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이명익오른쪽은 홍콩 정부청사가 있는 애드미럴티 지역에서 ‘포위 시위’를 하는 시민들.

홍콩은 중국에게 ‘아픈 손가락’이다. 중국이 아편전쟁에서 패배해 영국에 할양된 홍콩은 100여 년간 영국의 지배를 받았다. 중국 처지에서 1997년 반환받기까지 설움과 고통의 시간이 응축된 곳이다. 반환 뒤 홍콩은 중국 개혁·개방의 창구였다. 자본주의와 시장경제를 배울 수 있는 귀중한 참고서 구실을 했다. 홍콩이 없었더라면 중국 경제는 지금처럼 발전할 수 없었다.

중국 처지에서 결코 잘라낼 수 없는 이 아픈 손가락을 어떻게 치료할 것인가? 중국의 고민은 깊다. 우선 본토의 자국민들을 상대로 한 여론전을 진행 중이다. 중국 정부나 언론은 홍콩의 폭력 시위를 이전과는 달리 ‘세련된’ 방식으로 부각하고 있다. 예를 들면 중국 중앙방송국(CCTV)은 홍콩 공항 점거 시위와 관련해 케임브리지 대학 마틴 자크 교수의 인터뷰를 방송했다. 마틴 자크 교수는 “홍콩의 폭력 사태는 어떤 국가에서도 용납될 수 없다”라고 말했다. 해외 학자가 보기에도 폭력적인 시위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인터넷 매체인 〈인민망〉은 “홍콩을 파괴해 자유를 얻을 수 없으며, 이런 행동은 어떤 도움도 되지 않을 것이다”라는 홍콩 거주 외국인들 인터뷰를 보도했다. 중국의 웨이보와 웨이신 등 소셜 네트워크에서도 홍콩 경찰의 시위 진압 과정이 비교적 자세히 전달되고 있으며, 시위대의 불법행위를 비판하고 홍콩 경찰의 수고를 격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이이제이’ 여론전도 선보였다. 8월16일 홍콩 부동산 재벌 청쿵그룹의 리자청(리카싱)이 현지 언론 〈밍바오〉 등에 게재한 폭력 시위 비판 광고가 중국의 주요 언론 및 웨이보를 통해 실시간으로 퍼져 나갔다. 홍콩 주요 신문에 실린 전면 광고인데, ‘폭력(暴力)’이라는 글자에 금지 표시가 찍혀 있다. “자유를 사랑하고(愛自由), 관용을 사랑하고(愛包容), 법치를 사랑하라(愛法治)” “중국을 사랑하고(愛中國), 홍콩을 사랑하고(愛香港), 스스로를 사랑하라(愛自己)”는 문구가 쓰여 있었다. 반전이 있었다. 홍콩 누리꾼들은 광고 문구 끝 글자만 따면 ‘원인과 결과는 국가(중국)에 있다. 홍콩 자치를 용인하라’는 뜻이 숨어 있다고 주장했다. 결국 웨이보 등에서 이 광고 검색이 차단됐다.

중국은 외신 보도에 불쾌감을 드러내고 있다. 중국 외교부 화춘잉 대변인은 “홍콩은 중국의 홍콩이며, 홍콩 사안은 중국의 내정이기 때문에 미국은 홍콩 개입을 중단하고 간섭하지 말 것을 촉구한다”라고 말했다. 특히 캐나다에 대해서는 홍콩에 대해 논할 자격도 권리도 없다고 지적하면서 캐나다에 구금 중인 멍완저우 화웨이 부회장의 즉각 석방을 요구하고 있다.

ⓒAP Photo지난 8월25일 홍콩 경찰이 권총을 꺼내들자 한 시민이 경찰 앞을 가로막고 있다.

중국 처지에서 홍콩에 대한 처방은 일국양제(한 국가 두 체제) 원칙을 벗어날 수 없다. 일국양제는 양보할 수 없는 마지노선이다. 8월24일 중국 선전에서 열린 전국홍콩마카오연구회 회의에서 쉬쩌 회장은 덩샤오핑이 구상했던 일국양제의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콩은 다른 체제로 운영되더라도 중국으로부터 독립은 절대 용인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중국 언론도 연일 일국양제의 핵심 가치를 강조하는 보도를 하고 있다. 물론 이 보도도 세련된 방식으로 이뤄진다. 예를 들면 신화통신은 파키스탄의 무샤히드 후세인 상원 외교위원과 특별 인터뷰를 통해 “파키스탄은 홍콩에 어떤 외부 세력의 개입을 반대하며, 홍콩은 중국의 일부로서 일국양제의 방침이 홍콩의 성공을 가져올 것이다”라고 보도했다.

