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여름에도 추리소설 특집을 하기로 했다. 지난해에는 1회로 그쳤지만, 올해는 2회를 하기로 하고 추리소설 여덟 권을 골랐다. 원칙은 여덟 권을 출판한 국내 출판사는 물론이고 작가의 국적이 모두 달라야 한다는 것. 그렇게 해서 고른 책 여덟 권을 안고 제주도로 향했다. 하지만 지난 호(〈시사IN〉 제619호)에 월간 〈기독교 사상〉 2019년 6월호를 읽고 예상치도 않은 독후감을 쓰느라, 2회로 계획했던 추리소설 특집을 1회로 축소하게 되었다.
〈원년 봄의 제사〉(스핑크스, 2019)를 쓴 중국 작가 루추차는 1988년 베이징에서 태어나 푸단대학에서 고전문헌학을 전공했다. 움베르토 에코가 그의 전공 분야 가운데 하나인 중세에 관한 지식을 바탕으로 〈장미의 이름〉을 썼듯 루추차도 자신의 전공을 활용할 수 있는 한(漢)나라를 무대로 삼았다. 관씨 집안에서 벌어진 두 차례 연쇄살인 사건의 중심에는 ‘효’에 자신을 희생해야만 했던 여주인공들의 저항이 있다. 작가는 초(楚)나라의 건국 기반은 무술(巫術)이었으며 굴원은 남자가 아닌 무녀였다고 주장하는 한편, 유교가 확립된 한나라 때부터 여성 억압이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스웨덴 작가 호칸 네세르의 〈인트리고-레인〉(대원사, 2019)은 병렬되는 두 가지 이야기가 마지막에 가서 하나로 모이는 구조를 택하고 있다. 이 구조의 첫 번째 축은 소설의 화자인 다비드 무르크의 이야기다. 직업 번역가인 그는 자신과 헤어지고 심리상담사와 새로운 삶을 살기로 한 아내를 죽이기 위해 그녀가 운전하게 될 자동차의 브레이크를 고장 내놓는다. 이 소설의 두 번째 축은 세계적인 작가 헤르문드 레인의 이야기다. 그는 출판사 사장과 눈이 맞은 아내를 벌하기 위해, 자신이 아내에게 타살되었다는 소설을 써놓고 위장 자살을 한다. 그런 다음 이름을 바꾸고 그리스의 어느 섬에서 홀로 늙어가기로 계획한다.
〈인트리고-레인〉의 저류에는 그 자신도 글을 쓰고 싶었으나 번역가로 낙착되고 만 무르크의 레인에 대한 질투심과, 사적 복수를 위해 자신의 전문 번역자를 꼭두각시처럼 이용한 유명 작가의 파렴치가 각축하고 있다. 이 주제는 무르크가 레인을 죽이기 위해 그리스의 섬을 찾아가는 소설 마지막 장면에 노골적으로 드러나지만, 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게 된 두 남자의 무능력에 더 관심이 갔다. 진정한 사랑은 헤어질 때 비로소 그 능력을 나타낸다. “자기, 행복해야 해!” 헤어지자는 연인에게 이 말을 하지 못하는 한 우리는 사랑을 한 것이 아니다. 왜, 사랑했던 그녀 혹은 그를 죽인다는 말인가? 위장 자살을 하고 작가 생활을 영영 포기하기로 한 레인을 보라. 사랑에 무능력한 자는 한때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을 파멸시키고, 자신마저 폐인으로 만든다.
덴마크 작가 유시 아들레르올센의 〈유리병 편지〉(열린책들, 2019)에 나오는 연쇄살인범은 소위 이단이라고 불리는 소수 기독교 교단에 소속된 부자 신도의 자녀들만 납치해 인질을 죽이고 돈을 뜯어낸다. 그가 범행 대상으로 여호와의 증인이나 통일교 같은 ‘유사 종교’ 신도를 택하게 된 이유는, 이들이 당면한 고난을 ‘욥의 시험’으로 감내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즉 자녀를 납치당한 여호와의 증인 부모는 자신이 겪는 고난을 하나님의 시험으로 여기며 “사라진 아이는 그런 일을 당할 만해서 당한 것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신고를 하지도 않고, 아이가 죽어도 범인을 잡으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작가의 귀싸대기를 날리고 싶은 작품?
