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천에서 용 나는 것보다 따뜻하고 살기 좋은 개천을 만들자고 하더니 자기는 저 높은 은하수에서 용을 기른 것 아닌가.’ 조국 법무부 장관을 둘러싼 뜨거운 논란을 보고 누군가 던진 말이다.

조국 장관 가족의 재산은 약 56억원인데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2년 전보다 약 6억5000만원 증가했다. 김낙년 동국대 교수의 추정에 따르면 자산이 약 40억원 이상이면 2013년 기준으로 성인 자산 상위 0.1%에 들어간다. 물론 그의 말대로 큰 부자라도 사회와 제도가 공평하길 바라는 ‘강남 좌파’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그가 해왔던 말과는 다른, 기득권 같은 모습은 많은 이들을 실망케 만들었다.

특히 논문 저자 문제 등 딸의 입시와 관련된 논란은 ‘금수저’ ‘흙수저’로 대표되는 기회의 불평등 문제를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당시 입시에서 드문 일이 아니었다지만, 교수나 의사라는 부모의 직업과 학맥까지 관련이 있었으니 엘리트들의 카르텔을 보여주는 듯했다. 이제 이 논란이 보여준 것은 계급 문제라는 목소리가 높다. 한국에서 교육을 통한 부의 대물림이 심화되고 계급구조가 고착되는 세습 자본주의가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기회의 불평등은 노력과 무관하게 부모의 재력 같은 환경의 차이로 출발선이 달라서 나타나는 불평등을 말한다. 이는 흔히 아버지의 소득수준과 자녀의 소득수준 사이 상관관계로 측정된다. 문제는 계층 간 이동을 가로막는 이 기회의 불평등이 공정하지 않을 뿐 아니라 열심히 일하거나 혁신을 하는 노력을 저해한다는 점이다. ‘공평함과 발전’이라는 제목의 세계은행 보고서는 기회의 불평등이 투자와 생산성을 저해하고, 포용적인 제도의 발전을 가로막아 장기적인 번영의 걸림돌이라고 강조한다.

국제적으로 보면 미국처럼 소득불평등이 높은 나라가 당연히 기회의 불평등도 높다. 덴마크 같은 나라는 그 반대다. 흥미롭게도 한국은 다른 나라들에 비해 소득과 기회의 불평등이 낮다고 보고된다. 최근에 와서도 부모와 자식의 교육수준과 관련된 기회의 불평등은 과거보다 더 심각해지지 않았다는 연구 결과가 제시된다. 그러나 주병기 서울대 교수 등의 연구에 따르면 한국에서 아버지의 직업과 교육이 자녀의 소득에 영향을 미치는 소득 기회 불평등이 최근 높아졌고,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서도 높았다.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지만 성장률이 하락하고 좋은 일자리가 줄어들어 기회 자체가 적어지는 시대에는 기회의 불평등이 과거와 비슷하다 해도 더욱 심각하게 느껴진다.

ⓒ연합뉴스

기회의 불평등을 개선하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교육 기회의 확대와 공정한 입시제도를 만드는 노력이 중요하다. 비싼 사교육을 받을 수 있는 강남의 부자 아이들이 정시에서 더 유리하다고 보고되었는데, 단순히 정시의 확대가 바람직하지만은 않다. 중요한 것은 역시 결과의 불평등을 개선하는 일이다. 결과가 심각하게 불평등한 사회에서는 정치적으로 기득권의 세습에 도움이 되는 제도와 정책이 나타나기 쉽기 때문이다.

조국 장관이 해야 할 일

이를 고려하면 문재인 정부에도 아쉬움이 크다. 부동산을 포함하여 부자들에 대한 증세는 지지부진했고 가장 가난한 계층에 대한 지원도 한계가 많았다. 포용국가를 말했지만 복지급여의 기준이 되는 기준 중위소득의 인상률은 이전 정부 때보다도 낮았다. 또한 노동시장의 심각한 임금격차를 줄이기 위한 노력도 충분하지 못했다. 정부는 대통령의 말처럼 평등하고 공정하며 정의로운 나라를 만들기 위한 정책을 실천해야 한다.

조국 법무부 장관이 할 일도 적지 않다. 먼저 자본과 권력, 그리고 언론이 법 제도를 포획하여 부패로 이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검찰개혁을 이뤄내야 한다. 또한 재벌의 불법은 엄벌에 처하고, 가난하다는 이유로 법 앞에서 차별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 세계은행 보고서도 지적하듯 만인에게 공평한 법 제도가 기회의 평등에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이번 논란을 불평등에 맞서는 전면적인 사회개혁과 경제개혁의 요구로 발전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것이 강남이든 강북이든 좌파가 할 일이다.

기자명 이강국 (리쓰메이칸 대학 경제학부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