻대로 안 될 때 아예 판 자체를 깨버리려는 파괴적 욕망을 말한다. 아베 정권의 대(對)한국 수출규제는 파국의 동반자로 한국을 택한 것이라는 분석이었다.

2015년 아베 정권의 우경화 폭주를 취재하면서 왜 그렇게 ‘아름다운 일본’이란 말에 집착하는지 흥미롭게 여겼다. 아베 총리의 저서 제목이기도 한 ‘아름다운 일본’은 현재의 일본이 실제로는 아름답지 못하고 추하다는 역설을 담고 있다. 그래서 일본을 추하게 하는 위안부 문제와 난징 학살 등을 머릿속에서 아예 지워버리고자 하는 것이다.

일본 우익이 볼 때 ‘아름답지 못한 일본’의 모습은 그뿐만이 아니다. 1945년 8월 태평양전쟁에서 ‘패전’을 인정하지 않고 ‘종전’이라고 얼버무리며 한편으론 연합군 최고사령부(GHQ)가 만든 무장해제 헌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영속패전 체제(시라이 사토시의 개념)’ 역시 아름답지 못하다.

아베 총리가 다시 집권한 것은 동일본 대지진 직후인 2012년이다. ‘잃어버린 20년’ 후에 닥친 동일본 대지진은 전후체제의 파멸을 의미했다. 그 직후 등장한 아베 정권의 ‘아름다운 일본 만들기’는 과거사 지우기와 전후체제의 탈각이라는 슬로건 아래 진행된 대미 자립 시도로 나타났다.

과거사 지우기는 한국·중국 등 당사국의 반발로 벽에 부딪히고, ‘대미 종속을 통한 대미 자립 시도’라는 아베 총리의 전략은 트럼프 정부에서 농락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결국 추한 일본을 계속 대면해야 하는 현실은 아베 총리와 우익들을 ‘파국 원망’에서 헤어날 수 없게 만들 것이다.

기자명 남문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bulgot@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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