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관계가 예정된 순서를 밟기 시작했다. 10월이 오면 대화가 시작될 것이라는 예측대로다. 내년 11월에 있을 미국 대선 스케줄에 맞추려면 적어도 이때쯤 시작하는 게 적당하리라는 합리적 추론에 따른 것이다.

외교는 타이밍이다. 늦어도 안 되지만 너무 일러도 좋지 않다. 그런 점에서 지난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실패가 마냥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내용적으로만 보자면 하노이 회담은 완전한 결렬은 아니었다. 반걸음 정도는 나아갔고 나머지 반을 채우지 못한 회담이었을 뿐이다.

북한이 영변 핵시설을 내놓겠다고 한 것은 이전과 비교하면 커다란 진전이었다. 영변 바깥의 핵 물질 생산시설 폐쇄까지 원하는 미국 처지에서는 절반의 진전일 뿐이었다. 회담이 끝나고 트럼프 대통령이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을 내세우며 완전한 비핵화를 요구하자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낙담했다. 김 위원장 처지에서는 영변 바깥 시설에 대해서도 흥정할 생각이 없었던 것은 아닌데 아끼려다 좋은 기회를 놓쳤다는 절망감을 느꼈을 것이다.

지난 5월19일 대화 물꼬가 다시 트였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나는 5개 핵시설 폐쇄를 원했는데 김 위원장은 한두 곳만을 내놓으려고 했다”라고 말했다. 볼턴 보좌관의 완전한 비핵화 노선에서 하노이 회담 당시 핵 동결 안으로 복귀하겠다는 신호를 보낸 것이다. 존 볼턴 보좌관의 해임은 이때 이미 이뤄진 것이나 마찬가지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 발언이 있고 나서 김 위원장은 친서 외교를 재개했다. 그 연장선에서 6월30일 판문점 남·북·미 회동이 열렸다. 그 뒤 몇 주 안에 실무회담이 시작될 것이라고 했는데 두 달 이상 시간이 흘러갔다.

그사이에 한·미 지휘소 훈련이 있었고 10여 차례에 이르는 북한의 미사일 시험 발사가 있었다. 북한은 또 한·미 연합 군사훈련 기간에 양국 군이 평양 점령 작전을 연습한 사실과 한국의 F35 전투기 도입을 비난하며 남북 대화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북·미 간 순풍이 과거에는 남북 관계 진전과 연동됐으나 앞으로도 그럴 건지 우려되는 대목이다. 대화를 준비하되, 대화 없는 상황에도 대비해야 한다.
 

ⓒEPA
기자명 남문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bulgot@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