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기가 쏟아지자 2층 카페의 지붕이 무서운 기세로 소음을 냈다. 박상영 작가(31)가 기자의 핸드폰을 본인 쪽으로 끌어당겼다. 음성 녹음이 잘 되는지 신경이 쓰였다며 웃는 그도 한때 잡지사 기자 생활을 했다. 대화 도중 잠깐이라도 말이 끊기면 등에 땀이 나고, 진지해질 것 같으면 웃기려는 방어기제가 발동한다는 작가의 근황은 핑클이 출연하는 JTBC 〈캠핑클럽〉의 ‘열혈 시청자’였다. 두 번째 소설집 〈대도시의 사랑법〉에도 핑클의 노래를 결혼식 축가로 부르는 화자가 나온다. 서울 청계천 인근에서 그를 만났다. 비가 올 때와 그쳤을 때의 하늘처럼 웃을 때와 웃지 않을 때 작가의 인상이 크게 달라졌다.

지난해 9월 출간된 첫 작품집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는 7쇄를 찍었다. 7월1일 발행된 〈대도시의 사랑법〉도 일주일 만에 3·4쇄를 동시에 찍었다. 둘 다 1만5000부가량 팔렸다. 그사이 제10회 젊은작가상 대상을 받았다. 등단 3년 차의 기세가 심상치 않다. 스스로에게 이유를 물었다. 본인이 재밌는 걸 쓰려고 노력할 뿐이지만 마침 ‘페미니즘과 퀴어 이슈에 대한 관심’이 높았고 ‘서사성 강한 문학에 대한 요구’가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무엇보다 그의 소설은 정말이지, 술술 읽힌다.
 

ⓒ시사IN 신선영

이기호 작가는 첫 책의 추천사를 통해 박상영 작가에 대한 ‘팬심’을 드러냈다. 그는 박 작가의 등단작 ‘패리스 힐튼을 찾습니다’를 읽고 사랑에 빠진 뒤 그의 전화번호를 알아내고 동문 선후배를 취재했다. 박 작가를 두고 ‘생래적 유머리스트의 출현’이라 명명하기도 했다. ‘농담하는 퀴어라는 신인류의 등장(김건형 문학평론가)’ 같은 표현도 있다. 김금희 작가가 이번 책의 추천사를 썼다. 그는 동경하던 작가들이 ‘내 글’을 읽고 있다는 사실에 어안이 벙벙하고 행복했다. “저 같은 애를 싫어할 줄 알았어요. 공격적인 텍스트이기도 하고요. ‘관종’기가 많은, 되바라진 면모를 좋아해주시는 것 같아요. 젊은 세대에 기대하는 바였던 것 같고요.”

이번 책은 연작소설 네 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배경이 되는 서울의 이태원과 종로, 타이 방콕 같은 도시는 성소수자의 지역성을 대변한다. 대도시에선 사람을 만나기도 쉽지만 외로워지거나 숨기도 쉽다. 작가는 그 속에서 펼쳐지는 다종다양한 사랑의 양식을 그리고 싶었다. ‘정조 관념이 희박’하고 아웃사이더라는 공통점을 지닌 게이 남성과 여성의 우정을 그린 ‘재희’, 모든 종류의 미제를 싫어하고 자신의 성적 지향마저 ‘미제의 악습’이 아닌지 회의하는 운동권 출신과의 연애를 비롯해 동성애를 혐오하는 기독교 신자 어머니의 이야기를 다룬 ‘우럭 한점 우주의 맛’, 사랑의 시작부터 끝까지 담담하게 그려낸 표제작과 ‘늦은 우기의 바캉스’까지 소재와 주제, 반전 요소 등을 고려해 작품 순서를 정했다.

소설은 자주 웃기고 때로 울리는데 그러면서도 다양한 사회문제를 건드린다. 세대 갈등,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 질병과 성소수자를 대하는 태도, 종교의 폭력성 등을 풍속화처럼 그려냈다. ‘대한민국이라는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시민으로서 내겐 이 문제를 쓰고 말하는 게 몹시 절실했다’고 작가는 고백한다. 옳고 그름을 말하려는 게 아니다. 삶에 녹아 있는 의제들이라 있는 그대로 쓰려고 했다. 작가는 갈등을 좋아하지 않는다. 강력한 ‘자신만의 의견’이 있어 남과 타협하기 어렵다는 걸 알기 때문에 되도록 웃으면서 지내길 원한다. 의견을 밝히길 요구받는 직업을 갖게 되어 어려움이 많다. 쓸 때마다 두렵다. “중립적으로 쓴다고 해도 작가의 태도가 드러날 수밖에 없고 그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적으로 돌리게 돼요. 그렇지만 제가 미처 깨닫지 못한 부분이 있더라도 두려워하지 말고 고치면서 갱신해 나가려고 해요.”
 

