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시 미소 짓는 호랑이가 바라보는 건 자신의 머리 꼭대기입니다. 호랑이 머리 꼭대기에는 두 꼬마가 있습니다. 한 꼬마는 팔베개를 하고 옆으로 누워 있습니다. 또 한 꼬마는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피리를 불고 있습니다. 참 순진하고 평화로운 풍경입니다. 그럼 본문에서는 어떤 이야기가 이어질까요?
나뭇잎 하나 흔들리지 않는 저녁에 사라와 닉이 풀밭에 누워 이야기를 나눕니다. “아, 심심해! 닉, 오늘 하루 신나게 보냈니?” “아니, 무언가 하긴 했는데 진짜 신나는 일은 없었어.” “뭘 했는데, 닉?” 닉은 무엇을 했을까요? 뭘 했는데 정말 신나는 일은 아니었을까요? “음, 물구나무를 서고….” 그렇지요. 물구나무서기가 그렇게 신나는 일은 아니었을 겁니다. 물론 저처럼 물구나무서기를 못하는 사람이 어느 날 혼자 물구나무서기를 한다면 아마 신기하고 기특한 일일 겁니다. 보통 사람에게, 특히 생기발랄한 어린이에게 물구나무서기는 그리 특별하지도 그리 대단하지도 않을 겁니다. 닉이 어디에서 물구나무서기를 하는지 모른다면 말이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책, 〈아무 일 없었어〉는 그림책이라는 말입니다! “음, 물구나무를 서고….” 표지에서 본 호랑이가 다시 나타납니다. 두 쪽에 걸쳐 거대한 호랑이가 얌전히 엎드려 있습니다. 호랑이는 표지에서처럼 사랑스러운 표정으로 위를 올려다보고 있습니다. 바로 자신의 머리 위입니다. 호랑이 머리 위에서 닉이 아주 편안하게 물구나무서고 있습니다. 그냥 물구나무서기는 별일 아니라고요? 하지만 호랑이 머리 위에서 하는 물구나무서기는 얼마나 신나는 일일까요? 그림책 〈아무 일 없었어〉를 보는 동안, 독자들은 닉과 사라의 평범한 일상이 사실 얼마나 환상적이고 스릴 넘치는지 눈으로 확인하게 될 겁니다.
경이로운 지혜를 선사하는 그림책
저자 마크 얀센의 이 농담 같은 그림책이 제 눈에는 왜 진담처럼 보일까요? 사실 닉이 호랑이 머리 위에서 물구나무를 서는 순간, 제 눈에는 그 호랑이가 땅 속에서 이글거리는 용암으로 보였습니다. 우리가 사는 땅 속에는 이글거리는 용암 호랑이들이 있으니 말입니다. 또 한편으로는 열심히 자전과 공전을 하는 지구 호랑이로 보이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별일 없이 밥 먹고 놀고 일하고 자는 이 순간에도 많은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우리 몸에서는 유익한 균과 해로운 균이 대전투를 벌이고, 지구 어딘가에서 누군가 선전포고를 하고, 우주 어딘가에는 대폭발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반란을 꿈꾸고, 누군가는 평화를 기원합니다.
그림책 〈아무 일 없었어〉는 아무 일도 없는 것 같은 우리의 일상이 얼마나 신기하고 드라마틱한 모험인지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경이로운 지혜를 선사합니다. 위대한 자연이 작고 소중한 인류를 얼마나 사랑스럽고 조심스럽게 보듬고 있는지 일깨워줍니다. 힘은 오직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 존재한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어리석은 인간들을 깨우쳐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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