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재단은 올해 서거 10주년을 맞아 ‘새로운 노무현’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걸고 5월18일 흥겨운 문화제를 만들었다. 슬픔과 분노를 넘어 노무현 정신을 더욱 적극적으로 구현하겠다는 의미를 담았다. 촛불을 통한 정권교체를 거쳐 비교적 안정적인 지지율로 집권 3년차를 맞은 민주당의 자신감과 의지가 느껴졌다.

한국 민주당(정당 이름은 여러 차례 바뀌어왔으나 현 더불어민주당의 계보를 ‘민주당’으로 통칭)은 세계 정당사를 살펴봐도 ‘성공적으로 민주화를 이뤄낸 정당’으로 손꼽을 만하다. 많은 나라에서 민주화에 대한 열망은 포퓰리즘과 부패로 망가지거나, 형식적인 민주주의 틀만 갖추고 권위주의 정권의 헤게모니를 넘어서지 못한 채 사그라들었다. 하지만 민주당은 1960년 4·19 항쟁, 1980년 서울의 봄, 1987년 민주화항쟁, 1997년 정권교체, 2017년 촛불혁명에 이르기까지 권위주의 세력과 잔당들에 맞설 대안 세력으로 한국 정치를 지켜왔다.

민주당, ‘포괄적 차별금지법’ 공약하라

물론 그런 만큼 한국 민주주의의 한계 역시 민주당의 과오와 한계일 수밖에 없다. 노동배제적인 민주화와 신자유주의의 과오를 극복하고, 대북 포용정책을 더욱 큰 게임 판에서 이뤄내 결실을 만들어내려는 문재인 정부의 ‘포용국가’를 향한 노력이 성공한다면 민주당은 한 단계 더 성장할 것이다. 또 그만큼 한국도 더 좋은 민주주의 국가가 될 것이다.

ⓒ정켈 그림

그러나 2007년 참여정부의 차별금지 법안에서 성정체성 등을 지우지 않았다면, 2017년 문재인 당시 후보가 (군대 내) 동성애를 “좋아하지 않는다. 합법화에 찬성하지 않는다”라고 말하지 않았다면, 인권변호사였던 박원순 시장이 동성애 혐오 세력에 밀려 서울시민 인권헌장을 포기하지 않았다면 그랬다면 나는 좀 더 온전히 민주당을 사랑할 수 있었을까?

6월1일 열린 제20회 서울퀴어문화축제 퍼레이드에 최초로 민주당 깃발이 등장했다. 몇몇 청년 당원들을 중심으로 ‘민주당 퀴어문화축제 참가단’을 꾸렸다. 이번 참가단을 두고 당 안팎에서 적잖은 논쟁이 있었다. 민경욱 자유한국당 대변인이 민주당의 견해를 요구했지만, 민주당은 SNS 담당 실무자가 ‘당원들의 자발적인 모임’이라며 선 긋기에 바빴다. 덕분에 나는 이번 논쟁에서 민주당이 정말 도망가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성소수자를 마치 입에 담아서도, 손을 대서도 안 될 ‘어떤 것’으로 대하는 민주당의 이 모르쇠에서 혐오의 장벽을 느낀다.

퀴어퍼레이드는 이미 매년 10만명 이상 모이는 문화 행사이자 정치 집회다. 한국 사회에서 민주노총이나 한국노총도, 민주당 스스로도 이만한 대중을 동원하기 어렵다. 군인들이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전과자가 되어 군에서 쫓겨나고, 길거리에서는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지옥불에 떨어져야 한다는 소리를 매일같이 듣고, 혐오와 차별의 장벽 앞에 수많은 성소수자들이 도전해보지도 못하고 꿈을 접는다. 이건 심각하지 않은 문제인가? 서구 나라들뿐 아니라 타이완도 동성혼을 허용하고, 일본 민주당도 동성결혼법을 발의하려 하는데 우리는 아직 명분이 부족한가? 동성애를 사랑의 한 형태로 인정하는 국민 여론이 과반인데(한국갤럽 5월31일) 사회적 합의가 얼마나 더 필요한가?  

이제 정말 민주당이 비겁하다는 것 외에는 더 이상 이유가 없다. 나는 한국 민주주의를 완성시켜온 민주당의 역사가 자랑스럽다. 그리고 민주당이 새로운 과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정당이라고 믿는다. 나는 내가 민주당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온전한 일부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2020년 총선에서 최소한 포괄적 차별금지법만은 공약하는 것이 민주당의 자랑스러운 역사에 걸맞은 행보다.

기자명 황도윤 (자유기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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