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들이 열광하던 미국 드라마 〈왕좌의 게임〉에 늦게 입문했다. 한번 빠져드니 억제할 수 없었다. 가끔 ‘빨리 돌리기’를 감행했지만 초고속으로 마지막 시즌에 도달했다. 캐릭터들 대부분이 제각기 나름의 선악 원칙 위에서 부단하게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세련된 정치극이다. 마니아들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던 결말 역시 합리적이고 현실적이라는 점에서 합격점을 줬다. 이 드라마에서 가장 중요한 남성 캐릭터는 당초부터 정치적 인물이 아니었다. 그가 권력에서 소외당하고 변방으로 떠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일종의 ‘해방’.
〈왕좌의 게임〉을 보다가 비슷한 느낌의 다른 정치극을 떠올리게 되었다. 중국 무협작가 김용의 소설 〈소오강호(笑傲江湖)〉다. 〈소오강호〉에는 〈왕좌의 게임〉의 비정치적 남성 캐릭터를 연상케 하는 ‘영호충’이란 인물이 등장한다. ‘강호’로 상징되는 정치의 세계에서 주류(정파)와 비주류(사파)가 각기 나름의 가치를 걸고 격돌하며, 각 파 내부에서도 치열한 권력투쟁이 벌어진다. 지도자에게 바치는 숭배와 아부의 현란한 언어들도 볼만하다. 마오쩌둥의 문화대혁명을 은근히 빗댄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영호충은 권력욕이 없으니 아부할 까닭이 없다. 실력을 지녔으니 남에게 의지할 필요가 없다. 그는 문자 그대로 정치(강호)와 그 시스템에 얽매여 눈먼 욕망을 추구하는 이들을 오만하게 비웃는다(笑傲). 세상을 주류와 비주류로 갈라 어떤 가치를 획정해놓고 이에 기반해서 미운 놈들을 쳐내는, 세상에 흔하디흔한 일도 그에겐 웃음거리일 뿐이다.
〈소오강호〉는 〈왕좌의 게임〉과 마찬가지로 정치극이며 판타지다. 인간이란 정치라는 틀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치 시스템의 바깥을 엿보아내려는 갈망은 역사적으로 정치 발전의 원동력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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