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 군인 이상문씨(가명)가 동성 간 합의된 성관계를 가졌다는 이유로 체포된 ㄱ 대위의 구속 소식을 알게 된 건 부대 내 PC방에서였다. ㄱ 대위 사건을 안 이후로 이씨는 더욱 움츠러들었다. ‘장교도 구속되는데 나 같은 일반 병사가 걸리면 어떻게 될까.’ 이씨는 ㄱ 대위와 아무 관련 없는 공군 병사였지만, 자신 역시 수사를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불안했다.

국방부 ‘부대관리훈령’이 떠올랐다. 자세한 내용을 검색하던 중 제7장 ‘동성애자 병사의 복무’ 조항이 눈에 들어왔다. 복무하는 동성애자 병사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도입된 조항에는 신상비밀 보장, 아우팅(타인에 의해 성소수자임이 밝혀지는 것) 제한, 차별 금지 등의 내용이 적혀 있었다. ㄱ 대위의 체포 뉴스를 봤던 컴퓨터 화면에는 군대 내 동성애자의 권리를 존중해야 한다는, 정반대의 내용이 떠 있었다.

ㄱ 대위는 출장 중이던 2017년 4월13일 체포되었다. 군형법상 ‘추행’ 혐의였다(제92조 6항). 군형법 제92조는 군대에서 일어난 성폭력을 처벌하는 조항이다. 여러 성범죄 유형을 세세히 나누어 명시하고 있다. 이 가운데 인권단체로부터 문제로 지목되는 조항이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한 사람’을 처벌하도록 규정한 제92조 6항이다. 이 조항에 따르면 폭행이나 협박 없이 합의된 동성 간 성관계도 처벌 대상이다. 성관계를 한 두 사람 모두 처벌받는다. 서로가 가해자가 되는 셈이다.
 

ⓒ연합뉴스2017년 7월 성소수자 군인 처벌 중단을 촉구하는 이들이 군복을 입고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체포 당시 ㄱ 대위는 가족에게 자신의 성적 지향을 알리지 않은 상태였다. 수감된 ㄱ 대위는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이 왜 갑자기 헌병에게 체포됐는지 설명해야 했다.

이튿날 어머니는 아들의 구속영장을 기각해달라며 호소문을 썼다. “우리 아들처럼 잡혀가진 않았지만 수사를 받은 군인들이 많다는 사실도 어이가 없었습니다. 누구를 때린 것도 아니고, 술을 먹고 행패를 부리거나 성폭행을 한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걸까요.”

당시 육군 중앙수사단(중수단)은 군대에서 복무 중인 성소수자 장병 수십명을 추행 혐의로 조사하고 있었다. 그해 2월 한 현역 병사가 자신이 군 간부와 성관계를 맺었던 동영상을 SNS에 올린 게 계기였다. 중수단은 곧바로 수사에 들어갔다. 수사는 성관계 동영상 유포 사건에서 그치지 않았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수사관이 피의자가 된 ㄴ씨의 휴대전화를 보고 ㄴ씨와 메신저로 대화를 나눈 ㄷ씨를 찾아가는 식이었다. 수사관은 피의자에게 성소수자 데이팅 앱으로 다른 성소수자 장병의 얼굴 사진을 확보해 넘길 것을 강요하기도 했다.

“군형법 92조 6항 폐지돼야”

중수단의 조사를 받은 장병 중 23명이 입건됐고 그중 3명은 무혐의 처분, 11명은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나머지 9명은 재판에 넘겨졌다. 재판을 받은 사람 중 4명은 유죄판결을 받았지만 항소하지 않았다. 구속 당시 전역을 며칠 앞두고 있었던 ㄱ 대위도 항소를 포기한 4명 중 한 명이었다. 항소하면 재판이 끝날 때까지 군인 신분으로 남아야 한다는 사실이 고통스러웠다. 입사가 예정된 직장 역시 재판 문제가 엮이면서 다닐 수 없게 되었다.

유죄판결에 불복한 4명은 항소를 이어갔고, 현재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모두 현역 군인이다. 군사재판은 3심의 경우 대법원이 관할한다. 지난 6월24일 군인권센터가 항소 중인 피해자들의 무죄를 요구하며 마련한 기자회견에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는 현역 군 간부가 참석했다. 그는 이렇게 호소했다. “저는 왜 군인으로서 군사적 능력보다 성적 지향으로 평가받아야 하나요? 아무도 내가 동성애자인지 모를 때는 ‘조직에 필요한 인재’ ‘참군인’이었습니다. 하루아침에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무너져내린 저의 군 생활은 어떻게 회복이 될까요?”
 

ⓒ시사IN 조남진국제앰네스티가 7월11일 군내 성소수자 인권 보고서 발간 기자회견을 열었다.

재판에 넘겨진 9명 중 나머지 한 명은 2018년 2월22일 무죄선고를 받았다. 그는 ㄱ 대위와 달리 구속되지 않았기 때문에 군대에서 제대할 수 있었고, 군사 법정이 아닌 서울북부지방법원에서 재판받았다. 당시 재판부는 ‘당사자 간 합의에 의한 성관계는 형사처벌의 대상이 될 수 없고, 군의 기강을 해친다고도 볼 수 없다’라고 밝혔다. 검찰이 항소했고 2심이 진행 중이다. 어찌됐든 1심 재판부는 군사법원과 판단을 달리한 셈이다.

군인권센터는 군내 동성애자 색출을 위한 함정수사의 배후로 장준규 전 육군참모총장을 지목했다. 육군 법무실 고등검찰부가 수사가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군형법상 추행죄 처리 기준’을 담은 문서를 각 부대의 군 검찰에 하달했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기소 지침을 적은 문서는 참모총장의 승인 없이 작성될 수 없다는 게 군인권센터 주장이다. 2015년 9월에 취임한 장준규 참모총장은 임기를 모두 채우고 전역했다. 군인권센터 김형남 기획정책팀장은 “군형법 제92조 6항이 폐지되지 않는 한 언제든지 성소수자 색출은 다시 자행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2017년 육군 성소수자 군인 색출 사건의 피해자 중 일부는 헌법재판소에 군형법 제92조 6항이 위헌인지 아닌지 판단해달라는 심판을 제기한 상태다. 국제앰네스티는 ㄱ 대위 사건을 계기로 한국 군대 성소수자 인권을 조사했다. 이를 바탕으로 7월11일 보고서 〈침묵 속의 복무〉를 발간했다.

성소수자 색출은 육군 장병 몇몇을 상대로 벌어진 일이었지만, 다른 군대에 있는 성소수자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당시 ㄱ 대위의 체포 소식을 듣고 두려움에 떨던 이상문씨 역시 스스로 현역 복무 부적합 심사를 신청했고 ‘복무 부적격자’로 제대했다. 이씨는 공군 복무 중 썼던 일기를 정리해 올가을 〈내 이름은 군대〉라는 제목의 책을 낼 예정이다. 군인권센터에 따르면 해군에서도 비슷한 수사 방식으로 성소수자 군인 색출이 이뤄지고 있다.

기자명 나경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did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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