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단한 산수 문제를 하나 풀어보자. 120-(3×5)-(2×15)-10-(6×10)을 계산하면? 정답은 5이다. 대학 캠퍼스에서 접할 수 있는 다양한 토론회에서 실제 ‘토론’을 위해 확보할 수 있는 시간을 계산했다. 5시간이 아니라 5분이다. 다음은 문제풀이.

토론회를 위해 계획된 시간은 통상 120분 정도다. 참석자 등록이 끝나고 예정된 시각에 행사를 시작했다면, 이제 ‘말씀’이 기다리고 있다. 개회사·환영사·축사·격려사 등을 위해 총장이나 부총장, 연구소나 학회 등 행사 주최 측의 장(長), 국회의원, 지자체장, 원로 같은 외부 ‘귀빈’들이 차례로 마이크를 잡는다. 많게는 4~5명의 ‘말씀’이 이어질 때도 있는데, 3명이 5분씩 말하는 보통의 경우를 가정했다.

이어지는 주제 발표에서는 2~3명이 각자 15~20분씩 프레젠테이션을 한다(최소 2명×15분). 1부가 끝나고 10분 휴식시간을 가진 뒤, 2부에서 지정토론자 6명이 각자 10분씩(6명×10분) 토론회 주제에 대해 준비한 이야기를 하고 나면 총 115분이 흐른다. 마지막 순서인 종합토론이나 질의응답을 위한 시간은 5분이 남는다.

ⓒ박해성


안 좋은 상황이 우연히 겹치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다. 짬을 내어 캠퍼스 안팎에서 열리는 토론회에 가보면 자주 접할 수 있는 모습이다. 다행히 ‘말씀’이 짧게 끝나고 지정토론 좌장(사회자)의 부탁대로 6~7명 패널이 첫 발언 시간을 5분 내외로 잘 맞춰주어야만, 20~30분 정도 주고받는 식의 토론이 가능하다. 의미 있는 토론을 위한 자리라기보다 하고 싶거나 (이해 집단을 대표해) 해야 하는 말만 한마디 얹고 끝나는, 토론 없는 토론회가 생각보다 많다. 게다가 ‘말씀’이 끝나면 1차, 휴식시간이 되면 2차로 청중이 썰물처럼 빠져나가 정작 패널 발언과 토론이 이어지는 후반부에는 객석이 절반 이상 비어버리는 광경이 벌어져 민망해지기도 한다.

시간 부족 탓만은 아니다. 대화와 토론의 무대가 되어야 할 대학 캠퍼스에서조차 얼굴 맞대고 서로 다른 의견을 나누기를 꺼리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특히 교수들의 경우 논문을 통해 서로 대화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인지, 아니면 저마다 전문 분야가 뚜렷해 상대의 전문성에 대해 의견을 내는 것을 기피하기 때문인지, 누군가와 합리적인 대립각을 세우거나 치열하게 논쟁하는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사회 이슈나 학내 사안, 학문적 논쟁거리를 놓고 교수들끼리 오프라인 또는 온라인에서 치열하게 공개 논쟁을 벌이는 모습을 보고픈 건 지나친 바람일까.

대학 보직자 회의 ‘누더기 의사결정’

대학 운영을 둘러싼 의사결정에서도 마찬가지다. 교수가 대부분인 보직자 회의나 학내 각종 위원회에서 참석자들이 의견을 내면 그 의견들이 서로 부딪치고 조정되면서 더 나은 내용으로 진화하는 화학적 과정이 일어나는 게 아니라, X라는 기존 내용에 A 교수의 의견 a, B 교수의 b, C 교수의 c가 덧붙여져 X+a+b+c가 되고, 결국은 누더기 같은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있다.

얼굴을 붉힐 것까지는 없지만, 이의나 반대가 있으면 학위·학벌·직책 같은 ‘계급장’을 떼고 눈치 볼 것 없이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며 토론하고 논쟁하는 문화를 대학의 연구실·강당·세미나실에서부터 꽃피웠으면 좋겠다. 대학은 갖가지 사건사고가 아니라 품격 있는 토론과 생산적인 논쟁으로 시끄러워야 다닐 맛이 난다. 학생도, 교수도 그리고 교직원도.

기자명 이대진(필명∙대학교 교직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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