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삼성바이오로직스(삼성바이오) 사건 수사는 크게 두 갈래로 이뤄지고 있다. 하나는 증거인멸, 다른 하나는 회계 사기 혐의다. 두 혐의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그룹 승계를 위한 조직적 시도’라는 의혹으로 모아진다.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부장검사 송경호)는 지난 6월11일 정현호 삼성전자 사업지원TF 사장을 소환했다. 삼성전자 사업지원TF는 과거 삼성그룹의 컨트롤타워 구실을 했던 미래전략실(미전실)에 비견되는 조직이다. 검찰의 정 사장 수사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그가 이재용 부회장의 최측근이기 때문이다.

과거 미전실 인사팀장을 지낸 정 사장은 2015년 7월25일 이재용 부회장이 박근혜 당시 대통령과 독대한 이틀 뒤 직접 주재한 회의에 당시 최지성 부회장, 박상진 사장과 함께 참석한 핵심 멤버다. 미전실 해체 이후에는 미전실 사장단 중 유일하게 사업지원TF로 복귀했다. 그런 만큼 정 사장의 소환은 검찰 수사가 이재용 부회장 턱밑까지 밀어닥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시사IN 이명익


7월 중순 현재, 이재용 부회장은 통합 삼성물산의 최대 주주(17.08%)다. 특수관계인까지 합치면, 삼성물산 지분 중 33.24%가 이건희 회장 일가를 지지한다. 또한 통합 삼성물산은 삼성바이오의 지분을 43.44% 보유한 최대 주주다. 삼성바이오는 삼성바이오에피스(삼성에피스)의 지분 가운데 ‘50%+1주’를 가졌다. 즉, 이재용 부회장→통합 삼성물산→삼성바이오→삼성에피스로 연결되는 지배구조다.

현재 삼성바이오 사건 관련 증거인멸 및 회계 사기 혐의가 이재용 부회장에게 쏠리는 까닭은 2015년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때문이다. 검찰은 이재용 부회장의 그룹 승계를 위한 삼성그룹 차원의 작전이 이 합병에서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룹의 핵심 기업인 삼성전자에 대한 이건희 회장 일가의 지배력이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이후 크게 강화된 것도 사실이다. 당시 이건희 회장 일가가 가진 제일모직 지분은 무려 42%(이재용 부회장만 23.2%)에 달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건희 회장 일가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합병을 이루기 위해, 제일모직의 기업가치를 삼성물산에 비해 훨씬 높게, 사실상 조작했다는 주장이 제기되어왔다.

이처럼 이건희 회장 일가, 특히 이재용 부회장을 위한 기업가치 조작에 제일모직의 자회사인 삼성바이오가 활용되었는데, 이를 검찰은 회계 사기로 판단한다. 검찰이 삼성바이오 사건과 관련해 이재용 부회장을 소환 조사하려는 이유다.

실제로 검찰은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비율부터 조작되었다고 본다.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는 딜로이트안진 회계법인 회계사들로부터 삼성 측의 요구에 따라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비율인 ‘1(제일모직) 대 0.35(삼성물산)’가 정당하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작성했다는 진술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제일모직 가치 높이려는 삼성 내부 문건

당시의 합병비율에 따르면, 제일모직 1주의 가격이 삼성물산 3주의 가격과 같을 정도로 제일모직이 훨씬 높게 평가받았다. 이처럼 제일모직 가치를 과대평가하는 삼성 측의 논리적 근거 중 하나가 바로 제일모직이 가진 삼성바이오 지분(45.65%)이었다. 검찰은 당시 삼성바이오가 비상장회사로 가치평가를 자의적으로 높일 수 있다는 점을 악용했다고 의심한다. 삼성바이오의 가치를 높여서 제일모직의 가치를 부풀리는 방법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삼성바이오 측이 이런 그룹 차원의 ‘음모’를 인식하고 있었다는 방증도 있다. 2015년 11월17일 쓰인 삼성바이오 내부 문건을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11월 공개했다. 이 문건(〈바이오로직스, Biogen사 콜옵션 회계처리 관련〉)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통합 (삼성)물산은 9월 합병 시 (제일)모직 주가의 적정성 확보를 위해 (삼성)바이오 사업가치를 6.9조로 평가하여 장부(지분 51%)에 반영.”