중국, 홍콩 사태 타이완으로 확산 우려

일국양제 원칙은 홍콩뿐 아니라 중국-타이완 문제와도 연결된다. 중국은 타이완에도 똑같이 일국양제 원칙을 강조한다. 중국은 홍콩 사태를 자칫 잘못 처리하면 타이완으로까지 번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특히 이번 사태는 홍콩인이 타이완에서 벌인 살인사건이 도화선이었다. 지난해 2월 20대 홍콩인 커플이 대학을 자퇴하고 타이완을 여행 중이었다. 남성은 임신 중인 여자친구를 살해하고 시신을 캐리어에 넣어 유기한 후 도주했다. 도주 과정에서 숨진 여자친구의 예금을 훔치기도 했다. 한 달여 만에 남성은 홍콩에서 체포되었고 자백도 했다. 하지만 현행법상 홍콩에서 그를 살인죄로 처벌할 방법이 없었다.

홍콩은 홍콩 내에서 죄를 저지른 내·외국인에게만 형법이 적용되는 속지주의를 택하고 있어 예금 횡령 혐의만 적용할 수 있었다. 남성은 살인을 저지르고도 징역 29개월에 그쳐, 사실상 무죄판결을 받았다. 지난 3월 홍콩 정부는 ‘타이완 살인사건 피해자를 위해 정의를 쟁취하자’는 명목으로 범죄인 인도 법안 개정을 추진했다. 개정안이 시행되면, 홍콩 시민이 중국 내에서 범죄를 저지르면 중국으로 이송돼 재판을 받게 된다(〈시사IN〉 제615호 ‘홍콩 시민 뇌리에 박힌 반체제 서점 사건’ 기사 참조). 타이완이라는 공간이 이번 사태와 완전히 무관하지 않기에 더 민감할 수밖에 없다.

ⓒ시사IN 이명익홍콩은 중국에 자본주의와 시장경제를 가르치는 귀중한 참고서 구실을 했다. 위는 홍콩의 야경.

중국은 홍콩 정부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홍콩 정부는 시민의 평화적 집회와 표현의 자유를 지지한다고 하면서도 질서유지를 위해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경찰의 엄정한 법 집행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채찍 처방만 제시한 것은 아니다. 중국은 홍콩의 번영이라는 당근 정책을 선전하고 있다. 중국은 최근 ‘웨강아오(粤港澳:광둥-홍콩-마카오) 다완취(大灣區:Great Bay Area)’ 사업 구상을 밝혔다. 광둥성 9개 도시(선전·광저우·주하이·포산·둥관·중산·장먼·후이저우·자오칭)와 홍콩, 마카오를 연결해 첨단기술 산업에 특화된 세계 일류 도시 클러스터를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구체적인 실행 계획도 나왔다. 2020년까지 이 구역 내의 신형 연구개발(R&D) 기관을 200곳으로 늘리고, GDP에서 R&D가 차지하는 비중을 2.8%에 이르도록 하며, 전자정보·자동차·스마트 가전·로봇·친환경 석유화학 등 5개 부문을 세계적인 선진 산업 클러스터로 도약시키겠다는 계획이다.

장기적으로 2035년까지 미국 실리콘밸리를 뛰어넘는, 살기 좋고 사업과 관광을 하기 좋은 세계 정상급 수준의 ‘베이(Bay) 경제권’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홍콩의 번영을 일궈 강한 중국을 만들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담겨 있다. 여기서 말하는 번영에는 ‘중국과 함께하는’이라는 단서 조항이 붙는다. 홍콩 중국기업협회는 8월24일 ‘가족 동락의 날’ 발대식을 열고, “홍콩 질서를 빨리 회복하여 우리 손을 잡고 함께 가자”라는 구호를 외쳤다.

기자명 베이징·양광모 통신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