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신선영

내가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 팔로하는 사람은 300명이 넘는다. 날마다 그들이 올리는 사진 몇십, 몇백 장을 일일이 확인하는 건 불가능하다. 엄지로 한두 번 슥슥 화면을 내리다 보면 어느새 내 시야의 초점은 흐려지고, 엄지만 움직이고 있다. 말 그대로 강물처럼 흘러가는 이미지 속에서도 색상이 화려하거나 구도가 특이한 사진이 시선을 끈다.

2016년 10월16일 ‘세계보도사진상(World Press Photo)’ 계정에 올라온 사진 한 장은 눈에 띄는 이미지가 아니었다. 평소 세계보도사진상이 인스타그램에 올리던 사진에 비해 밋밋했다. 사진의 배경은 흐릿한 산이었고, 산 앞에 웬 천 조각이 걸린 철조망이 있었다. 그게 다였다.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없었고 총을 들고 있는 사람도 없었다. 나는 ‘더 보기’를 눌러 첫 문장을 더듬더듬 번역했다. “한 여성의 속옷이 묶여 있다, 미국 국경 철조망에… 애리조나의 Naco라는 곳에서.”

사진을 찍은 메리 캘버트는 큰따옴표로 뒤 문장을 이어갔다. “어느 민병대원은 자신이 간밤에 들었던 소리가 들짐승이 내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코요테’들에게 강간당하는 한 여성의 비명 소리였다는 걸 알기 전까지는.” ‘코요테’는 미국과 멕시코 사이 국경에서 활동하는 밀입국 브로커 중에서도 특히 여성을 성폭행한 뒤 피해자의 팬티를 전리품 삼아 철조망에 걸어놓는 사람을 뜻하는 은어였다. 은어가 통용될 만큼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일이었다. 국경을 넘는 여성 난민은 코요테의 고깃덩어리에 불과했다.

며칠 전 탈북 여성들을 인터뷰했다. 한 명은 열세 살 때 브로커에 의해 팔려간 이후 7년 동안 성 착취를 당하며 살았다. 다른 한 명은 열여덟 살에 팔려갔다. 두 사람 모두 원하지 않은 아이를 낳았다. 아이를 데려오지 못한 사람은 그리움으로 고통스러워했고 아이를 데려온 사람은 생활고로 고통스러워했다. 아이는 ‘남편’의 전리품이었다. 3년 전 인스타그램에서 봤던 철조망 사진이 떠올랐다. 다만 이들은 사진 속 인물이 아니라 지금 내 눈앞에 앉아 있는 사람이다. 한 5초 동안 바라보다가 엄지손가락 끝으로 밀어 넘길 수 있는 존재들이 아니다. 이미 수십 년에 걸쳐 한국에 들어온 2만3000여 명의 여성 난민이 우리 이웃으로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이들의 트라우마를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기자명 나경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did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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