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서 민원을 넣은 적이 없다. 참여한 예술 행사가 민원의 대상이 되어본 적은 있다. 시민들이 거리에서 춤을 추며 행진을 하는 행사였다. 행복한 표정을 짓는 참여 시민들과 팔짱을 끼고 곱지 않은 표정으로 춤추는 무리를 바라보는 지역 주민들의 대비가 뚜렷했던 기억이 난다. 행사를 관리하는 단체의 직원들은 주민들에게 곧 정리가 되니 조금만 더 양해를 해달라며 연신 사과를 했고, 시민들에게는 진행 요원들의 지시를 따라 정해진 루트를 이탈하지 말아달라고 연신 부탁을 했다.

나는 당시 생각했다. 이 도시에는 사람들이 모여 자유롭게 몸을 움직이고 함성을 지를 수 있는 공간이 부족하다. 공간의 비좁음 때문에 누군가의 행복과 자유는 누군가의 불편과 불쾌로 이어진다. 심지어 예술가들이 많은 곳으로 유명한 지역에서 진행된 예술 축제에 민원을 넣은 당사자는 바로 예술가였다.

문제적 공간이 되어버린 학교 운동장

생활체육에서도 마찬가지다. 특히 학교 운동장은 매우 문제적인 공간이 되었다. 서울시는 2016년 학교 운동장을 지역 주민에게 개방하고 특정 단체들의 운동장 독점을 막는 취지로 조례를 개정한 바 있다. 학교와 학부모 측은 학생들의 안전과 편의를 우려했으나 지역 주민들은 운동 공간이 필요하다는 민원을 지속적으로 제기해왔다. 나는 이런 복잡한 문제를 최근 몸소 체험하게 되었다. 처음으로 민원을 당하는 입장에서 민원을 제기하는 입장이 되어본 것이다. 어느 날 근방의 학교 운동장에서 아침 일찍부터 퀸의 “위 윌 락 유”가 확성기를 통해 쩌렁쩌렁 울려왔다. 퀸의 열성 팬을 자처해왔지만 아침의 평화를 깬 그날의 음악은 아무리 퀸이라도 용서할 수 없는 소음에 불과했다.

창문을 통해 운동장을 살펴보니 열 명도 채 안 되는 사람들이 올망졸망 모여 뭔가를 분주히 준비하고 있었다. 알고 보니 운동회가 예정되어 있었다. 나는 생각했다. 아니, 무슨 운동회를 아침 댓바람부터 저리도 요란하게 준비한담? 요새는 운동회에도 저렇게 고가의 음향 장비를 쓰나?

사실 나의 스트레스는 일회성이 아니었다. 운동장에서 가장 빈번히 들리는 소음은 축구를 할 때 생겼다. 가뜩이나 성격이 예민한 나는 소음 중에서도 유독 귀에 거슬리는 소음을 판별하여 짜증을 내곤 했다. 예컨대, 경기 시작 전이나 휴식 때 들리는 군대식 구호들이 그랬다. 내가 잊지 못하는 소리는 “회장님, 패쓰!”였다. 아니, 이들은 자유롭고 평등한 공동체가 아니라 위계적이고 일사불란한 조직이 아닌가!

 

 


그런 와중에 고가의 확성기를 장착해 온갖 최신 유행곡을 틀어대고, 나의 사랑 퀸까지 소음으로 전락시킨 그 불순한 운동회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다. 나는 바로 파출소에 민원을 넣었다. 그러곤 과연 확성기의 볼륨이 얼마나 줄어들까 주의를 기울였다. 얼마 후 경찰에게서 전화를 받았고 주최 측으로부터 볼륨을 줄이겠다는 약속을 받았다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과연, 볼륨은 얼마간 줄었다. 그러나 다시 볼륨 소리가 커졌고 나의 사랑 퀸의 “위 윌 락 유”가 아까보다 더 큰 소리로 울려 퍼졌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내 두 눈으로 확인하고야 말겠다는 심정으로 나는 창밖으로 몸을 길게 빼 운동장의 움직임을 관찰하였다.

의외의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나는 대규모의 군중을 예상했지만 모인 학생 수는 100여 명에 불과했다. 학생들은 팀을 짜 준비한 장기를 수줍어하며 선보이고 있었다. 학생들은 깔깔거렸고 ‘우오오오’ 감탄을 했고 박수를 쳤다. 그 소리는 확성기의 웅장한 음악 소리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내 귀에 더 선명히 들린 것은 쩡쩡 울리는 음악이 아니라 작은 폭죽처럼 터졌다 잦아드는 학생들의 육성이었다. 학생들의 행복한 표정도 눈에 들어왔다. 음악 소리는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점점 커졌지만 나는 더 이상의 민원은 넣지 않기로 했다. 학생들의 웃음소리와 해맑은 표정을 본 이상 그럴 수 없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그들이 갈 데가 어디 있겠나. 어디서 저렇게 소리 지르고 춤추고 한데 어울릴 수 있겠나. 나는 창문을 닫고 출근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기자명 심보선 (시인·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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