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일 그림

〈독서 동아리 100개면 학교가 바뀐다〉(학교도서관저널 펴냄)는 홍천여고 서현숙·허보영 교사가 독서토론 교육을 이끈 3년을 기록한 책이다. 책 부제(함께 읽고 토론한 홍천여고 3년의 기록)에 ‘기록’이라고 적혀 있지만 연대기적 서술은 아니다. 두 교사가 제안하는 방식을 그대로 실천할 수 있도록 ‘매뉴얼’ 형태로 기술됐다. 중간 중간에 두 교사의 조언도 실려 있다. 고등학교뿐 아니라 대학 교육에 적용해도 손색이 없다.

교육 공간이 어떠해야 하는지 관심이 있는 사람의 관점에서 본다면 두 교사가 한 일은 혁명적이라고 할 수 있다. 두 교사가 홍천여고에서 ‘독서’로 시도하고 꽃피운 일은 수업에 관한 것만도 아니고, 독서토론회라는 동아리 활동과 관련된 것만도 아니고, 저자 특강과 같은 특별 활동이나 수행평가와 관련된 것만도 아니다. 이 책에서 독서는 학교생활 전체를 아우르는 활동이다.

학생들이 독서로 학교에서 경험한 삶, 그것을 우리는 ‘활동적 삶(vita activa)’이라고 할 수 있다. 한나 아렌트는 인간의 활동을 세 가지로 구분한다. 노동과 작업과 행위가 그것이다. 노동은 먹고살기 위해서 자연을 개조하는 일이고, 작업은 노동을 넘어 작품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말과) 행위란 인간이, 자연이 아니라 다른 인간과 유의미한 관계를 맺으며 공동의 세계를 창조해가는 것을 말한다.

공동의 세계만 만드는 것이 아니다. 자기 자신 또한 만들어가는 게 바로 (말과) 행위다. 사람은 말과 행위로 다른 사람과 구분된다. 아렌트가 인간의 근원적인 조건이라고 말하는 복수성처럼 인간이 다양하지 않다면 말과 행위는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렌트에 따르면 사람은 “말과 행위를 통하여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것을 넘어 능동적으로 다른 사람과 자신을 구분”한다(한나 아렌트, 〈인간의 조건〉). 말과 행위가 없는 삶은 인간의 삶도 아니고 그저 죽은 삶에 불과하다.

이 책에 나오는 학교는 학생들의 ‘활동적 삶’의 공간이다. 학생들이 활발하게 말문을 열고 다른 학생들과 활동에 참여한다는 점에 나는 감탄했다. 초등학교부터 대학에 이르기까지 가르치는 일을 하는 사람은 학생의 말문을 여는 데 가장 고생한다. 어떤 일에 자신의 의견을 가지고 다른 의견과 토론을 벌이며 세계를 만들어가는, 그런 말문을 여는 게
쉽지 않다.

말문이 열리지 않으면 그가 무슨 일을 해도 활동이 아니라 수행에 불과하다. 활동과 수행의 차이를 구분할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말이다. 수행은 말 없는 행위 혹은 이미 존재하는 상투어로 구성된 행위라 할 수 있다. 말이 없거나 상투어에 불과하기 때문에 수행은 그저 반복적이며 그 어떤 새로움도 탄생하지 않는다. 대학에서도 팀플레이를 하라고 하면 학생들은 협업이 아니라 기계적으로 분업해 적당한 결과물을 생산해낸다. 그러니 기쁨이 있을 수 없다. 학생들의 팀플레이 혐오는 상상을 초월할 때가 많다.

아렌트는 “말 없는 행위는, 행위하는 주체가 없기 때문에 더 이상 행위가 아니다. 행위자는 그가 동시에 말의 화자일 경우에만 행위자일 수 있다”라며 “말을 통해서만 행위는 적절한 것이 된다”라고 말한다. 말만이 “자신의 고유한 인격적 정체성”을 “타인들과 함께 존재하는” 세계에 드러내기 때문이다. 이처럼 말과 행위는 떨어질 수 없으며 말과 행위로 사람은 자기 자신과 세계 모두를 살아갈 수 있다.