풀어 쓰면, 제일모직의 주가(기업가치)를 높이기 위해(‘적정성 확보’) 삼성바이오의 기업가치를 6조9000억원으로 평가했다는 말이 된다.

 

ⓒ박용진 의원실 제공박용진 의원이 공개한 삼성바이오 내부 문건.
제일모직의 주가를 높이기 위해 삼성바이오의 기업가치를 높게 평가했다는 취지의 내용이 쓰여 있다.


이에 앞선 2015년 7월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가결에는, 제일모직(4.85%)과 삼성물산(11.2%)의 대주주인 국민연금공단의 찬성이 큰 몫을 했다. 이 같은 국민연금공단의 판단에 당시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과 홍완선 전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장의 부당한 압력 행사가 있었다는 점은 이미 법원에서 인정됐다. 두 사람은 2심에서 징역 2년6개월을 선고받았다.

항소심 재판부는 당시 청와대의 개입을 인정하며 “문형표 전 장관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이 사건 합병 안건에 대한 국민연금공단의 의결권 행사 문제를 잘 챙겨보라’는 지시가 있음을 인지했다”라고 판단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당시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으로 이재용 부회장 등 삼성그룹 대주주에게 최소 7720억원의 이익이, 국민연금공단에게는 최소 1387억원 규모의 손실이 발생했다.

이재용 “지배력 강화? 그런 것이 아니다”

한편 검찰은 삼성바이오 분식회계가 이뤄졌다고 의심되는 2015년 말 당시 삼성 측의 내부 움직임이 나타난 문건도 확보하고 있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2015년 11월18일자 삼성바이오 내부 문건에 따르면, 당시 삼성바이오 측은 자회사 삼성에피스를 합작 설립한 바이오젠의 콜옵션 행사 가능성 때문에 고심하고 있었다(20~25쪽 기사 참조). 비상장회사인 삼성에피스의 공정가치가 높게 설정되면 바이오젠이 콜옵션을 행사할 가능성 역시 커진다. 이 경우, 삼성바이오는 바이오젠을 사실상의 공동 경영자(삼성에피스에 대한)로 받아들이거나 혹은 바이오젠이 콜옵션 행사로 얻을 이익(2조원 이상)을 돌려줘야 하므로 자금난에 빠질 수 있었다. 당시 삼성바이오는 세 가지 대응 방안을 검토했다. 첫째는 바이오젠과의 계약서 소급 수정, 둘째는 삼성에피스를 종속회사에서 관계회사로 변경, 셋째는 삼성에피스 (공정가치) 평가액 축소다.

내부 문건은, 첫 번째 방안에 대해 ‘바이오젠이 받아들이지 않을’ 것으로 평가했다. 세 번째 방안도,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의 정당성이 사라진다는 점에서 불가능하다고 판단한다. 삼성에피스의 기업가치 평가액이 줄면 모기업인 삼성바이오 및 ‘할아버지 기업’인 제일모직의 기업가치까지 따라서 낮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삼성바이오는 두 번째 방안(삼성에피스를 종속회사에서 관계회사로 변경)을 채택한다. 이에 따른 삼성에피스의 지분가치 4조8000억여 원을 삼성바이오의 재무제표에 반영함으로써 삼성바이오는 당시의 자본잠식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금감원은 이 부분을 ‘고의 분식회계’라고 판단했다.

삼성은 이러한 의혹을 모두 부인한다. 정당한 회계처리였다는 것이다. 당시 각 상황에 맞게 대응한 것일 뿐인데, 검찰이 무리하게 삼성바이오 회계 사기 의혹과 이재용 부회장 승계를 연결시킨다는 것이다. 이재용 부회장 또한 일관되게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은 자기와는 관계없는 일이라고 주장해왔다.

2016년 11월13일 국정농단 사건으로 검찰에 출석한 이재용 부회장은 이렇게 술회한 바 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사장님들이 결정했고, 믿을지 모르겠지만 그때 제가 합병을 반대를 (왜) 안 했는지 모르겠다. 두 회사 사장이 합병에 따른 시너지를 열심히 설명해 합병한 것이다. 이렇게 반대하는 주주가 많을 줄 몰랐다. 지배력 강화를 위해 한 것처럼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듣기 싫은 면도 있다. 그런 것이 아니다.” 이재용 부회장은 이번 검찰 소환조사 때도 같은 진술을 할까?

기자명 김은지 기자 다른기사 보기 smi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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