이 소설에는 여호와의 증인이 교단의 승인을 받아야만 이사를 할 수 있다거나, 공권력에 비협조적이고 적대적이라는 등 날조가 그득하다. 그러나 작가의 공상과 달리 누군가가 강도를 당하거나 살인을 당하는 현장에 여호와의 증인이 있었다면, 그들은 어떤 시민보다 더 성실하게 경찰에 협조할 것이다. 또 이 책 1권 204쪽에는 “여호와의 증인 목사”라는 생소한 말도 나온다. 원작자가 그렇게 썼든 한국 번역자가 모르고 그랬든, 여호와의 증인에게는 목사라는 호칭도 거기에 상응하는 직위도 없다. 취재와 조사도 없이 소설을 쓴 작가의 귀싸대기를 날리고 싶다.
영국 작가 클레어 풀러의 〈스위밍 레슨〉(도서출판 잔, 2019)은 살인 사건이 벌어지고 경찰이 출동하는 전형적인 추리소설의 범주를 벗어난다. 작가 지망생이었던 스무 살 여대생 잉그리드는 스무 살 연상의 지도 교수이자 작가인 길 콜먼과 결혼한 뒤, 상습적인 남편의 부정을 경험하게 된다. 그뿐이 아니다. 콜먼은 잉그리드가 매일 밤 인물, 플롯, 반전, 대단원까지 자세하게 읊어준 이야기를 옮겨 생애 최초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쓴다. 그 보답으로 그는 아내가 빨아서 다림질해준 옷을 차려입고 방송국으로 인터뷰하러 가서, 방송국 여성 스태프와 난봉을 피운다. 두 아이를 낳은 아내가 결혼 16년 만에 자발적 실종을 결행하는 이 소설은 여성이 결혼의 굴레에서 벗어나 해방을 찾는 유형의 페미니즘 소설로 읽힐 수도 있다.
재미있게도 〈인트리고-레인〉에 나오는 두 명의 ‘찌질남’과 〈스위밍 레슨〉에 나오는 폭력적이고 이기적인 소설가 남편은 ‘한남’이 결코 한국 남자를 가리키는 고유명일 수 없다고 말해준다. 이 두 권의 소설은 한남과 대척에 있다는 ‘갓양남’의 실체를 의문스럽게 만든다. 서양 남자라고 해서 남자 일반과 크게 다를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잉그리드가 매일 수영을 하면서 남편에게서 탈출하기만 꿈꿨던 이유다.
이브 뢰테르의 〈추리소설〉 (문학과지성사, 2000)이 결론 삼아 강조하고 있듯, 세계 일류급 작가들의 소설에서는 본격문학과 추리소설 사이의 경계가 사라진 지 오래다. 보르헤스·뒤렌마트·로브그리예·다니엘 페낙·패트릭 모디아노·폴 오스터처럼 추리소설 면허를 가진 본격문학 작가들은 현대소설을 진정 ‘현대적’으로 만드는 요소가 무엇인지 암시해준다. 두 장벽의 경계가 흐려지는 근본 원인은 현대 문화의 혼종적인 특징에서 찾기보다, 문학 내부에서 찾아볼 수 있다. 문학은 도스토옙스키의 저 유명한 소설 제목이 상징적으로 밝혀주었듯 ‘죄와 벌’이라는 인간의 원초적인 상황에 그 어느 예술보다 더 민감하고 효과적이다. 또 많은 추리소설은 범죄자의 자기 정체성을 묻고 있는데(범죄자는 누군가에 의해 자신의 정체가 드러날 때까지는 결코 정체가 드러나지 않는다), 이런 특성은 추리소설을 소포클레스의 위대한 비극과 만나게 한다. 추리소설은 ‘오이디푸스가 왕인 장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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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추리소설이 이 정도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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