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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이었던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이 전 세계에 시장 만능의 논리를 주입하고 있었다. 나에겐 그저 쪼들린 삶의 기억만 남아 있다. 군사독재를 핑계로 술독에 빠져 있던 1980년대 말미에 사회주의의 붕괴라는 역사적 대사건이 벌어졌다. 그 직전인 1986년 플라자 합의와 미·일 반도체협정은 3저 호황과 반도체 산업의 급성장이라는 호재로 내 기억에 남았지만 지금 돌아보면 이 사건은 동아시아 공급망을 급진전시킨 분수령이었다. 사상 처음으로 발전도상국이 포함된 이 네트워크의 위력은 점점 더 강해졌고 미·중 데탕트에서 비롯된 중국의 가세는 화룡점정이 되었다. 최빈국부터 기술 강국까지 망라한 제조업 공급망이었고, ‘동아시아 모델’ ‘발전국가’는 더욱 번성했다.

1990년대 ‘역사의 종언’이라는 승전가를 배경으로 미국 단일 헤게모니는 곳곳의 분쟁에 개입했고 급기야 2001년 9월11일 테러는 대규모 전쟁(이라기보다 정벌)의 서곡이었다. 자유주의 헤게모니는 비자유주의 헤게모니로 변모했다. 유아독존적 안보와 IT 혁명, 금융 혁명의 경제적 과실을 마음껏 누리던 미국을 기다리고 있던 건 대공황에 버금가는 2008년의 ‘대침체’였다.

도광양회의 중국이 드디어 몸을 일으켰다. 누가 봐도 ‘대국굴기’였다. 유럽은 재정통합 없는 통화통합, 또는 유럽 시민의식의 적자로 미국보다 더 큰 시련을 겪었고 급기야 브렉시트와 ‘그렉시트 미수 사건’으로 치달았다. 이번에는 중국이 오만을 부렸다. 동·남 중국해 주변 국가들과의 분쟁은 ‘중국몽’과 ‘일대일로’의 청사진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이 모든 기간 북한은 반대의 길을 걸었다. 1980년대 중·후반, 2000년대 초반의 개혁정책은 불행하게도 국제 정세의 풍랑을 넘지 못했다. 언제나 그렇듯 외부 위협은 내부의 결속을 다진다. 안보로 반제국주의와 주체의 정체성을 확립했고, 이에 연계된 ‘자력갱생’의 경제는 동아시아 공급망과의 절연이었다. 북한은 고립 속에서 결국 핵과 미사일을 선택했다.

2017년 국수주의를 펼쳐 들고 등장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미 2009년부터 이데올로기 통제를 강화하고 2012년 시진핑 종신체제를 확립한 중국과 전쟁을 개시했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를 비롯해 몇몇 이들은 이를 ‘신냉전’이라고 이름 붙였다.

‘냉전=차가운 평화’는 각각 상호 분리된 경제-안보-(민족 정체성을 유보한) 이데올로기 동맹체 간의 ‘상호확증파괴’에 기초했다. 신냉전 체제는 사뭇 다르다. 1980년대 말 소련과 미국 간 교역은 연간 20억 달러였지만 지금 중국과 미국 사이에는 매일 20억 달러의 물건과 서비스가 흘러 다닌다. 신냉전은 경제와 안보 이익의 충돌을 일으킨다. 2년째 올라가고 있는 상호 보복관세는 이미 과거의 평균 최혜국 관세 2~3%를 다섯 배 이상 초과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과감한 결정은 미국의 동아시아 안보망에 치명적 손해를 입힌다.

동아시아 국가들 스스로 제3의 주체로 결속하지 않는다면…

트럼프 대통령의 역외균형 전략으로 샌프란시스코 체제가 변화할 조짐을 보이자 아베 총리는 이 틈바구니에서 평화헌법을 개정하려고 한다. 한·일 간의 정체성 갈등은 지금 동아시아 공급망의 표면만 건드리고 있을 뿐이지만 밖으로부터의 쇼크까지 겹치면 네트워크 자체가 흔들릴지도 모른다. 인공지능이나 5G의 주도권을 놓고 자국 기업뿐 아니라 외국 기업까지 중국과의 관계를 끊으라고 명령하는 판이니 동아시아 나라들은 스스로 제3의 주체로 결속하지 않는 한 ‘이럭저럭 버티기(muddling through)’ 처지에 빠질 것이다.

미·중의 헤게모니 전쟁(안보와 경제의 결합), 한·일의 정체성 갈등(정체성과 경제의 결합)은 이렇게 과거의 안정적 안보-경제-정체성 연계의 재편 속에서 벌어지고 있다. 북한이 미사일을 쏘아대는 것은 이 모든 불확실성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다. 무의미한 한·미 연합 군사훈련만 없애도 북한은 조금 더 차분히 자신의 최적 안보-경제-정체성 연계를 찾아낼 테고, 이는 공존과 개방의 방향일 것이다.

기자명 정태인 (독립연구자·경제학)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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