홍천여고 생활 3년은 독서로 통합된 ‘활동’  

이런 관점에서 학생들이 말문을 열었다는 것은 그저 말을 수행했다는 게 아니다. 자기를 드러내고 세계를 짓는 그런 행위로서 말문을 열었다는 의미다. 시작은 책 선정이다. 학생들이 읽기에 적당한 책을 고른다. 수준에 맞춰 책을 읽는다. 그 책을 가지고 ‘비경쟁 토론’을 한다. 그리고 다시 학생들은 주제 통합 독서토론을 한다. 한 주제에 관련된 영화와 문학, 비문학 세 가지를 묶어서 같이 토론한다.

두 교사의 독서토론 교육에서 특히 감탄했던 점이 이 부분이다. 한 주제에 관해 다른 방식의 문해력을 키우는 데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어 보인다. 언어학자 김성우는 흔히 문해력에는 과학적 문해력과 이야기에 대한 문해력이 있다고 말한다. 비유라든가 은유 그리고 과장과 해학이 있는 이야기를 읽고 이해하는 능력, 추상적이고 기호학적인 언어를 이해하고 다루는 과학적 문해력이 모두 필요하다. 여기에 텍스트뿐만 아니라 이미지와 영상을 함께 겹쳐놓으니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다시 강조하지만 이 책을 보면 홍천여고에서 독서토론은 국어 수업 시간이나, 독서토론 동아리 같은 특별활동, 어느 한 학년에 국한되지 않는다. 고등학교 생활 3년은 독서로 통합되어 있는 ‘활동’이다. 학년이 올라가면 주제 통합뿐 아니라 인생을 화두로 독서토론을 한다. 예를 들면 진로교육은 직업이 아니라 자기 삶을 돌아보고 자기를 알아가는 과정이다.

시간뿐만이 아니다. 아렌트의 말처럼 말과 행위가 “사람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며 사람을 지향”한다면 이 두 탁월한 교사가 활성화한 활동적 삶은 다른 사람들과의 만남이다. 흔한 독서토론회처럼 같은 학년끼리, 혹은 독서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같은 취향의 사람들끼리 만나는 것이 아니다. ‘언니들의 북토크’는 학년을 넘어 선배로부터 배우고, 자기 언어를 가지도록 노력하게 한다. 같은 학교 교사들은 ‘사제동행 독서토론’이라는 또 다른 방식으로 학생들을 만난다.

아렌트가 말하는 ‘행위의 본래적 상호의존성’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 여기에는 “타인의 도움에 의존한다는 것과 스스로 행위할 수 있는 기회를 얻기 위해서 동료들이 그에게 의존한다는 것”이 분리되어 있지 않다. 지배와 지도가 아니라 동료로 결합되며 서로를 동료로 만들어낸다. “나는 타인에게, 타인은 나에게 현상”하는 사람들 사이의 공간이다. 동료로 참여하는 모든 이에게 자리가 있다. 학생들이 말문을 여는 것도 바로 이처럼 ‘자기 자리’가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저자와의 만남도 있다. 이 책에서도 소개되어 있지만 〈대한민국 치킨전〉을 쓴 정은정은 홍천여고에 갔던 날을 잊지 못한다고 말한다. 강의장으로 들어서니 저자를 환영하기 위해 학생들이 머리에 모두 닭 볏 장식을 달고 환호하며 맞이했다.
그 강연을 준비한 마음과 정성이 너무 고마워서 정은정은 그날 자기는 학생들에게 간과 쓸개를 다 내놓고 돌아왔다고 말한다. 학생들은 이미 다른 사람을 제대로 ‘환대’하는 법까지 배우고 실천했다.

다시 말하지만 이 책은 매뉴얼 성격의 기록이다. 당장 학교에서 독서 교육을 이끄는 이가 아니라면 그리 눈이 가는 책이 아니다. 그러나 나는 많은 연구자들이 이 책을 읽고 다채롭게 분석했으면 좋겠다. 서현숙·허보영 두 교사는 학생들과 함께한 3년간의 활동적 삶을 이야기했지만 아직 끝나지 않은 활동의 행위자들이다. 아렌트 말처럼 “행위 중에 있거나 행위의 결과에 몰두하는 한” 행위자이지 이야기꾼이 아니며 “이야기를 인지하고 만드는 자는 행위자가 아니라 이야기꾼”이기 때문이다. 이 아름다운 활동적 삶에 어떤 이야기꾼이 있을 것인가?

기자명 엄기호 (문화 연구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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