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만나, 하루 결혼.” 한국에 온 지 6년째이지만 아직 한국어가 서툴렀다. 5년 동안 함께 살았던 남편과는 거의 대화가 없었다. 리엔 씨(가명·40)는 긴 설명 대신 사진 한 장을 꺼냈다. 검은색 정장과 흰색 드레스를 입은 신랑·신부 한 쌍이 어색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뒤로는 베트남어로 쓰인, ‘축 결혼’이라는 붉은 글자가 보였다. 리엔 씨는 2013년 4월 현지 결혼 중개업체를 통해 남편 김정명씨(61·가명)를 만나 이틀 만에 결혼식을 올렸다. ‘중개’로f 성사된 부부 중에는 서른 살 이상 차이 나는 경우도 많았다. 리엔 씨가 보기에 남편과의 나이 차이는 평균 축에 속했다. “처음에는 잘해줬어요. 한국에 가서 아이도 낳고 행복한 가정을 만들고 싶었고요.”

 

ⓒ시사IN 조남진베트남 결혼 이주여성 리엔 씨가 딸이 학교에서 받아온 상장을 보고 있다.
봄에 결혼식을 올리고, 겨울에 한국 땅을 밟았다. F-6(결혼이민) 비자가 나오기까지 8개월이 걸린 셈이다. 소망과 달리 결혼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리엔 씨는 남편의 폭언과 폭력이 계속됐다고 말했다. “남편이 욱하는 성격이었어요. 마음에 안 들면 소리 지르고, 욕하고, 집에 못 들어오게 했어요.” 전남 영암에서 발생했던 베트남 아내 폭행 사건을 보며 비슷한 경험이 떠올랐다고 했다. “남편이 머리를 때리려고 하면 몸이 안쪽으로 움츠러들었거든요.” 리엔 씨는 남편의 폭력적 성향 때문에 이주여성 쉼터에 세 차례 입소하기도 했다.
남편이 어떤 사람인지 결혼 전에는 알 수 없었던 게 문제였다. 김씨는 경남 사천에서 화물트럭을 운전하는 기사였다. 중개업체는 그를 ‘화물트럭 한 대를 소유한 사장님’이라고 소개했다. 재혼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네 번의 이혼 이력이 있다는 것은 몰랐다. 외국인과 국제결혼했다가 이혼한 게 세 번이다. 리엔 씨는 한국에 도착해 결혼이민 비자를 받고 나서 이 사실을 알았다. 되돌리기엔 늦은 때였다.
 
부부가 잘 살아보려는 시도를 안 한 건 아니다. 2014년 9월에는 리엔 씨가 베트남에 두고 온 딸을 데려와 김씨가 입양했다(리엔 씨는 김씨와 재혼했다. 전남편 사이에서 낳은 딸이 베트남에 있었다). 딸 쑤언 양(가명·11)은 1년 만에 귀화 허가를 받아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김씨의 폭언과 욕설이 쑤언 양을 향해 쏟아질 때도 있었다. 쑤언 양이 직접 녹음한 파일에는 “혼자 베트남 가” “확 죽여뿔라. 말 안 듣는 XX” 등 김씨의 폭언이 담겨 있었다. 부부 관계는 손쓸 수 없이 멀어져갔다. 리엔 씨는 쑤언 양과 함께 쉼터와 상담소를 오가다 결국 2018년 3월 조정이혼을 했다. 이후 김씨는 쑤언 양을 파양했다.
 
리엔 씨는 쑤언 양과 함께 이주여성을 위한 자립 쉼터에서 지내고 있다. 한국어를 곧잘 하는 쑤언 양은 학교생활에 쉽게 적응했다. “우리 딸 공부 잘해요. 그림 그려서 상장도 받아오고….” 어려운 환경에서도 밝게 지내는 딸이 리엔 씨에게는 큰 위로가 되었다.
 

