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5년 촬영된 쇼와 일왕 사진(왼쪽)을 이용해 제작한 시마다 요시코의 ‘태워져야 하는 그림’(오른쪽).

한·일 간 무역분쟁 중에 아이치현 나고야에서 ‘사건’이 발생했다. 3년마다 열리는 일본 최대 규모의 국제예술제인 ‘아이치 트리엔날레 2019’의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인 〈표현의 부자유·그 후〉 기획전이 정부와 우익의 압력으로 사흘 만에 중지되었다. 이 전시는 그간 일본 내에서 여러 압력과 검열, 배제로 전시되지 못한 작품들을 모은 기획전이다. 2012년 니콘 살롱에서 전시를 거부당한 안세홍 작가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사진도 포함되었다. 특히 한국 위안부 운동을 상징하는 김서경·김운성 작가의 ‘평화의 소녀상’은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다.

이번 전시가 취소된 배경에는 위안부 피해자 사진이나 소녀상만 있는 건 아니다. 오히려 일본 우익에 더 큰 충격을 준 작품은 시마다 요시코의 ‘태워져야 하는 그림’이다. 행위예술가이자 설치미술가인 시마다 씨가 1993년 제작한 것으로, 어떤 사진을 태우는 퍼포먼스를 연출한 뒤 남은 이미지를 에칭 기법으로 재현한 작품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군복을 입은 남성이 서 있고 얼굴이 타서 구멍이 났다. 일본인이라면 이 남자가 누군지 대번에 알 수 있다. 바로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인 쇼와 일왕(히로히토)이다.

사실 이 작품 속 사진은 1935년 극도로 세밀하게 연출·촬영되었다. 당시 소장용으로 값비싸게 판매되거나 엽서 등 선전물로 배포되는 등 제국의 프로파간다 노릇을 톡톡히 한 사진이다. 당시 일왕은 신이었고 사진 형태로 신민들에게 얼굴을 드러낸 것이다. 패전 후 그가 항복 연설을 했을 때 일본 국민은 그 목소리를 처음 들었다. 일본 국민은 여전히 신의 목소리로 받아들였다. 이때 연합군사령부와 맥아더 사령관은 사진 한 장을 찍어서 언론에 배포한다. 초라한 쇼와 일왕과 거만한 점령군 맥아더 사령관의 모습이다. 일본 신문이 이 사진 게재를 거부하자 연합군사령부는 강제로 1면에 싣게 했다. 이 사진을 본 일본인들은 충격을 받았고 자살하는 이도 나왔다. 결국 1946년 1월1일 히로히토는 ‘인간 선언’을 하기에 이른다.

‘신성성에 대항’하는 것이 표현의 자유

그 후로 일왕이 두 번이나 바뀌었지만 우익이나 일부 정치인들은 왕실을 신성불가침의 영역으로 여긴다. 이번 ‘아이치 트리엔날레’에 대해 자민당 참의원인 와다 마사무네는 시마다 씨의 작품을 꼬집어 “엘리자베스 여왕 사진이 이렇게 된다면 영국 국민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황실에 대한 존중은 어느 나라에서도 보편적이기에, 일본에서 이 같은 전시는 없어야 한다. 공적자금이 들어가고, 공공미술관에서 하는 전시라면 나는 이것을 허용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문화청이 어떻게 할지 판단해야 한다”라며 보조금 중단을 시사했다.

앞에서 말한 쇼와 일왕의 사진은 다 연출된 것이다. 1935년 군부가, 1945년 맥아더 사령관이, 1993년 시마다가 연출한 것이다. 연출된 사진 속에서 진실이 드러난다. 국민을 기만하기 위해 연출하고, 그 기만을 폭로하기 위해 연출하고, 다시 그 모든 신성성을 거부하기 위해 연출한다. 권력의 공고화를 위한 연출도 있고 진실을 드러내는 예술가의 연출도 있다. 와다 의원의 말처럼 일본에서는 허용될 수 없는, 신성성에 대항하는 연출이야말로 어쩌면 인민들의 표현 자유다.

기자명 이상엽 (사진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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