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성 그림

개정 강사법이 올해 8월 시행되면서 대학가에 큰 변화가 찾아왔다. 개정 강사법의 핵심 내용 중 하나는 강사의 교원 지위 확보이다. 군사정권 시대에 박탈되었던 강사의 교원 지위를 회복하고, 교원으로서의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에는 적극 공감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권리는 일단 채용이 되어야만 체감할 수 있다. 방학 중 임금 지급이라는 항목 또한 처음 의도와는 달리 약 2주일분 임금을 추가로 지급하게 된 것에 그쳤다. 대부분의 강사들 처지에서는 강사 공채의 합격·불합격 여부가 가장 중요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박사학위 없는 4년 차 강사인 나 역시 한 대학의 강사 공채에 지원했다. 공채는 온라인으로 이루어진다. 대학 홈페이지에서 강사 채용 공고가 난 과목을 확인하고 대학 전산 시스템에 접속해서 이력서와 지원 강좌, 강의계획서를 입력한 뒤 특정일 이후에 합격 여부를 확인하도록 되어 있었다.

강사 채용이 공채로 바뀌며 생긴 일들

강사법이 시행되기 전 매년 1월과 7월 말이 되면 시간강사들은 한 통의 전화를 목이 빠지도록 기다리곤 했다. 강의를 의뢰하는 교수 혹은 학과 조교로부터 오는 전화다. 강사 채용이 공채로 바뀌면서 이 조용한 야단법석이 사라진 것이다. 언제 걸려올지 모르는 전화를 하염없이 기다리던 수동적인 대상에서, 자발적으로 각 대학의 채용 공고를 알아보고 지원 가능한 강좌를 판단해 공채에 참여하는 능동적 주체로 전환된 내 위치가 낯설게 느껴졌다. 이 낯섦이야말로 강사법이 불러온 가장 중요한 변화 아닐까?

물론 공채 시스템이 도입되면서 증가된 행정적 부담(서류 작성)이나 대학 측의 과도한 스펙 요구 같은 문제가 불거지기도 한다. 또한 강사법 시행 전까지 많은 시수의 강의를 맡아왔던 강사들에게는 최대 강의 시수를 9학점으로 제한하는 개정 강사법이 원망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강사의 ‘먹고사니즘’을 건드리는 문제니까. 하지만 이렇게도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누군가가 20학점, 30학점씩 강의하면서 바빠 죽겠다고 불평하는 동안, 다른 누군가는 강의 한두 자리를 얻지 못해서 연구자의 길을 포기하느냐 마느냐의 기로에 놓인다. 그런 포기가 하나둘씩 쌓이고 쌓여서 학문 생태계 전체가 납작해진다. 적어도 대학에서 강의할 정도의 지성인이라면 ‘강사법은 왜 만들어서 잠자는 대학 본부의 코털을 건드렸느냐’고 비난할 것이 아니라, 강사법이 강사의 처우 개선이라는 본래 취지대로 작동하도록, 또한 대학이 좀 더 많은 예산과 인프라를 강사들에게 제공하도록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하지 않을까?

강사 당사자들의 연대와 각성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강사 공채 시스템을 운영하는 대학 당국, 인사권을 지닌 교수들의 의지일 터이다. 강사법을 강사 인원 감축의 빌미로 악용하는 사례, 강사법 대응을 핑계로 강의를 축소 및 대형화하는 사례가 지속적으로 적발되고 있다. 이번에 실시된 첫 강사 공채가 학벌 카르텔과 사적 인맥에 의한 채용이라는 기존 강사 임용 체계를 넘어서지 못하고, 사실상 ‘내정자 확정’ 수준에 그친다는 문제 제기도 나온다. 강사법으로 인해 발생한 대량 해고자들을 구제한다는 교육부의 ‘시간강사 지원사업’조차 지원 자격을 박사학위 취득자 이상으로 제한하는 반쪽짜리 대책에 그쳤다.

이 모든 문제를 겪으면서도 강사법은 시행되었고, 대학 사회 역시 엄청난 변화를 맞을 것이다. 나는 이번 강사 공채에서 모두 탈락했다. 대학 전산 시스템에서 ‘불합격’이라는 글자를 확인한 순간, 익숙한 허탈감이 밀려왔다. 학술지에 투고한 논문이 ‘게재 불가’ 판정을 받았을 때와 비슷하지만, 논문은 탈락 사유라도 알려주니 차라리 낫다. ‘귀하의 자질만은 높이 평가되었다’ 운운하는 불합격 문자를 받은 취업 준비생의 심정에 더 가깝겠다. 그럼에도 나는 이 불완전한 강사법을 지지한다. 아니, 강사법이 불러온 낯섦을 지지한다.

기자명 홍덕구 (인문학협동조합 조합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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