 

ⓒ시사IN 조남진리엔 씨의 외국인등록증과 비자.
이혼 후 리엔 씨의 삶은 다른 국면을 맞았다. 2018년 10월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청으로부터 통지서가 날아왔다. ‘체류기간 연장 불허결정 통지서.’ 혼인의 진정성 결여 및 배우자의 귀책사유 불명확 등이 불허 사유였다. ‘잦은 쉼터 입소로 인해 혼인 생활이 정상적이지 않았고, 혼인관계가 단절된 데 남편에게 전적인 책임이 없다’는 이유였다. F-6(결혼이민) 비자가 더 이상 연장되지 않았다. 대신 3개월짜리 F-1(방문 동거) 비자가 찍혔다. 한국 생활을 정리하는 데 필요한 시간을 주겠다는 뜻이었다. “아이랑 떨어져서 살 수 없어요. 제가 한국 떠나면 딸 혼자 어떻게 살아요?” 리엔 씨는 지난 12월 체류연장 불허가처분 취소 소송을 시작했다.
 
이주여성은 전부 출산해야 하나 
 
영주권이나 국적을 취득하지 않은 결혼 이주여성에게 이혼은 곧장 ‘체류 불안’으로 이어지는 문제였다. 혼인관계를 2년 이상 유지한 결혼이민자는 귀화 신청이 가능하다. 그러나 리엔 씨는 귀화 신청을 하지 않았다. “신청할 엄두도 못 냈어요. 남편이랑 대화가 안 되고 갈등이 너무 심했거든요.” 2011년 신원보증제가 폐지됐지만 여전히 남편의 동의와 협조 없이는 이주여성 혼자 체류 연장 및 귀화 신청에 필요한 기본증명서 등을 발급받기 어려웠다. 2019년 6월 기준 국내 결혼이민자는 16만2582명. 그중 한국 국적의 혼인귀화자는 13만1625명이다. 결혼이민자라고 해서 모두 국적을 취득하지는 않는다. 영주권과 국적 신청을 하지 않았던 리엔 씨는 2013년 한국에 입국한 뒤로 매년 출입국·외국인청을 방문해 비자 연장을 했다. 결혼을 했지만 매년 국민의 배우자라는 지위를 ‘허가’받아야 체류할 수 있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결혼이주민의 안정적 체류 보장을 위한 실태조사(2017)〉에 따르면 결혼 이주여성의 체류 연장 경험은 평균 2.7회, 체류 연장 기한은 평균 22.8개월이었다.

 

무엇보다 리엔 씨와 김씨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가 없다는 점이 체류하는 데 큰 걸림돌이 되었다. 자녀가 없는 상태에서 이혼할 때 배우자의 귀책사유를 입증하지 못하면 체류 연장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이는 현행 F-6 비자 제도와 연관이 있다. 한국인과 결혼생활을 지속하기 위해 국내 체류를 하려는 외국인에게 허가하는 F-6-1(국민의 배우자), 한국인과 혼인관계에서 출생한 자녀를 양육하는 사람에게 허가하는 F-6-2(자녀 양육),  남편의 사망·실종, 그 밖에 자신에게 책임이 없는 사유로 정상적인 혼인관계를 유지할 수 없는 사람에게 허가하는 F-6-3(혼인 단절) 비자로 나뉜다. F-6-2 비자가 있으면 이혼을 하더라도 양육권, 친권 혹은 면접교섭권을 통해 미성년 자녀가 성인이 될 때까지 국내 체류가 가능하다. 문제는 아이가 없을 때다. F-6-3 비자로 변경하기 위해서는 소송을 통해 배우자에게 100% 책임이 있다는 것을 밝혀내야 한다.
여건이 이렇다 보니 상담원과 변호사들 사이에서는 ‘아이만 있으면 모든 게 해결된다’는 말이 나돌 정도다. 자녀의 존재는 ‘혼인의 진정성’의 의심받지 않는 증표가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 국적의 자녀를 출산·양육하고 있는 결혼 이주여성은 체류 연장이 용이해진다. 귀화 심사 기간도 단축된다.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에 공시된 국적업무 처리 기간에 따르면, 자녀를 양육하는 경우 혼인 귀화 처리에 약 10개월이 걸린다. 해당하지 않으면 8~10개월이 더 걸린다. 아이가 있으면 위장결혼이라는 의심을 덜 받는다. 서울이주여성상담센터 최현진 팀장은 “내국인 부부들도 아이를 가지지 않기로 합의할 수 있지 않나. 이주여성이라고 해서 다 임신하라는 법은 없다. 그런데 다문화 가정에는 그게 용납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시사IN 이명익7월15일 한국이주여성연합회 회원들이 베트남 아내 폭행 사건과 관련해
이주여성 권리 보장 등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리엔 씨가 대표적 사례다. 그는 아이를 갖고 싶었지만, 남편 김씨가 원하지 않았다. 딸 쑤언 양은 입양을 통해 귀화한 자녀였기 때문에 F-6-2 비자의 요건(내국인과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에 해당되지 않았다. “아이가 없다고 해서 체류가 어려워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계속 같이 살 줄 알았으니까요.” 
 