ⓒ시사IN 신선영소설집 〈대도시의 사랑법〉을 펴낸 박상영 작가(오른쪽)의 북토크 모습.

‘대도시의 사랑법’을 쓸 때 특히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이 작품에는 ‘카일리’라는 별명의 질병이 등장한다. HIV(인간 면역결핍 바이러스)를 어디에도 언급하지 않으면서, 정면으로 다룬다. 이 소설을 쓰기까지 용기가 필요했고 열심히 썼다. 작가가 20대에 겪었던 사랑의 형태와 본질을 꾸미거나 평가절하하지 않고 담담하게 보여준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각별히 아낀다. 이번 책에 담긴 네 편 모두 화자와 작가를 동일시하기 쉽다. 직업이 소설가, 이름도 ‘영’이다. 독자들이 작가가 겪은 일처럼 추측하길 바랐다. 그렇게 읽혀야 파급력이 생길 것 같았다. ‘옆집에 사는 누군가 이런 일을 겪고 있구나’ 느꼈으면 했다.

‘돌멩이 하나 던지는 심정’으로 썼다. 어떤 질병은 질병으로서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다뤄진다. HIV가 그렇다. 한국에서 감염률이 늘고 있는 건 질병에 대한 인식 때문인 듯하다. 예방과 관리가 가능한데도 귀를 막고 혐오의 도구로 쓰이는 게 불만이었다. 인식이 바뀌길 기대하는 건 아니지만 돌멩이 하나 던지는 마음이었다. 소설에는 암, 요도염 같은 질병도 등장한다. 병을 대하는 다양한 태도를 보여준다. HIV 예방약인 ‘프렙’을 암시하는 장면도 나오는데, 이해하는 독자가 생각보다 적어서 별도로 설명을 붙였다.

박상영 작가가 퀴어 소설을 쓰는 이유

퀴어 혹은 퀴어 소설. 데뷔 후부터 그에게 따라붙는 수식어다. 퀴어 소설이 아닌 걸 보고 싶다는 반응도 있고, 노골적인 섹스 신이 편견을 강화한다는 반응도 있다. 작가는 성이 성역처럼 다뤄지는 게 싫었다. 밥 먹고 숨 쉬고 잠자는 것처럼 일상의 많은 욕구 중 하나일 뿐이다. 피하는 게 부자연스럽다. “섹슈얼리티는 퀴어와 비퀴어를 구분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고 강조돼 보이는 게 당연해요. 그렇게 안 하면 어떤 독자들은 애써 남성 간의 우애나 연대로 해석하기도 해요. 그걸 막기 위해서라도 제대로 보여주고 싶었어요.”

퀴어를 소재로 한다는 점에서 같은 해 등단한 김봉곤 작가와 자주 같이 묶였다. 어느 독자가 그에게 물었다. “김봉곤 작가시죠?” 쌍꺼풀 유무와 키, 피부톤이 남방계와 북방계 급으로 다르다고 그는 강조했다. 어느 매체에서는 둘을 묶어 커밍아웃한 작가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박 작가는 커밍아웃을 한 적이 없었다. 정정 요청을 했다. 퀴어 문학에 다양한 스펙트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퀴어 소설을 쓰고 싶은데 커밍아웃을 안 하면 못 쓰는 거냐고 묻는 습작생들이 있다. 그들에게 부담이 되어선 안 될 것 같다. 난리치는 사람 하나도 정도는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어느 날 갑자기 퀴어 문학이 등장한 게 아니다. 김혜진, 최진영 작가 등이 쓴 여성 퀴어 서사가 있었다. 과거로는 1900년대까지 거슬러간다. 다만 주요하게 다뤄졌던 ‘가족과 불화하거나 슬픈 퀴어’ 말고 ‘옆집에 사는 퀴어’를 다루었고 사회적으로도 그걸 선택해줄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 같다.