리엔 씨와 김씨처럼 사정에 따라 아이를 갖지 않으려는 다문화 가정도 존재한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농촌의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국제결혼이 급부상했지만, 이제는 양육비 부담, 고령, 재혼 등 다양한 이유로 남편 측에서 아이를 원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것이 다수 상담원들의 말이다. 이 경우 남편의 귀책사유를 입증해내지 못하면 이주여성은 이혼과 함께 ‘국민의 배우자’라는 지위를 상실하게 된다.
 
자녀가 없는 결혼 이주여성들은 한국에서 언제든 쫓겨날 수 있는 처지에 놓인다. 이혼 재판을 통해 남편의 귀책사유를 입증하지 못하면 F-6 비자가 더 이상 연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정폭력 사건이 대부분 그렇듯 객관적 증거를 확보하기 어렵다. 리엔 씨도 지속적 폭언과 협박 정황을 증명하는 112 신고 및 쉼터 입소 확인서가 있었지만 남편의 폭행·학대 사실이 인정되지 않았다. 출입국·외국인청은 오히려 리엔 씨의 잦은 가출과 쉼터 입소로 인해 혼인 생활이 정상적으로 영위되지 않았고, 무시·무관심·애정 상실 등 혼인 파탄에 대한 책임이 리엔 씨에게도 있다고 봤다. 소송을 대리하고 있는 최정규 변호사는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잘못에 의해서 파탄에 이르는 경우는 그다지 많지 않다. 현행법은 결혼이주민에게 아예 귀책사유가 없어야 비자 연장이 가능하도록 불리하게 짜여 있다”라고 말했다.
 
이혼 귀책사유 없어야만 비자 연장 
 
“주변에 고향으로 돌아간 사람이 몇몇 있어요. 다들 아이가 없어서 체류 연장이 되지 않았어요.” 리엔 씨가 말했다. “이혼하고 고향에 돌아가는 게 창피한 일이에요. 잘 살겠다고 먼 곳까지 시집갔는데 실패했다고 가족, 친척들로부터 비난받기도 해요.” 귀국하지 않고 남아 있는 경우 이주여성들은 미등록 체류자가 된다.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의 통계에 따르면 F-6 자격이 상실된 미등록 체류자 수는 2017년 1334명, 2018년 1161명 등 한 해 1000여 명이 넘는다. 2018년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는 결혼 이주여성의 혼인관계 종료 사유, 자녀 양육 여부, 한국인 배우자 가족 부양 여부와 상관없이 체류 자격을 변경하여 혼인관계가 종료된 이후에도 한국에 체류할 수 있도록 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지난 3월 법무부는 딸이 성인이 될 때까지 리엔 씨가 함께 체류할 수 있는 가족동거(F-1-1) 비자를 부여했다. 사연이 언론에 알려지며 법무부가 지시한 예외적 조치였다. 매년 출입국에서 체류를 연장해야 하는 데다 딸이 만 18세가 될 때까지만 체류가 가능했다. 다행히 취업이 가능한 체류자격 외 활동허가가 주어져 리엔 씨는 지난달부터 근처 식당에서 설거지와 서빙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오전 8시부터 저녁 8시30분까지 일을 하느라 딸을 볼 시간이 많지 않다. 하루가 다르게 언어 실력이 늘어가는 쑤엉 양은 퇴근한 엄마에게 한국어로 조잘조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결혼에 실패했지만, 한국에서 잘 살고 싶어요. 딸이랑 같이 지내면서요.” 저녁이 되자 퇴근한 타이, 캄보디아, 몽골 여성들과 자녀들이 모여들자 쉼터가 다시 시끌벅적해졌다. 
기자명 김영화 기자 다른기사 보기 young@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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