‘더 가벼운 톤’으로 10대 이야기 집필 예정

박상영 작가는 2012년부터 소설을 썼다. 2016년 문학동네 신인상을 받았다. 삶은 등단 이전과 이후로 나뉘었다. 마이크 하나를 받은 느낌이었다. 작은 소리가 나더라도 그 하나가 절실했다.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김세희 작가와 스터디를 하던 시절 1~2주에 한 편씩 소설을 쓸 때도 있었다. 열 번 가까이 최종심에서 떨어졌다. 희망고문이었다.

그는 문학동네 신인상 시상식 때 핑크색 날개를 달고 단상에 올랐다. 동료 작가의 선물이었다. 당시엔 머리가 망가질까 봐 거절했던 티아라(왕관형 머리 장식)를 올해 젊은작가상 시상식 때는 순순히 받아들였다. 같은 날 김봉곤 작가가 수상소감으로 두 사람이 언젠가 같이 상을 받게 되면 소감 대신 트와이스 춤을 추자고 제안했던 사실을 폭로하기도 했다. 가족들에겐 책 나왔다는 얘기를 안 했는데, 정보화 시대라 감추기가 쉽지 않다. 얼마 전 어머니에게서 “창비에서 책 나왔다던데?”라며 떠보는 전화가 온 걸로 봐서는 알고 있는 눈치다. 어머니는 ‘우럭 한점 우주의 맛’의 엄마 캐릭터를 보고 감정이입한 전력이 있다. 그는 SNS를 하고 일간지에 에세이를 연재 중이다. 강연과 유튜브도 하고 있다. 발언에 신경 써야 해서 편한 자리는 아니다. 인생 최고 몸무게라 보여주기 싫은 마음도 있다. 그럴수록 더 하려고 한다. 미완의 존재니까 실수하더라도 괘념치 않으려고 노력한다.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과정이겠거니 한다.

등단 후 입사한 직장에 다니는 3년 동안 새벽 4시에 일어나고 새벽 5시에 집을 나서, 오전 9시 출근 시간 전까지 인근 카페에서 글을 썼다는 인터뷰가 널리 회자되었다. 성실함의 대명사가 되었지만 실은 불면증 때문이었다. 몸이 망가졌다. 작년에 회사를 그만두고 잠자는 시간이 늘었다. 요즘은 건강을 회복하는 데 돈을 많이 쓰고 있다. ‘나와 화해하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장편 연재에 대비하고 있다. 더 가벼운 톤으로 10대의 이야기를 쓸 예정이다.

첫 책을 낸 뒤 ‘우리 얘기’를 써주어서 고맙다는 쪽지를 받았다. 작지만 소수의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주는 직업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책임감이 생겼다. 그런 걸 싫어하는데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 이번 책은 특히 많이 읽히면 좋겠다. 황정은 작가가, 역시 첨예한 사회적 이슈를 담은 〈디디의 우산〉을 낸 뒤 가급적 많이 읽히길 바라는 마음에 행사 요청을 사양하지 않는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도 비슷한 마음이다.

인터뷰 다음 날 서울 마포중앙 도서관에서 작가의 북토크가 열렸다. 새롭게 알게 된 건 그가 학창 시절 핑클이 아니라 S.E.S 팬클럽이었다는 사실. 즐겨 듣는 목록엔 백예린과 트와이스가 있고 유채영의 ‘이모션’과 〈프로듀스 101〉 시즌 2의 ‘네버’, 〈프로듀스 48〉의 ‘루머’도 언급되었다. 글쓰기의 의미를 묻는 질문에 ‘전부인 것 같다’며 웃었다. 경계했지만 어느 순간 그렇게 되어버렸다고. 그래도 문학을 해서 다행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세상천지에 나 혼자 이런 방식으로 세상을 보고 있구나 하는 감정에 사로잡힐 때마다 문학을 통해 비슷한 방식으로 세상을 감지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고 위로받았어요. 누군가에게 그런 위로를 줄 수 있는 사람이라면 가치 없다고 느껴지는 삶도 조금 의미 있지 않을까요.” 다음 날 그의 당부대로 ‘박상영’ ‘대도시의 사랑법’ ‘창비’ 등 해시태그가 달린 북토크 후기들이 SNS에 올라왔다. 자신과 관련된 해시태그가 달린 글은 지옥까지 따라가서 읽는다는 작가의 말이 떠올랐다.

기자명 임지영 기자 다른기사 보기 tot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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